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가족

by Chong Sook Lee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 주위를 맴도는 한쌍의 까치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가 많은 오래된 집에 살다 보니 계절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들이 우리 집 뜰을 찾아와 지저귀고 날아다닌다. 저희들끼리 장난도 치고 연애도 하는데 이 까치 한쌍은 마치도 사랑하는 남녀처럼 어디를 가도 둘이 다니는 모습이 남 달라 보여 눈여겨보게 되었다. 앞뜰이나 뒤뜰 그리고 지붕 위에나 나뭇가지에 늘 나란히 동행한다. 하나가 잔디 위에서 무엇을 쪼으면 영락없이 짝도 옆에서 무언가를 쪼아 먹고, 하나가 날아가면 나머지 하나도 따라간다. 하나가 보이지 않으면 그들의 언어로 다른 하나를 부르면 어딘가에 있던 짝이 날아와 곁을 지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나름대로 부부나 연인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봄 날씨가 너무 추워서 봄 같지 않은 봄이 지나가고 여름으로 접어 들 즈음 그렇게 다정하게 붙어 다니던 까치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은근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여 집으로 왔는데 뒤뜰에 많은 까치들이 몰려와 시끄럽게 지저귀고 전깃줄에서 지붕으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왔다 갔다 하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제대로 날지 못하는 새끼 까치 한 마리가 담 밖에서 푸드덕거리고 있었고, 한 마리는 나무 아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엄마 까치는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가 새끼 까치한테 다가가서 해를 줄까 봐 당장에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한동안 부부 까치가 보이지 않더니 그 사이에 어딘가 집을 지어 알을 품고 새끼를 부화하였나 보다. 그동안 그만큼 자라 새 둥지를 떠나 세상으로 나왔나 본데 아직 잘 날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새끼들이 걱정이 되어 그리도 까치들이 난리를 치며 그들이 다칠세라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느라고 시끄럽게 짖어댔나 보다. 그 후 며칠 동안 새끼 까치를 보호하기 위해 동네 까치 모두를 동원하여 사람들이 걸어가거나 차가 지나갈 때면 더욱 큰소리로 울어대며 어린 새끼 까치들을 보호하였다. 그 모습은 인간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못하지는 않다. 암수의 모습이 똑같다는 까치들은 어느 것이 암컷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리를 더 질러대고 급하게 쫓아다니는 것이 엄마 까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기 새끼를 누가 어떻게라도 할까 봐 눈에 불을 켜고 새끼를 지키는 모습이 눈물 나는 모정의 모습이었다.

그러기를 한 열흘 넘게 계속하여 제법 까치의 모습이 잡혀가고 지저귀는 소리도 어른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까치들이 어른 까치가 되는 데는 얼마가 걸리는지는 잘 모르지만 집 앞의 전깃줄에 의젓이 앉아 깍깍대며 가족을 부르는 새끼 까치는 이제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아 보인다. 며칠 전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지나 가는데 까치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녁을 먹는지 그중 두 마리는 주위를 살피고 나머지는 열심히 무언가를 찍어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 모두 모여 하루의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저녁 시간을 보는 것처럼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처럼 가족이란 짐승이나 사람이나 저토록 아름답고 중요한 것인데 전쟁이나 사고로 인하여 만나지 못하는 가족의 아픔과 슬픔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마음이 든다.

하얀색의 몸과 검은색의 꼬리와 부리 그리고 짙은 청록색의 날개를 가진 까치는 참으로 아름다운 새 중에 하나로 17-18일 동안 알을 품은 후 부화된 후 22-27일이 지나면 둥지를 떠나 나름대로 홀로서기를 배운다. 까치는 옛날부터 길조라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아 왔다. 까치를 보면 어쩐지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아 은근히 기다리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져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여러 가지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집단사살도 할 정도로 미움을 받는 새가 되었다. 과수원의 과일을 있는 대로 찍어먹어 상처를 내는 그들의 행패를 막기 위해 비닐로 막아 놓으면 교묘히 입구를 찾아 과수원에 들어가 여전히 손실을 입히고, 들어왔던 곳으로 나갈 정도로 머리가 좋은 새이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골칫덩어리의 새이다.

나무가 없는 도시에 서식하는 도시 까치들은 나무에 집을 짓지 못하고 전봇대에 집을 짓는데 공사판에서 철사나 못을 주어다 집을 짖어 알을 품는다. 그로 인한 화재의 손실이 엄청나 정부에서는 전봇대에 있는 까치집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부셔 버린다. 그래도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여전히 집을 짓고 알을 품으며 종족보존을 위한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길고 추운 겨울 동안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할 까치들을 위하여 과일 몇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던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로 농가에 피해를 많이 주는 까치들을 철천지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어보니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머지않아 이곳에도 겨울이 오면 새끼 까치는 어른이 되어 알을 품고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엄마 까치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며 새끼 까치를 보호하기 위해 갖은 위험을 무릅쓰겠지... 요즘 까치들의 소행이 심하여 사회적으로 골칫거리라 하여 까치를 죽이는 세상이 되었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소행을 저질러 피해를 주는 새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훼손시키고 더럽힌 우리들의 책임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산이나 강가 그리고 바닷가에 사람들이 놀고 간 후에 버리고 간 쓰레기들 때문에 관광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 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와 오염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볼 때 새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피해는 어쩌면 아주 적은 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그들의 사는 곳을 빼앗아 살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게 되니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와서 인간들이 먹는 것을 먹어야 하게 된 것은 아닐는지... 새들이 평화롭게 집을 짓고 그들이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된다면 새들도 결코 과수원에 가서 수많은 과일들을 찍어 먹어 농부들에게 그 많은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도 나무가 많다면 굳이 까치들이 전봇대에 집을 지어 화재를 일으키며 위험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될 터인데 자연이 훼손되고 새들이 갈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다 보니 이런저런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닐까?

내일을 기약하며 넘어가는 석양 속에서 길 건너 평화로운 학교 운동장에서 행복한 저녁 한 때를 즐기는 까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설날에 부르던 "까치까치설날은.." 하는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어릴 적 앞니가 빠지면 이를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하며 새 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날들로 돌아가 본다. 아침에 까치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며 어쩌다 뜰에 까치가 오는 날엔 괜히 반가운 소식이 올 것만 같아 하루 종일 설렜던 기억 속에 새로운 가정을 꾸린 까치가족의 행복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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