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hong Sook Lee Jan 7. 2020
학교 다닐 때 숙제를 하던 기억은 누구나 있다. 숙제를 하다 보면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있지만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산수 숙제를 받아왔는데 이해조차 할 수 없어 엄마와 함께 풀어보며 응용문제 숙제를 해 갔던 기억이 새롭다.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인간은 숙제를 해야 한다. 탯줄을 통해 엄마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해서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준비할 것이고 태어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주어진 생명의 숙제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갓 태어난 갓난아기는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먹고, 자고, 변을 보는 것 같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들의 할 숙제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잠만 자고 먹기만 하던 아기는 사람을 쳐다보고 웃고 옹알이를 하며 손가락을 찾아서 빨기도 한다.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뒤집기를 하고 앉고 서서 걷는 연습을 하며 자란다. 조금씩 자라면서 표현할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면서 욕심도 생기고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주어진 숙제를 하게 된다.
무언가를 배우고 연구하고 연습하여 목적하는 것에 뜻을 두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해야 할 숙제를 한다. 숙제를 미루어 한꺼번에 하느라 힘들었던 경험도 있다. 학창 시절에 방학이 되면 방학숙제를 미루고 미루다가 개학 며칠 앞두고 한꺼번에 하느라 고생하지만 다음 해도 그다음 해도 여전히 벼락 숙제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뭐든 한꺼번에 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산다. 서류 정리도 하루에 못하면 일주 일 것이라도 해야 하는데 한 달 것도 아니고 일 년 것을 하려니 걱정을 하면서도 안 하다가 코앞에 다가오면 며칠밤을 새며 끝내는 나쁜 버릇 때문에 마감시간이 오면 몸살이 난다. 또한 집안 청소도 매일매일 정돈하며 살면 좋을 텐데 미루고 미루다가 날 잡아서 하느라 피곤하고 힘이 드는데 여전히 똑같다.
예전에는 일을 해야 하니 숙제를 미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있는 게 시간뿐인데 만사가 귀찮은 나이 때문인지 미루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생살이의 숙제는 한두 가지도 아니고 끝나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돈다. 숙제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숙제가 있고, 미루면 그 숙제는 쌓이고 쌓여 마음을 괴롭힌다. 어차피 숙제를 해야 하는데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아 미루며 산다. 지나간 세월도 지나고 보니 참으로 빠르게 지나갔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도 역시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길지도 않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을 하지만 게으름 피우며 살아온 자신을 변명할 수는 없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태산 같은데 이리저리 밀어놓고 숨겨놓고 감춰놓고 다 한 척하며 하루하루를 무심히 보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바빠지지만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로 미루며 산다.
어제는 소리 없이 가버렸고, 오늘은 무심코 보내고, 오지 않은 내일에 기대를 걸며 사는 어리석은 자신에게 양심은 “이제 네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라고 열심히 선언한다.
이제라도 내게 남은 숙제를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하다 보면 떠나는 날 며칠 전에 숙제를 한꺼번에 바쁘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날 사람도 만나고 아이들도 손주들도 더 많이 사랑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특히 해야 할 숙제는 사느라 바빠서 함께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던 배우자와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늦은 가을에 남편과 시작한 산행은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산길을 걸으며 지난날 하지 못했던 얘기도 주고받고, 얼마 남지 않은 날들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며 지금껏 미루고 하지 못한 숙제를 하니 더없이 정겹다. 젊었을 때는 기억력도 사고력도 좋아 하나를 배우면 열개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열 번 스무 번을 얘기해도 금방 잊어버려진다. 어제 본 연속극은 물론 조금 전에 읽은 문장도 생각이 안 나니 약속이나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지 않으면 안 되고 남편하고 서로서로 상기시켜 주어야 된다. 이제부터는 나만의 숙제가 아닌 우리의 숙제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학교에서 받아오는 숙제는 없지만 세상 사는 동안 해야 할 숙제들은 계속 생겨나는데 시대가 바뀌다 보니 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다. 바쁘게 사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하려 노력하지만 갈수록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아진다. 어쩌면 사는 동안 숙제는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 이리라. 짊어진 십자가가 무거워 힘들 때마다 그 십자가를 조그맣게 잘라 버릴 수도 없는 것처럼 숙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하고, 모르면 물어서라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니 지금부터라도 벼락 숙제하는 버릇은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숙제를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