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ng Sook Lee Jul 17. 2024

새로 만난... 오늘과 논다



새벽 5시. 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쩌면 이미 잠이 깨어 있었는지 모른다. 뜰에 나가서 하늘을 본다. 온통 구름이 엉켜 있는 사이사이에 빨간 해가 떠 오른다.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는 빨간 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무에서 놀던 까치들이 내 인기척에 놀라 다른 나무로 날아간다. 하나가 날아가고 또 다른 하나가 따라 날아간다. 아마도 짝인가 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태어나 자라면 신기하게도 모두 짝을 만나 살아간다. 다행이다. 혼자 살려면 외롭고 힘들 텐데 짝을 만나 산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며 힘겨움도 있지만 기쁨이 크기에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살 수 있다.


이민 초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연년생으로 삼 남매를 낳고 기르며 해주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둘이 벌어야 하는데 육아 때문에 외벌이를 해야 했던 남편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좋고 싫고 힘들어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5 식구 먹고 산다는 생각 하나로 살았다. 어린 세 아이들을 어디에 맡길 데도 없고 어린이집에 보내면 수입보다 더 많이 들기에 선택권이 없어 아이들을 보며 살림을 했다. 친구들은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적은 수입으로 살기 힘들어 검소하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갈 무렵 나라에서 보조해 주는 학교에 아이들을 맡기고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다. 마침 큰 애는 여섯 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가고 둘째와 셋째는 나와 함께 아침에 학교에 가서 어린이집에서 놀고 나는 공부를 하였다. 불경기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남편은 밤에 일을 했다. 우리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남편은 잠을 자고 우리가 집에 오면 남편은 출근을 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나는 아이들과 놀다가 저녁을 해 먹고 아이들을 재우고 숙제를 끝내면 밤 12시가 넘는 생활을 계속하며 살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민생활이라는 것이 누구나 그렇지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아서 인지 아침잠도 없어지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침에 잠이 깨면 아무리 피곤해도 일어나 앉아 무언가를 하며 새 하루를 맞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시러 부엌에 나가 커튼을 열어보니 구름이 하늘에서 요동을 치는 모습이 보여 문을 열고 뜰에 나갔다. 그림 같은 하늘이 멋있어서 사진 한 장을 찍는데 그때 마침 새가 날아간다. 카메라에 잡힌 새 모습이 장관이다.


참새들은 나뭇가지에서 놀고 꽃들은 움츠렸던 이파리를 곱게 피는 아침이다. 해가 길어 새벽이 아니라 아침처럼 밝다. 텃밭에 있는 여러 가지 채소들도 예쁜 얼굴을 내놓고 새날을 맞는다. 어제의 세상은 밤 속에 사라지고 오늘이라는 새날이 밝아 세상을 밝힌다. 참으로 오묘한 조화다. 나이가 들어가도 새날이 오는 것은 좋다. 가는 날이 가까워도 괜찮다. 삶은 앞으로 가는 시계와 같다. 어제의 행불행은 흐르는 물과 함께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좋은 것은 남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든다.


평소에 그냥 스쳐 지나간 것들이 새삼스레 눈에 보인다. 이파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사과가 익어간다. 잡초와 함께 자란 금잔화 한송이가 노랗게 피어있고, 며칠 뜨거운 날씨가 고마운지 호박이 자란다. 상추와 깻잎이 이제 많이 자라서 밥상 위에 오르기를 바란다.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어진다. 벌들이 꿀을 나르고 나무들이 춤을 추며 오가는 정원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하루가 열흘이 되고 일 년이 된다.


수많은 세월이 오고 가며 많은 사람들과의 인적도 쌓인다. 길고 짧은 인연으로 크고 작은 추억을 가져다주고 세월 따라 잊혀간다. 그리움은 바람 같은 것이다. 조용하게 오고 강하게 온다. 잠시 머물다 가기도 하고 오래 머물다 가기도 한다. 눈물과 함께 오고 미소와 함께 오기도 한다. 왜 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이 지는지 모른다. 먹고살기 바쁠 때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었다. 어쩌다 하늘을 보면 나무에 싹이 트고, 단풍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한평생 사노라면 좋은 일, 슬픈 일이 구름처럼 오고 간다. 비가 오고 바람 불고 햇볕이 비추다가 소나기도 온다. 비 온 뒤의 피어나는 아름다운 무지개로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갖는다. 희망을 접을 때 또 다른 희망이 생긴다. 안 되는 것을 고집하면 힘들다. 책을 읽다가 잡생각이 들면 잠시 책을 덮고 머리를 식히면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사람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견뎌나가고 다시 살아난다. 매일이 새롭듯이 인간의 두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옛것은 서서히 잊힌다. 밤에는 오므리며 자신을 보호하는 모든 식물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손주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에게서 그들의 세계를 배우고, 동물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의 삶을 배운다.


엊그제 본 유튜브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느 양 농장서 어미 양이 새끼양을 몇 마리 낳았다. 양들은 세상에 나오면 한 시간 안에 걸어 다니는데 한 마리는 걷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른 새끼들 때문에 어미양은 걷지 못하는 새끼양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농장 주인이 알아채고 걷지 못하는 새끼 양을 먹이고 키우며 걷게 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양은 반려양이 되어 사랑과 귀염을 받고 자란다. 걷지 못하던 양이 걷고 뛰며 식구들과 가족의 한 일원으로 자리를 잡고 살며 서로가 있어 행복한 모습에 마음이 훈훈했다. 세상 모든 생물들이 인연의 연결고리 속에 살아간다. 오늘 새로 만난 하루와의 재미있는 놀이가 시작된다.


(사진:이종숙)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명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