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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도... 사람은 살아갑니다

by Chong Sook Lee




바람이 심하게 부는 아침이지만 창문으로 보이는 햇살이 따스해 보여 잠깐 뜰에 나왔습니다. 나무들이 춤을 추긴 했어도 이토록 바람이 불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잠깐 사이에 머리가 헝클어져 눈을 가립니다. 순간의 바람인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살면서 인생의 바람이 심하게 불던 때가 생각납니다. 부모형제나 일가친척도 없는 곳에 철없던 나이에 정말 '깡'으로 이민을 와서 우리에게 불어닥친 바람은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언어나 풍습은 말할 것도 없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왔지만 사람들이 한국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시대였답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사는 이곳에 한국 사람은 몇 명 안되어 한인 식료품 가게가 한 개 있었고 한인 식당도 몇 개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서양 음식은 할 줄도 모르고, 먹을 줄도 모르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나는 이상한 것을 먹으면 비위가 약해서 잘 못 먹었지요.

오자마자 얼마 안 되어 첫아기를 낳고 연년생으로 둘째를 가져 입덧을 하게 되니 아무것도 못 먹겠더라고요. 첫 해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미역과 고추장 그리고 멸치로 간신히 넘겼습니다. 매일 미역국이나 미역죽을 끓여먹고 배추가 없으니 야채가게에서 파는 상추를 사다가 고추장에 무쳐 먹고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서 먹었지요. 다행히 냉면은 맛있어서 시내에 있는 한인 식료품 가게에서 청수 냉면을 한 상자 사다 놓고 입덧을 하는 동안 냉면 한 상자를 먹으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이곳을 알게 되고, 직장도 잡고, 사람들도 사귀며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좋아진 경기가 영원히 오래갈 것으로 생각하며 비싼 이자의 은행 모게지를 얻어 집도 사고 멋진 차도 사고 고국을 떠나 이곳에 이민 온 것에 행복해했지요.

그러던 호경기가 어느 날 무서운 불황을 가져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회사마다 감원을 시키고 실업자 수가 기하학적으로 올라가며 문을 닫고 파산을 하는 회사가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지요. 큰 도시로 이사를 가던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지요. 많은 교민들이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불철주야 죽어라 일하면서 살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불황이라는 바람이 이곳을 덮쳤습니다. 한국이 워낙 못살았던 70 년도에 이곳으로 이민을 와서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고 큰 뜻을 품고 왔는데 갑자기 닥친 불황은 무서운 폭풍우 같은 바람이었지요. 앞이 보이지 않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때에 우리는 다행히 집도 없고, 버릴 것도 없어 어디를 갈 수조차 없었지요.

그럴 때에 둘째가 거꾸로 발부터 나오는 바람에 큰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댈 곳도, 가진 것도 없는 우리는 그저 막연했지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어린 우리들은 무섭게 다가오는 불황을 이겨낼 도리가 없어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었지요. 직장도 없고 기술도 없고 돈도 없으니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나는 어린 두 아이 들을 봐야 하고 남편은 직업을 찾아 그야말로 문전걸식을 해야 했답니다. 불황으로 쓰러져가는 회사에 기술이 있어도 일감이 없으니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점심도 굶어가며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세상은 더욱 흉흉해지고 인심은 험악해져 갔지요.






그때 토론토로 이사를 간 지인 몇 명은 지렁이를 잡으며 하루하루 먹고살았답니다. 생각만으로도 징그러운 지렁이를 잡으며 연명해야 했던 그들은 그것조차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감사하게 지렁이를 잡으며 번 돈으로 밥을 먹고살았다 고 합니다. 사람이 막바지에 접어들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그 불황이 있은 뒤로 한동안 캐나다로의 이민 길이 끊기었다가 1990 년 대 초부터 다시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많은 한국사람들이 투자 이민으로 이민을 신청하여 지금은 많은 교민들이 성공하여 잘 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힘들지 않게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쓰러져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죽을 것 같은 상황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는 그야말로 대단하고 위대합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으로 많은 아픔들이 있었지만 세월은 인간을 버리지 않고 따스한 바람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고 멋진 열매를 맺게 합니다. 앞이 깜깜하던 날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이민자들이 앞을 보고 희망하며 살았기에 가능했습니다. 가난했던 고국을 떠나와서 외국인으로 자리를 잡고 뿌리내려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건만 2세들을 위하여 못 할 것이 없었습니다. 청바지 공장을 다니며 생전 해 보지 않았던 재봉질을 하며 바늘로 손가락을 수없이 찔렸고, 육체노동을 생전 안 해 본 몸으로 청소를 하며 힘에 부쳐 허리가 비틀렸어도 몸져누워보지 못하고 파스와 침으로 버텨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용접이라고는 길거리에서 번쩍거리며 하는 산소 용접밖에 본일이 없지만 있지도 않은 한국의 경력을 써서 철공장에 들어가서 온 몸에 불똥이 튀겨 가면서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나마도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선택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겐 사치에 불과했던 시절이었고, 영어도 잘하지 못했지만 손짓 발짓으로 용감하게 살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청춘의 시절은 그렇게 가고 그때의 이민 동기생들은 정년퇴직을 하고 지난날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노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루 살이 같던 시절에 같이 고생을 해서인지 지금도 그들은 언제 봐도 반갑습니다. 자랑거리는 아니라도 떳떳하게 살아갑니다.

그들 중에 돈을 많이 벌은 사람도 있고,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도 있고, 나같이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2세들이 잘된 사람도 있고, 2세가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늦게 피는 꽃도 있기에 마음이 급할 것 없이 살아갑니다. 이민 와서 힘든 삶을 겪으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하고 함께 살아가며 만나는 친구는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생각도 같고 사상도 같으니 몇십 년 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몇 날 밤을 새워도 끝이 없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웃기는 에피소드도 많아 행복합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아침에 내 머릿속은 40십 년 전으로 돌아가 한 바퀴 잘 돌고 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회오리바람이 불어와도 사람은 살게 마련인가 봅니다.


바람이 불어도... 사람은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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