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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21. 2020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인생

봄이 가져다주는 선물에 나는 행복하다.(사진:이종숙)



나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어젯밤에 나의 몸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나의 영혼은 나의 몸을 떠나 영혼이 원하는 곳에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다가 몇 분 전에 나에게 돌아와 나를 깨웠다. 밤새 나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 영혼이 나를 깨우지 않으면 나는 죽는 것이다. 그런 날이 분명 나에게도 있을 것인데 나는 과연 준비를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가는 날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날 텐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내 인생을 까먹고 산다. 오래 전 손님 중에 하나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며 차근차근 준비를 한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손님으로 몇 번 왔던 사람이기에 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병이 깊어 통증이 심한데 약도 없다며 주위를 정리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너무나 불쌍해 보이고 슬픈 마음에 올 때마다 특별히 더 신경을 써 주었다. 몇 번 못 오고 세상을 떠날 사람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주문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올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위로를 해주며 따뜻하게 대해주고 그 사람은 고맙게 생각하며 자주 와서 식사를 했다. 겉으로 보기에 정말 착한 사람 같았다. 맛있게 먹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중하게 가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서 남편과 나는 그 사람이 너무나 안돼서 슬퍼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아마도 내일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아프고 괴로움에 잠도 못 자고 온 기색이 눈에 띄어 마지막 가는 길에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다며 공짜로 밥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정말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길래 나는 마지막 악수를 하며 잘 가라고 진심으로 그를 보냈다. 가는 길에 현금 출기에서 현금까지 인출해 가지고 갔지만 나는 죽는 그가 왜 현금이 필요한가에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가고 우리는 식당 문을 닫고 집으로 오며 아파서 젊은 나이에 일찍 죽게 되어서 정말 안됐다며 남편과 나는 그 사람을 위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어주었다. 사람이 한번 태어 나 죽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한번 멋지게 살아보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그 사람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돼서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는 안 죽을 거야." 하면서 쓸데없는 희망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준비를 하며 주변 정리를 하는 것 같아서 그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을 텐데 현실을 받아들이며 참으로 침착하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 되면 저렇게 되는구나'하고 이해를 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앵두꽃이 참 예쁘다. (사진:이종숙)



다음날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난 대형 화제의 사진이 크게 신문에 대서특필로 아침신문에 나왔다. 젊은 남자가 자기가 타던 차를 불 지르고 바로 집으로 가서 살던 아파트에 불을 놓아 옆집에 살던 노인이 집을 빠져나오지 못해 죽고 몇 명이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화재 소식을 듣고 정말 안됐다고 생각하며 하루 종일 장사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식당 문을 닫기 30분 전에 한 남자가 들어와서 손님인 줄 알았더니 사복형사였다. 화재를 낸 사람을 추적해보니 우리 식당에서 돈을 찾은 것이 마지막 행선지로 나와서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세상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이라지만 그렇게 점잖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줄 가 알았는가? 기가 막힌 일이었다.

형사가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 갔지만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까지 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궁금하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지금 까지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사람이 세상을 하직할 때를 준비함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래도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 저녁 뉴스에 죽은 할머니 딸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으로 무고한 누군가가 죽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엄마가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슬픔에 오열하는 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간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세월 따라간다. 짧아져 사는 세월이 아쉽기도 하고 다가오는 것도 두렵기도 하지만 인간은 세월이 왔다 가는 것을 안다.

온 시간은 알지만 가는 시간은 모른다. 봄이 늑장을 부리며 오지 않더니 급하게 달려와서 정신을 못 차 리겠다. 봄이 왔나 했더니 벌써 여름이 다가온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가을도 겨울도 우리를 찾아오리라.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말이다. 그래도 새봄을 기다리고 보내며 살아간다. 준비를 잘했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안 했다고 나쁜 것도 아니니 마음 편하게 먹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하루를 맞고 보내면 된다. 저녁에 잘 때는 내일 태어날 희망으로 자고 하루를 맞으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멋지게 살면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이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싫어도 좋아도 내게 온 하루를 잘 모시다 보면 그 안에서 행복 또한 함께 누릴 것으로 믿는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구름은 날마다 여기저기로 흘러 다닌다. 바람도 불고 싶은 대로 불고 계절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한다. 지으신 이의 뜻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니 특별한 준비 없이 살면 된다.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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