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을 기대하지 않는다. 공짜로 받은 선물 같은 하루를 받아서 잘 살다가 보내주면 된다. 욕심 없는 삶이 없겠지만 마음을 비우면 평화가 온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높이 오르려고 애쓰는 것도 좋지만 아무런 욕심 없이 하루하루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남보다 잘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은데 바라면 바랄수록 실망을 할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할 일이 있듯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산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기적이고,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을 살아온 것은 큰 축복이다.
아무것도 잘한 것이 없는데 새로운 날들을 허락한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감사하다. 태어나는 것이 내 뜻이 아니었지만 기왕에 나온 김에 잘 살아가는 것은 내 뜻이다.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정도를 걷는 것은 순전한 내 의지로 되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모두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싫으면 안 하고 좋은 것만 할 수는 없다. 싫어도 해야 할 때가 많고, 미워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하루가 시작된 거리는 차들이 오고 가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고 와서 학교 앞에 내려주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차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어둠에 싸여 새벽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시간은 세상을 배우며 다시 살아가게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옷을 벗은 나무들이 많아져간다. 여름이 가기를 고대하던 시간들은 가을이 가지 말기를 바라고, 겨울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겨울이 와도 춥지 않기를 바라며, 쉽게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릴 것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살아야 하는데 늘 기대를 하고 무언가를 원한다. 밤하늘의 별은 밤새 세상을 지키다 해가 뜨면 달과 함께 미련 없이 사라지듯이 그런 마음을 닮고 싶다.
생각하면 정말 소중한 하루인데 대충 살아가는 자신이다. 자꾸만 짧아져 가는 가을처럼 나의 시간도 짧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날이 당연히 오겠지 하며 시시하게 보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있고,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남이 내 일을 해주기를 바라며 산다. 지나간 날들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영원히 기억할 것 같던 나날들이 이제는 조각조각 흩어진 채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내게 온 하루들을 적으며 살아온 날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웃고 울기도 한다.
아무런 일도 없는 날은 세상에 없다.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고, 그것을 글로 적으면 하루의 삶을 알 수 있다. 길을 걷다가 거리의 풍경이나 사물 사진을 찍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 나서 느낌을 적어보기도 한다. 세상을 사는 사람 모두에게 정당한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데 우매한 인간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보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한다.
다람쥐가 어딘가에 솔방울을 열심히 물어다 놓으며 겨울 준비를 하느라고 바쁘게 다닌다. 겨울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준비하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예전 같이 겨울이 춥지는 않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아침저녁으로 온도가 내려가 엄살을 부리며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봄은 그냥 오지 않고 겨울과 함께 온다. 겨울을 잘 참고 넘기면 봄은 조용히 피어난다. 낮시간에 짧아져 가고, 밤이 길어지기에 세상 만물은 더 많은 잠을 자게 된다. 밤새 자고 일어나도 낮잠을 자는 나이가 되었으니 점점 게을러지는 것 같다. 밤에 조금이라도 잠을 설친 날은 하루종일 피곤함을 견디지 못한다.
잠이란 심신을 쉬게 하는 명약이다. 몸이 아플 때 나 걱정근심이 있을 때 나는 잠을 잔다. 잠을 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고 나면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정답이 없는 것이 인생살이이지만 잠을 자며 쉬고 나면 답이 나온다. 배가 아프면 음식을 먹고 싶지 않고, 안 먹으면 배가 낫는다. 쉽게 잘 체하는 나는 한 번에 많은 양의 식사를 하지 않는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니 일부러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다. 배가 고프면 허겁지겁 먹게 되어 체하기 때문에 틈틈이 조금씩 먹으면 체하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아서 좋다.
요즘에는 활동량이 줄어서인지 저녁생각이 전혀 없어서 안 먹고 잘 때도 간혹 있다. 먹고 나서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면 배가 더부룩한 경험을 해서 인지 차라리 아무것도 안 먹고 약간 배고픈 듯 속 편하게 자는 것이 좋다. 늙어 본 것도 경험이라고 한다. 누구나 젊음은 경험했지만 늙어보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나이가 들어 늙어봐야 늙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걸 늙어보니 알겠다. 할머니가 왜 일찍 일어나는지,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누웠는지 이제야 알겠다.
편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들이 좋아지고, 쉽고 단순한 것이 좋다. 복잡하고 까다롭고 어려운 것들이 없어도 아무런 불편을 못 느낀다.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산을 오르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그런 마음이 조금씩 없어진다. 지금 당장 편하고 기분 좋으면 된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고 내게 온 오늘과 잘 놀면 된다. 특별한 날은 바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