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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던 나를... 다시 찾는 연습을 한다

by Chong Sook Lee


집앞 조그마한 화단에 꽃이 많이 펴있다.(사진:이종숙)


새벽에 시끌시끌하던 새들이 잠자리에 들었는지 작은 잠꼬대 소리만 들린다. 간단한 차림으로 산책을 나왔다. 비 온 뒤의 하늘은 높고 푸르고 나무들은 우아한 6월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비 온 뒤 맑음이 가져다주는 상쾌함이란 정말 좋다. 일주일 사이에 앞을 다투며 피어대던 꽃들이 지고 이파리가 무성 해졌다. 그 열흘의 아름다움을 위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한번 더 아름답게 단풍으로 맵시를 보여주면 쓸쓸한 낙엽이 되어 뒹굴어 다니다가 모질게 추운 겨울을 견디며 봄을 맞는다. 그런 나무의 생을 생각하 면 그 속에 우리네 인생이 있다. 사랑의 결실로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성장과정과 다르지 않다. 아기가 자라 성년이 되어 살다 중년과 장년을 거쳐 노인이 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산책을 하며 숲 속의 나무들을 보면 지금은 한창 좋은 청춘의 모습이다.

새로 나온 잎들이 바람에 날리며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헐벗었던 겨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씩씩하고 늠름하다. 어제 그토록 쏟아지던 비로 시냇물이 엄청 불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른다. 골짜기에 끼어있던 더러운 불순물이 말끔하게 씻겨져 내려오고 있다. 바람도 잔잔하여 극성을 부리던 모기조차 덤벼들지 않아 걷기에 훨씬 수월하다. 이곳에서 걷기 시작한 지는 일주일 정도인데 올 때마다 경이롭다. 숲 바로 앞에 사돈이 살고 있는데 12년 전에 둘째 아들이 이 숲에서 며느리한테 프러포즈를 했던 숲이다. 그동안 한번 와 봐야지 하면서도 겉으로 보기에는 산책하기에 너무 짧은 거리 같아 보여서 미루고 오지 않았던 숲인데 지난번 우연히 와서 보니 숲이 엄청 깊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이처럼 좋은 숲을 지나칠 뻔했다.

산책길이 여러 군데로 갈라져 있어 나 같은 길치는 숲 속에서 하루 종일 뱅글뱅글 돌며 서 있을 것이다.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아 도저히 모르는데 길눈이 밝은 남편을 따라다닌다. 남편은 "여기가 어디고, 이리 가면 그곳으로 통하고, 그쪽에서 이 쪽으로 와도 되고, 저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온다". 고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그저 좋고 아름답기만 하다. 믿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 근심하지 않고 나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지난번 산나물을 뜯으러 나무가 많은 숲 속으로 들어가서 정신없이 땅만 보고 나물을 뜯고 있다 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아 한참 부르고 찾아 헤매었었지만 오늘은 같이 걸어가니 상관없다. 이리가도, 저리 가도 남편만 따라 가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사람들도 별로 없어 전염병을 신경 쓸 일이 없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이곳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장소 같다. 개발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깊은 숲이라서 한번 들어오면 도시의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시끄러운 차 소리도, 사람들의 잔디 깎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곳은 새들과 잔잔한 풀꽃들이 있고 다람쥐는 없는 것 같다. 먼저 다니던 숲은 다람쥐와 새들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 작고 가는 나무들이 시냇물가에서 자라는 것을 보면 지금도 예쁘지만 가을 단풍들은 모습은 정말 볼만할 것 같다. 여기저기 산나물이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놔두려고 한다. 눈에 자꾸 보이니까 뜯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만 오늘은 유혹을 뿌리치고 산책만 할 거다. 지난번에 왔을 때 산나물에 정신 팔려 구경도 못하고 갔으니 오늘은 오직 구경만 한다. 숲을 다니면 볼거리가 너무 많다. 나무들의 모습들과 꽃들 그리고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의 모습들이 봐도 봐도 신기하다.



나의 예쁜 숲 속의 살림(사진:이종숙)



생긴 것이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눈이 바쁘다. 한 번씩 이렇게 산속에 오면 눈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 저녁에 눈을 감고 있으면 다 보인다. 한번 본 것을 기억하는 눈으로 낮에 본 숲 속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많이 보고 가서 자기 전에 다시 한번 보려면 열심히 봐야 한다. 앞으로 보이는 다리를 건너가는데 눈앞에 펼쳐진 취나물 밭이 보인다. 세상에!!! 손바닥만 한 취나물이 군락을 이루며 새파랗게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다리 건너 저쪽 편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장소를 알아 놓고 내일 다시 와야겠다. 이곳의 봄은 늦게 오지만 봄여름이 겹쳐져서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자란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민들레꽃이 한창 예쁘게 들판을 노랗게 덮었다. 멀리 보는 잔디와 민들레가 멋진 궁합을 이룬다. 들판을 지나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나무 층계를 걸어가니 폭포 같은 물이 흐른다.

시원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무 아래서 하늘을 쳐다본 다. 멀리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비행기 소리가 난다. 전염병으로 한동안 뜸했는데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려나 보다. 계곡에는 좁은 산길들이 사이좋게 마주 보며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야생동물들이 만들어 놓은 길인 듯 좁고 꼬불꼬불하다. 우리네 인생사를 보는 듯하다. 길을 따라가 보니 조그만 실개천이 빠르게 흐른다. 조금 있다가 만나는 냇물과 합류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나 보다. 자연도 나름대로의 감성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니 기분이 더 좋다. 별것 아닌 것도 긍정적으로 기분 좋게 생각하면 사는 게 더 신난다. 신경질 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더 좋게 되려고 이렇게 되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 일이 쉽게 풀리는 것을 보고 배운다. 부정은 더 큰 부정을 가져다주고 긍정은 더 좋은 일을 만들어 준다.

조금씩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가는 길은 오는 길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어 새삼스럽다. 숲 속의 살림살이가 많아 그게 그런 것 같지만 볼 때마다 새로워 질리지 않는다. 간밤의 온 심한 비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부러져 떨어져 있고 산책길이 군데군데 질퍽하게 젖어 있지만 마른 길로 걸어가며 숲 속을 바라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으니 어디 멀리 멋있는 관광지라도 온 것 같다. 자연은 어디에 있어도 우리를 반긴다. 아무런 공해도, 소음도 없는 숲 속의 평화를 가슴 가득 안고 돌아가는 발길은 가볍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것은 숲이 내쉬는 청정한 공기 때문이리라. 이토록 가까이에 있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숲 속을 온통 우리가 차지하고 발품만 열심히 팔면 된다.

세상이 아름답다. 마음은 평화롭고 넉넉하다.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왔듯이 이제는 열심히 놀며 산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니 사는 맛이 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으려고 안달하며 살다 보니 세월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돈을 좇았던 열정으로 삶을 찾아 살아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욕심 없는 마음이 가져다준 평화이다. 바라지 않음으로 얻고, 버림으로 갖게 되는 이치를 깨닫는 오늘이다. 싫다고 하면 다가서고, 좋다고 쫓아가면 도망가니 무심한 가운데 받아들임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자유다.


오늘도 나는 잃었던 나를 찾는 연습을 한다.



실개천이 큰물을 만나러 간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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