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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09. 2020

소중하던 것들이... 짐이 되어간다



봄이 활짝 피고있다.(사진:이종숙)



커다란 쓰레기통이 옆집 앞에 놓여 있었다. 며칠 동안 빌려서 필요 없는 물건이나 쓰레기들을 넣어놓으면 통째로 가져간다. 크기에 따라, 또는 사용하는 기간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필요 없는 물건들을 집안에서 가져다가 쓰레기차에 집어넣은 지 며칠이 지나간다. 엊그제만 해도 반쯤 차있는데 어제 오후에 보니 꽉 차있다. 그동안 그 많은 물건들이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방치된 채 집안에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버리지도 않고, 쓰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다. 그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가며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쓰지도 않는 물건들 투성이다. 아이들의 물건도 많고 한번 버리려면 쓰레기통이  두세 개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남 주기도 버리기도 그렇다. 그러다 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젠가 나도 조그만 집으로 가서 살아야 하는데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 잠이 안 온다. 옛날 것들이라 밖에 내놓아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물건들인데 왜 나는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하루빨리 버려야 할 텐데 나는 버리지 못하고  세월만 보낸다.  어젯밤에 옆집의 그 쓰레기통은 없어졌다. 그곳에 살던 노인은 요양원으로 가고 자손들이 이사를 온다며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 노인이 평생을 아끼고 모아두었던 것들은 하루아침에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다. 어느 날 나의 물건도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미련 둘 것 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다 이유가 있다.


캐나다에 온 봄의 모습입니다.(사진:이종숙)



유행 따라 사들인 전기제품도 몇 번 쓰지도 않은 채 선반에 올려져 있다. 귀찮고 번거로워서 사용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프라이팬으로 간단히 해 먹고 만다. 특히 요즘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고, 아이들이 어쩌다 집에 와도 번잡스러워 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접시도, 기계도 다 필요 없게 됐다. 그렇다고 몇 번 밖에 안 사용했으니 아이들이라도 가져다 썼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싫단다. 엄마를 생각해서 쓸만하니까 쓰라는 말인지, 아니면 쓰던 것이라 싫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오래전 한국에 다니러 갔다. 한국에 가면 늘 부모님과 함께 있다가 오곤 했다. 엄마는 멀리서 온 나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나는 긴 여행에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여 아무것도 싫다고 말씀드리면 엄마는 매우 서운해하셨다.

그래도 끝까지 무언가를 주시고 싶어 하셔서 엄마가 마침 새로 사서 싱크대에 깨끗이 닦아 엎어 놓은 커다란 냄비를 달라고 했다. 내가 가져간다고 하였더니 너무나 행복해하시며 엄마는 또 가서 사면 된다며 선뜻 내주셨다. 보리차 끓일 때 쓰신다고 사 오셨던 냄비였는데 나도 마침 큰 냄비가 필요하기도 했다. 짐이 무겁지만 냄비 안에 다른 짐을 넣어서 부피는 같았다. 엄마에게 인심 쓰듯 가져온 그 커다란 냄비는 아직도 우리 부엌에 없어서 는 안 되는 물건이다. 아이들이 한창 커갈 무렵이라 무엇을 만들어도 많이 만들어야 했다. 곰국, 조림, 만둣국, 떡국, 칼국수 할 것 없이 커다란 냄비는 언제나 스토브 위에서 나를 기다린다. 냄비가 커서 넘치지도 않고 웬만한 손님도 거뜬하게 치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엄마한테 받아 온 냄비를 쓰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물건이 엄마를 대신할 수 없지만 그 냄비를 보면 엄마가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오랫동안 사용했지만 쓸수록 정이가고 닦으면 닦을수록 반짝반짝 광이 나는 그 냄비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생활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큰 냄비도, 큰 그릇들도 필요 없다. 김장을 안 담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때 와는 시대가 달라졌다. 고추장, 된장 할 것 없이 김치를 비롯해 밑반찬은 물론 국이나 찌개까지 사다 먹는 세상이 되었으니 조리기구가 필요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앞집 사람이 언젠가 쓸 것 같아 모아놓은 물건들이 쓰레기통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니 나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뭉게구름이 피어납니다.(사진:이종숙)


또 한 번은 이민 온 지 10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시어머니께서 우리 준다고 스테인리스로 된 커다란 양푼 세트와 소쿠리 세트를 사다 놓으셨다. 캐나다는 그런 그릇이 없으니까 가지고 가라고 특별히 사다 놓으신 것을 어쩔 수 없이 가져오긴 했지만 김장도 안 하고 사는 나에게 한동안 무용지물이었다. 그릇도 튼튼하고 귀한 것이지만 쓰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그 물건이 아주 걸리적거렸다. 그렇게 구석에서 빛을 못 보고 천덕꾸러기 마냥 이리저리 밀치던 그 그릇은 지금 나에게 보물 덩어리가 되었다. 해마다 여름에는  텃밭에 이런저런 채소를 심어먹는데 그 채소들을 뜯어서 밖에서 다듬어서 씻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집안에서 하려면 물을 흘리게 되고 복잡한데 넓은 뜰에서 하면 물이 넘칠 걱정을 할 필요 없이 많은 일을 빨리, 그리고  쉽게 할 수 있어 너무나 좋아한다.

아이들과 30년이란 세대차이가 있지만 생활이  발전하다 보니까 우리가 살던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 살아간다. 온라인으로 바뀌어져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도저히 모르겠다. 인간이 조정하던 AI 가 아니고 AI 가 인간을 조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껏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필요 없고, 또 다른 어떤 이름 모를 획기적인 것들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아끼고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 모아두던 것들은 쓰레기가 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데 귀하다고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 각자 기호에 맞게 물건을 소유하는 이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돈으로 해결하는 세상이 되었다. 물건을 사 줄 필요도 없고, 귀중하다고 쌓아 둘 필요도 없다. 살아생전 애들한테 물어보고 싫다고 하면 미련 둘 것 없이 버리고 처분해야 한다.  

냉정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내가 소중한 것이 자손들 에게도  소중한 것은 아니다. 옷도, 그릇도 유행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듯이 우리네 살림 또한 유행 따라 돌아간다. 옆집에 세워둔 쓰레기통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어느 날 나의 날이 오기 전에 나의 물건을 정리하며 살아야 함을 배운다. 숨차게 살아가는 자손들을 돕는 방법 중에 하나다. 내가 늙으면 아이들도 늙는다. 늙어가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은 정리 잘된 집 안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한국말과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국 책은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내가 읽던 책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일단은 책만이라도 처분할 방도를 생각해 봐야겠다.


소중하던 것들이 짐이 되어간다.


낮잠 즐기는 오리 한마리(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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