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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22. 2020

행복을 찾아... 우리는 한없이 뛰어간다




마가목나무가 지난날의 행복을 끌어안고 있다.(사진:이종숙)




비가 온다. 세상이 모두 잠들었는지 조용하다. 새들 조차 나무속으로 들어가 쉬고 있는 늦은 아침이 다. 비가 오니 산천초목이 좋아한다. 메마른 대지가 촉촉이 젖어들고 꽃들은 빗방울로 세수를 하며 아침 비로 세상이 아주 평화롭다. 나무로 둘러 쌓인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세월이 도망가듯이 뛰어간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리 빨리 가나  하지만 시간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급하다. 지금껏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세상살이 구경도 많이 했는데 무엇을 더 보려고 가는 세월이 아쉬운지 모르겠다. 그렇고 그런 세월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세월 타령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하니 별것 아닌 것으로 고민하고 속상해 왔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힘들어했다. 어차피 오고 가는 인생살이인데 작은 것에 목숨 걸며 기를 쓰고 살아온 날들이 비가 오는 창밖에 하나 둘 그림처럼 떠 오른다.

시시한 하루도 글로 써 보면 멋있는 글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꽃 한 송이도 사진을 찍으면 아름다운 사진이 된다. 아무리 멋있고, 훌륭한 것도 표현되지 않은 것은 자취도 없이 사 라져 버린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고, 고마운 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서로 마음이 통하여 이심전심이라고 하지만 말하지 않고, 듣지 못하는 마음은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하찮은 것도 감사하면 큰 것이 되지만 속으로만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고 속에 담아두어 좋을 것이 있고 말을 해야 살아나는 것 이 있다. 남을 축하 해주고, 남을 칭찬해주며, 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다. 시기나 질투가 있으면 좋은 말이 안 나오고 비꼬는 말이 나오고 부정적인 말이 나온다. 인간관계는 순수함이 먼저다.


시기 질투로 얼룩진 인간관계에서 아무리 친해 보여도 마음속에 비교하는 마음이 있다면 절대로 신뢰할 수 없다. 매사를 비교하고 시기 질투로 괴로워하는 관계는 친구가 아니고 원수지간이다. 인생살이를 생각하면 끝이 없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한낮의 개꿈에 불과한 것이건만 순간순간에 부딪히는 세상살이에 울고 웃고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가도 별것 아닌 작은 일에 화내며 손가락질 하기는 매한가지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잘 알 것 같은 사람도 한순간에 돌아서는 것을 보면 친구라고 특별히 사귀게 되지 않는다. 전염병으로 매일 보던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 시간이 석 달이 되어 가지만 그다지 궁금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을 보면 감정이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만날수록 정이 든다고 하지만 이렇게 오래 안 만나도 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정이 안 들었다는 이야기다. 몇십 년을 이 꼴 저 꼴 다 보고 살아와서 그런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이렇게 예쁘던 앵두꽃이 다 졌다.(사진:이종숙)



옛날에 카톡도 없고 편지조차 힘들게 주고받던 시절에는 그리움도, 기다림도 많았는데 그런 감정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기다림도 없고, 그리움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 세월 따라 살아간다. 금방 이야기한 것도 잊어버리고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신경도 안 쓴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관심 없고 그저 내 앞에 보이는 것만 해결하고 살게 됐다. 몇 년 전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90세가 넘으신 두 분은 생활에 필요하고 자주 쓰시는 물건을 눈에 보이게 여기저기 늘어놓고 사셨다. 오랜만에 하는 방문이기에 부모님께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집안 청소를 해드리고 싶었다. 워낙 깔끔하고 단출하게 사시는 부모님이시지만 여기저기 물건이 늘어져 있어서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칭찬을 해 주실 줄 알았던 부모님께서 칭찬은 커녕 정리해둔 물건을 도로 그 자리에 갖다 놓으며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왜 그렇게 내 성의를 무시하시나 했더니 정신이 없어서 그 자리에 놓아두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같은 자리에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 뒤 세월이 흐르고 나는 그때의 부모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잘 두었는데 정작 필요할 때는 생각이 안 나고 며칠 지난 뒤에 생각이 난다. 드라마도 볼 때는 재미있게 보는데 지나고 나면 주인공 이름도, 드라마 제목도 생각이 안 난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언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이젠 나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살아야 한다. 기록할 것은 써 놓고, 사진도 찍어놓고, 하루하루에 필요한 것들은 가까운 곳에 상자에 넣어 보관하면 된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고 세상 사람들 사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 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른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나이 든 노인들은 갑자기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10년 전과 지금의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앞으로 10년 후의 세상을 생각해 보면 궁금하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나이 든 노인들은 어영부영 흐르는 세월을 따라 가지만 젊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며 변화되는 세상을 쫓아가야 할 것이다. 옛날에 친했던 사람들도 세월 따라 가버렸고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일장춘몽'이라고 삶이란 어쩌면 봄날의 긴 꿈에 불과한 것이다. 아침에 꿈을 깨고 일어나 보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꿈이 있고, 뚜렷하게 남는 꿈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꿈에 밤새 시달리며 인간은 생시처럼 안달하다가 꿈을 깬다. 그처럼 우리는 꿈속처럼, 생시처럼 살다가는 인생이다. 매일을 희망에 속고, 절망 속에 다시 희망하며 속고 산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산다.

비는 하루 종일 계속해서 내린다. 비바람에 꽃들은 누워버렸다. 이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다시 살아 며칠을 더 살고 갈 것이다. 피기를 기다리며, 살기를 소망하며 살다 보면 어느새 떠나야 할 시간이 된다. 꽃 속에 우리네 인생이 있고, 우리네 인생에 꽃이 핀다. 빗속에 꽃이 피고 인생에 비가 내린다. 비와 바람과 꽃은 세상 안에서 춤을 춘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그리고 떠나기 위해 춤을 춘다. 이름 없는 꽃도 없고, 가치 없는 사람도 없다. 인간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며, 아름다운 것을 사진을 찍어 남겨진 것들도 어느 날 소멸하지만 끊임없이 하는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과 자연은 너무나도 닮았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 돌고 돌며 행복하길 바라고 행복을 찾아 한없이 뛰어간다. 가장 가까운 마음속에 있는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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