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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05. 2024

근심 걱정은... 바람에 실려 보내자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날이다. 이제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살아도 되는데 그것도 습관이 되었는지 가만히 있지 못한다. 뭐라도 해야지 그냥 멍청히 있지 못하는 못된 성격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 나이 든 사람이나 아픈 사람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지 언제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특별히 할 일은 없는데 그냥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도 귀찮아지고, 새로운 것을 하기도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고 싶지 않아 움직이면 금방 피곤해진다. 집안에 늘어져 있는 것들이 싫어 정리라도 하려면 버려야 하는데 버릴 용기는 아직 없으니 여기저기 그냥  쑤셔 넣고 만다. 결국 하나마나한 정리가 되지만 그것이라도 하면 기분이 좋다. 잔재미가 없는 이곳의 생활이지만 그동안은 나름대로 몇 가지의 취미 생활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모든 것들이 짐이 되고 쓰레기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다.


좋아서 사고, 남들이 사니까 덩달아 산 물건들이 이제는 짐이 되었다. 크고 무거운 가구들과 잔잔한 물건들은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소용없는데 기를 쓰고 모으고, 없어도 되는 물건들인데 비싼 돈을 들여 사다 놓은 자신다. 큰집을 정리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친구가 하소연을 한다. 하나둘씩 모은 물건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커다란 쓰레기통을 하나 빌려서 버리는 것도 일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다 놓고 아끼고 안 쓰던 물건들인데 가져갈 사람도 없고 쓸 시간도 없으니 버려야 한다고 울상을 짓는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새집으로 가져오긴 했지만 아들 며느리 성화에 그냥 버렸단다. 어차피 지금 버리나 죽 다음에 버리나 마찬가지라서 미련 없이 버렸다고 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보인다.


세상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태어나고 죽고, 피어나고 시들며, 한번 온 것은 언젠가 가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그 좋았던 것들이 시시해지고 새로운 것들이 좋아진다. 어제는 어제로 할 일 하고, 오늘은 오늘의 할 일을 한다. 그토록 좋았던 모든 것들은 추억이 되고, 알지 못하는 미래는 여전히 모르는데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은 모르기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안다면 꿈도 희망도 없을 것이 모르기에 바라고 원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다 막상 봄이 오면 꽃샘추위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줄 알아도 여전히 봄을 기다린다. 여름이 더워도 추운 겨울보다는 낫다고 위로하며 견디고, 추운 겨울에는 곧 따스한 봄이 온다고 희망하며 산다. 오늘 내게 온 것들이 시시한 것 같아도 찾아온 것에 감사해야 한다. 때때로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외로울 때가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기회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인간관계는 없다. 부모 형제도 세월 따라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시간이 온다. 형제도 멀리 살면 만날   없어 마음은 있어도 거리가 생기고, 남이라도 가까이 살면 형제이상으로 친하게 된다.


이민 역사가 길어지고 사람들의 관계 또한 달라진다. 아무리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도 시대에 따라 이해력도 떨어진다. 오래전에 이민온 사람은 이제 모두 나이가 들었다. 새로 이민 오는 사람들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다. 생각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다르기에 어디를 가도 끼리끼리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않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한 가지가 우리를 이어준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시절에 이민 온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특이한 근면과 성실같은 묘한 습성이 있다.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주위에 아픈 사람도 많아지는 것을 보면 역사책을 읽는 것 같다. 30-40대의 젊은 이들이 80세를 바라본다. 펄펄한 젊은이들이 세월 따라 나이 들어간다. 반세기가 는 이민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 이제는 하나 둘 떠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나름대로의 시간을 가지고 산다. 짧고 길고, 가늘고 굵고, 그 누구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이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것처럼 바람이 오고 가고,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세상은 돌고 돈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상관없이 세월이 오고 가듯이 돌고 싶은 대로 도는 것이 세상이다. 한쪽에서는 금방이라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사고와 사건들이 생기고, 한쪽에서는 웃고 파티를 한다.


세상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웃고 울고 다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하는 세상이지만 사랑도 있고 그리움도 있으니 살만하다. 남을 이기려 하지 않으면 평화가 온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오늘은 정말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생각은 바람에 실려 멀리 보내고 좋은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보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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