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봐달라고... 난리가 났다

by Chong Sook Lee


새벽 4시 반에 잠이 깼다.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전화를 열고 앉아서 이것저것 들여다본다. 창문 아래에 있는 밥풀꽃 나무에서 참새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하루를 여는 부지런한 참새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한 삼십 분 정도 요란한 회의를 하는 듯싶더니 잠을 자는지 출근을 하는지 다시 조용해진다. 다시 세상은 조용하다. 시끄럽게 떠들던 새들이 조용해지고 동네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시간이 간다. 이렇게 또 다른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세상이 너무도 조용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전쟁도 자연재해도 없이 이런 날이 계속될 것 같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 사람이 사는 동네인데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다. 어쩌다 지나가는 차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일뿐 한적하다. 가만히 커튼을 열고 살며시 창밖을 내다본다. 어느새 해가 뜨고 집 주위에 여러 나무들이 보인다. 일주일 동안 꽃 세상이 되었다. 열흘전만 해도 어린싹들이 파릇파릇 나오는 게 보였는데 어느새 꽃이 피고 지고 녹음이 짙어진다.


잠시 다녀가는 봄이 아니다. 겨울 동안 이 아름다운 봄을 만들고 가는 것이다. 봄 꽃샘추위에 심한 감기를 앓고 일어났는데 세상은 여름이다. 아무것도 없던 메마른 땅은 온갖 종류의 생명들이 파랗게 피어나 저마다의 삶을 창조한다. 날마다 조금씩 변화되는 자연의 신비로 세상은 돌아간다. 나무들이 고은 옷을 입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세월이 간다. 세상에 없던 것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없어지며 알게 모르게 변한다.


감기로 열흘을 심하게 앓고 일어난 뒤에 빅토리아에 사는 딸과 손자가 와서 열하루동안 지내다가 가고 나니 어느새 5월이 중순이다. 어영부영 올해도 거의 반이 지나간다. 새해가 온다고 했는데 세월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빨리 간다. 지나가는 세월이 야속해도 어쩔 수 없고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다. 해놓은 일도 없고 해야 할 일은 태산인데 내일로 이루며 산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보면 별 재미가 없다. 얼굴이 뻔뻔해야 하고 계산적이어야 하는 세상. 거짓말을 잘해야 하고 사기를 잘 쳐야 하고 말 바꾸기를 잘해야 하는 세상에 그런 재주가 없는 사람은 할 일이 없다. 뉴스가 너무 빨리 돌아다닌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묻히고 사람하나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좋은 일도 많지만 무서운 세상이 되어 간다. 세상이 거짓투성이다. 그럴싸하게 보여주기식인 세상이 되어 속 빈 강정 같다.


해가 뜨고 참새들이 하나 둘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뒤뜰에 있는 마가목 나무에 참새 둘이 앉아서 짹짹대고 뜰에는 민들레가 신나게 나온다. 칼 하나 들고 새로 나오는 민들레를 캔다. 겉보기에는 작고 연한데 뿌리가 깊어 캐기가 힘이 든다. 지난주에 연하게 자란 민들레를 뽑아 살짝 삶아서 쓴 물이 빠지도록 잠시 담가 놓았다가 참기름과 소금과 마늘을 넣고 무쳤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마침 입맛이 없었는데 바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나물 넣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벼먹으니 잃었던 입맛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사람의 입맛이 참 요사스럽다. 감기 걸렸을 때는 무엇하나 먹을 수 없이 입맛이 쓰더니 민들레 나물로 다시 입맛을 되찾아 기운이 난다. 봄이 왔는데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으며 작물을 키워야 한다. 5월 하순까지는 언제 눈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모종을 밭에 심지는 못하지만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 한다. 새록새록 자라나는 싹들을 보고 있으면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오래된 동네라서 큰 나무들이 많다. 며칠전만 해도 연두색 싹이 피기 시작했는데 며칠 사이로 난리가 났다.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꽃들이 봐 달라고 피기 시작하여 눈이 부시다. 언제부터 피기 시작했는지 정말 아름답다. 열흘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피는 꽃들을 보면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불만을 하는 인간들인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자연은 올 때를 알고 갈 때를 안다.


꽃이 피고 이파리가 생기고 열매를 맺으며 순응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어제는 비가 온다고 하더니 몇 방울 떨어 뜨리더니 그만이다. 너무 가물어서 비가 와주기를 원했는데 그것도 욕심이다. 올 때가 되면 오고 안 오면 할 수 없다 생각하며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다. 가까웠다 멀어지고 또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루를 살고 또 다른 하루를 살다 보면 지나간 날들은 잊힌다. 봄이 왔다 살며시 가고 여름이 주인인양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머지않아 떠나야 한다.


가을이 오면 또다시 봄을 향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겨울 안에 봄이 있고 봄 안에 여름을 품으며 사는 게 인생이다. 서로가 사랑하며 보듬고 화합하면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싫어도 좋아도 양보하는 계절의 지혜를 닮아 보고 싶다. 싫다고 거부할 수도 없고 좋다고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하는 것. 구름과 바람이 오고 가고 비와 바람이 교차하며 바라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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