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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18. 2024

인생 무대에서... 춤추고 노는 배우들


꽃이 만발하여 바람에 흔들린다. 하얀 꽃과 빨간 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세상에 나온 모든 만물은 혼자 살지 않는다. 홀로 핀 들꽃도 무리 지어 피고 지고, 흘러가는 계곡물도 물길 따라 함께 흐른다. 과일나무에 과일이 주렁주 렁 매달려 열리고, 꽃들도 순서대로 무리 지며 피고 진다. 노란 꽃, 하얀 꽃, 빨간 꽃, 보라꽃, 분홍꽃들이 누가 먼저 피겠다고 싸우지 않고, 먼저 피었다고 시기하지 않으며 피고 진다. 그 무엇도 요란을 떨지 않고, 기죽지 않고 피고 진다.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최선을 다해 한평생 살다가 가는 시간에는 미련을 다 버리고 눈을 감고 떠난다.


비바람에도, 폭풍우에도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만물은 하늘이 부를 때까지 치열하게 살아간다. 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말을 하지만 어떻게 피었는지 그 고통은 꽃만이 안다. 성공한 사람, 재력을 쌓은 사람,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을 했기에 지금의 그들이 된 것이다. 보기에는 운이 좋아서 하는 일이 잘되고, 인덕이 많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아도 그들만의 노력의 결과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꽃은 피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려야 하고, 사람은 잘 살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


뿌린 씨는 거두게 된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지금 잘 사는 것은 조상의 은덕이고 자식들은 내가 쌓은 공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공중에 나는 새도 새끼를 위해 튼튼한 집을 짓는다. 얼마 전 바람이 심하게 불던 다음날, 동네를 걷다가 나무에 있던 까치집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집을 지었나 자세히 보니 그야말로 한 방울 들어오지 않도록 정말 튼튼하게 지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일일이 엮어서 꼼꼼하게 집을 지었는데 사람의 손으로 지어도 그렇게 하기 힘들 텐데 부리를 이용하여 지은 훌륭한 집이었다.


여러 모양과 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을 보면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크고 작고, 예쁘고 흉하고, 가늘고 굵은 것들이 모여 산다. 비 온 뒤에 동네에 있는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마른 산책로에 지렁이 한 마리가 산책을 나왔다. 느림보 지렁이가 꿈틀대며 선탠을 하고 있는데 지던 지네가 지렁이를 보고 천천히 다가오더니 지렁이를 물고 늘어진다. 꼼짝없이 잡힌 지렁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몸을 비틀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던 개미가 무슨 일인가 하며 기웃거리고 지렁이와 지네가 엉켜 붙어 싸우고 몸부림치는 사이를 평화롭게 지나간다. 그들 세상의 약육강식의 진리를 본다.


먹고 먹히고, 잡고 잡히는 연결고리를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꽃을 키워 꽃차를 만들어 사람이 먹고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을 먹은 생선을 사람들이 먹는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지구는 둥글어 돌듯이 세상이 돌고 도는 것이다. 보이지 않게  쌓은 덕은 알게 모르게 돌아온다. 돌고 돌아 도는 것은 계절만이 아니다. 봄은 여름을 데려다 놓고 가을은 겨울을 데려다 놓는 것처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주인이 있다. 오늘 보지 못하면 내일 보고, 내가 보지 못하면 남들이 보며 세상은 돌아간다.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본다. 올해도 친구들이 정성 들여 키운 모종을 가져다주어 심어 가꾼다.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모종이 비바람과 꽃샘바람을 이겨내고 의젓게 자라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해마다 봄이 오기 위한 몸부림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봄 오는 길은 험난하여 따스한 봄이 오려나 하면 뜬금없이 눈이 오기도 하고 칼바람이 불기도 한다. 모든 고난 끝에 예쁘게 꽃이 피어 벌들이 꿀을 모으러 와야 할 시기에 갑자기 추워지고 비가 와서 꽃이 모두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힘겹게 산정상에 도착했는데 하필 돌을 잘못 밟아서 넘어지며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의 운명이라는 말을 많이 다. 열심히 일하여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시간이 기다리는데 갑자기 찾아온 병마와 싸우다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반면에 하는 일마다 잘 안되어 극단적인 생각을 여러 번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딘 덕분에 말년에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인생도 계절을 닮아서 따스하고 더우며 쓸쓸하고 춥기도 한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겨울보다 낫고, 아무리 더워도 여름은 여름 대로 좋다. 한 번은 온 가족이 여름에 한국에 나간 적이 있다. 너무 더워서 하루에 여러 번씩 샤워를 해도 땀이 흐르던 생각이 난다.


그 후로는 절대로 여름에 한국에 가지 않는다고 다짐했는데 어느 해 6월 초순에 아버지 상을 당해서 한국에 갔는데 그 해에는 6월에 여름이 온 것 같았다. 이제는 봄도 없고 여름도 없는 기후가 되어간다. 세상은 제 마음대로 돌아가고 계절도 제멋대로 오고 간다. 세상에 믿을 게 없다 해도 세상만큼 좋은 곳은 없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웃고 이야기하며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세상이 있어 행복하다. 비가 오면 집에서 창밖을 보면 되고, 추우면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우며 불멍을 때면 된다. 삶은 연극이고 우리는 연극배우다. 맡은 역에 따라 울고 웃고 춤추며 노는 연극배우… 재미있게 살다 가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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