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은 참으로 고요하다. 새소리도 없고 다람쥐 소리 조차 없는 조용한 날이다. 계곡의 물은 꽁꽁 얼어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목들은 춥지만 서로를 기대고 의지하며 겨울을 낸다. 겨울이 깊어가고 봄은 보이지 않는 어느 곳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하늘은 물감이라도 뿌려놓은 듯 아주 파랗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정말 눈이 부시다. 나무들 사이로 걸어본다. 참으로 많은 종류의 이름 모를 나무들이 산책길에 서 있다.
가늘고 크고 작고 둥근 나무들, 가시가 돋아 있는 것도 있고 매끈하고 반질반질한 나무도 있지만 거칠고 투박스러운 나무도 있다. 가는 길에 보지 못한 나무가 오는 길에 보이기도 하고 지난번에 무심히 지나쳤던 나무가 오늘은 새삼 눈에 띄기도 한다.
너무 커버린 나무가 있고 이제 막 땅을 뚫고 나온 나무도 있다. 오래전에 죽은 나무는 땅에 넘어져 여기저기 구멍이 난 곳에 빗물이 고여 새들의 물그릇이 되기도 하고 버섯을 키우기도 한다. 많은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져 비바람도 막고 눈보라도 막고 바람도 막아주며 숲 속의 평화를 유지한다.
나무들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걸어가는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는 나무들이 마치 우리들 옆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처럼 보인다. 가까운 이웃도 있고 먼 이웃도 있고 좋아하는 이웃도 있고 싫은 이웃도 있다. 도움을 주는 이웃도 있고 도움을 청하는 이웃도 있다.
언제나 웃는 이웃도 있고 괜히 미운 이웃도 있다. 좋았다가 알 수 없는 오해로 원수지간이 된 이웃이 있고 우연한 기회로 친해진 이웃도 있다. 만날수록 좋아지는 이웃이 있고 만날수록 불편한 이웃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탈도 많고 말도 많지만 그 많은 이웃들이 숲 속의 나무들처럼 서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크고 작은 일들을 서로 도와가며 감싸고 용서하며 인내하며 세상 풍파를 헤쳐 나가며 막아준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서면 나무들이 추위를 막아주듯 이웃들도 가까이서 멀리서 힘들 때 위로하며 산다.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가 있고 단풍을 그대로 간직하고 서 있는 나무도 있다. 정말 멋진 하느님의 작품이다. 사람처럼 나무도 똑같은 나무는 세상에 하나도 없다. 저마다의 모습을 지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옆에 나무가 크고 멋있다고 시기하지 않으며 질투하지 않는다. 먼저 꽃을 피우려고 경쟁하지 않으며 못 낫다고 깔보지도 않는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꽃을 피우고 잎을 만들며 단풍이 들고 때가 되면 땅에 떨어진다. 그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살다 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늘이 가까이 내려오는 듯 더욱 파랗다. 나무 사이를 걸어 울창한 숲을 빠져나가니 중간에 커다란 공터가 하나 있다. 쓰레기통도 있고 바비큐 판도 있고 피크닉 테이블도 있다. 여름에 많은 이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한 100명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평평하여 사람들이 놀기에 너무나 좋아 보인다. 조촐한 결혼 피로연도 좋을 듯해 보인다.
숲길이 다시 좁아지고 나무들은 앞에서, 옆에서 다가서고 숲 저편에는 깎아지른 계곡 밑으로 얼어붙은 물줄기가 군데군데 녹아 얼음 밑으로 힘차게 흐르는 물이 꽤나 깊은 듯하다. 시내 한복판에 이토록 깊은 숲이 있음에 한없이 경탄하며 세상 걱정을 잊고 한없이 걷는다.
숲 속에서 온갖 종류의 이름 모를 나무들이 어우러져 사는 것처럼 우리 모두도 이웃들과 살아간다. 좋고 싫고를 떠나 같이 있음으로 감사하며 서로를 챙겨주며 살아간다.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하느님이 만들어준 인연이니 그것을 소중하게 가꾸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세상만사 완벽할 수 없는 일이니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곳에 행복이 머문다.
짧은 겨울 해는 어느덧 서산마루에 걸터앉아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 어둡기 전에 서둘러 계곡을 빠져나가 집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