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아침 햇살이 온 집안을 비춘다. 숲 속의 별장이 따로 없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숲이다. 숲을 끼고 있는 긴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간다.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하며 지나친다. 더워서인지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쩌다 다람쥐들이 오고 갈 뿐 숲은 조용하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강으로 가는 트레일이 보여 따라가 본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길은 인간의 문명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 자체이다. 물론 오래전에 만들어진 계단은 아무런 꾸밈없이 흙속에 반쯤 묻힌 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 있다.
멀리서 흐르는 강물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강 중간에 작은 섬을 두고 생겨난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간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강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강으로 가려면 깊은 절벽을 지나야 하기에 강으로 가기에는 불가능하다. 강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산책로로 나가는 길이 나올 것 같다. 산 짐승이 나온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이 숲이 아주 깊고 조용하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숲 속에 저마다의 삶이 이어진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지고, 온갖 나무들이 열매를 맺는다. 개암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다람쥐가 깨 먹은 개암껍질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가파른 언덕을 지나고 평평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아까 걸어온 산책로가 보인다. 동네로 향한 길로 들어서 집구경을 하며 걸어가는데 가까운 곳에 골프장이 보인다. 몇몇 사람들이 골프카트를 타고 골프 하는 골프장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니 아이들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만에 들어오는 우리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길을 잃은 줄 알았다며 놀린다. 손주들이 놀고 있는 사이에 아들들은 바비큐 준비를 하고 두 며느리는 부엌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느새 세월이 가고 나는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간다.
가을의 햇살이 제법 뜨겁다. 가을이 오면 떠나야 하는 것을 아는 땅벌들이 극성을 부리며 날아다닌다. 아들이 벌을 잡는 트랩 하나를 만든다. 둥그렇고 길쭉한 모형으로 된 것인데 플라스틱 위에 끈끈한 물체가 붙어있어 지나가는 벌이 앉으면 꼼짝없이 잡힌다. 곤충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어 쉽사리 잡히지 않지만 달콤함 향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결국 잡혀서 죽게 된다. 주위를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는 벌도 많고, 설마 하며 덤벼들어 붙잡혀 죽는 벌도 많다. 벌들이 빠지고 붙으며 죽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삶도 생각하게 된다. 나쁜 줄 알면서도 유혹을 참지 못하고 악의 소굴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점심에는 흑대구 바비큐와 오븐 닭 요리가 메인 요리다. 요리를 잘하는 작은 며느리는 멋진 이탈리안 요리로 한 접시 내놓는다. 열무김치와 양념 깻잎을 내어 놓으니 근사한 상 하나가 차려진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감사기도를 드리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뒤뜰에 가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가족이란 이렇게 아무런 부담 없이 웃고 즐기며 함께 하는 것이다. 언제나 같이 있어 좋고 서로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것이 가족이다. 틈틈이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탁구를 치며 내기를 하는 형제들이 서로 이기고 졌다고 웃는 것을 보니 참 좋다. 며느리들은 딸과 함께 세상일을 이야기하고 아빠는 아들들과 집안일을 도우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노는 것이 보기 좋다며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이 든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서 조용하고, 이웃들은 친절하며 큰아들을 방문하는 우리들을 환대한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캐나다에 이민 온 지 4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식구가 되었다.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며 열심히 살아가는 세 아이들과 손주들의 재롱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기쁘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우리가 없어도 그들끼리 힘을 합쳐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면 불가능은 없다. 20대 후반에 새 희망을 품고 이민 와서 살아온 수많은 날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삶에서 기쁨을 만들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