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를 닮은... 우리네 인생

by Chong Sook Lee


오랜만에 계곡을 찾았다. 겨울을 벗은 계곡주위에는 푸르른 옷을 입은 풀이 자라고 있다. 녹지 않을 것 같은 겨울 눈은 온 데 간데 없이 다 녹아 자취도 없다. 어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인사를 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초목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라 춤을 춘다. 참으로 사랑스럽다.


지난가을 갑자기 찾아온 무릎 통증으로 걷는 운동을 중단해야 했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무릎이 붓고 아파서 의사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무릎에 물이 고여 있고 많이 부어있다고 진통제를 먹고 크림을 바르고 수영이나 가벼운 운동을 하면 부기가 빠질 거라고 한다. 무릎에 고여있는 물을 주사기로 빼면 되겠지만 며칠 두고 보자고 한다. 다음날 바로 수영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며 조금씩 호전되어 지금은 통증이 없다. 물론 무리하면 안 되겠지만 오랜만에 걸어 본다.


숲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지난겨울을 난 열매들은 쪼글쪼글하게 말라붙어 바람이 불면 힘없이 땅에 떨어진다. 주중이라서 조용한 산책길은 힐링 자체이다. 하늘은 높고 파랗고 바람은 잔잔하다. 새들은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바쁘게 날아다닌다.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노는 숲에 어제의 아픔은 없다.


가을도 겨울도 다 지나간 봄의 숲은 살아있는 생명이 꿈틀댄다. 보이지 않는 많은 생명들이 움직이고 저들의 삶을 이어 나간다. 세상 사람들은 땅따먹기에 바쁘지만 숲 속의 하루는 평화롭다. 오르고 내려가는 산책길에서 여유를 배운다. 무엇하나 가지려 하지 않고,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하늘이 주는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자랄 만큼 자라고 맺을 만큼 맺다가 고개 숙여 감사하며 생을 마감하는 자연이다.


민들레가 지천이다. 푸른 잔디 위에 노란 꽃이 예쁜 꽃처럼 피었다. 몇 년 전부터 환경 문제로 약을 뿌리지 않아 극성을 부리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 한데 벌써부터 민들레 씨들이 날아다니며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눈이 가렵고 목이 따끔거리는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없어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것이다.


민들레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고 하여 약용으로 사랑을 받는다. 살짝 삶아서 무쳐먹고 꽃이나 뿌리로 차를 만들어 마시면 좋다고 한다. 민들레가 군데군데 모여 앉아 잔치를 한다. 꽃 색갈이 예뻐서 하나 꺾어 냄새를 맡아본다. 특별한 향기는 없는데 색이 너무 예뻐서 사랑스럽다. 구박을 받으면서도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잘 퍼져나가는 민들레는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지 않고 한없이 번진다.


꺾어져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을 닮았다. 오래도록 힘겨운 삶을 견디며 살아온 이국생활에 어쩌면 민들레의 강함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언어와 풍습이 다른 이곳에서의 생활이지만 한국인의 인내는 모든 것을 이겨 나가게 한다. 김치가 없으면 상추를 고추장에 무쳐먹고, 열무김치가 먹고 싶으면 빨간 무로 열무김치를 대신하며 살았다. 고기가 주 요리인 이곳 식단에 비위가 상하면 멸치에 고추장을 찍어 먹으면서 비위를 달래곤 하던 날들이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어디를 가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변할 수는 없어도 살다 보면 적응하며 살게 된다. 오랜만에 걸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42년 전, 막내를 가졌을 때 입덧이 유난히 심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아는 분이 아무것도 못 먹는 모습이 안되었는지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주셨다. 맛있는 반찬이 식탁으로 하나 가득 쌓여 있는데 파를 동동 띄운 무짠지가 눈에 띄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비위에 안 맞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배가 등가죽에 들러붙어서 바싹 마른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그중 한 아주머니가 무짠지 한번 먹어 보라며 젓갈로 하나를 집어서 내 입에 넣어 주셨는데 그 맛이 별천지였다. 한번 먹고, 두 번 먹으며 비위가 가라앉고 입맛이 살아나서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먹으며 입덧이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이민생활에 익숙해지고 제2의 고향이 되어 편안한 생활을 한다.


길가에 새로 생긴 어린 나무들이 자라서 제법 큰 나무가 되어 하늘로 팔을 뻗치고 의젓하게 서 있다. 다람쥐들이 먹을 것을 찾아 바쁘게 움직인다. 한참을 걷다 보니 눈에 익은 나무가 아는 체를 한다. 지난해 익으면 따 먹어보려고 했던 헤이즐넛 열매인데 다람쥐들이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따먹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정신 바짝 차리고 한번 맛을 봐야겠다.


바람도 없고 그야말로 완벽한 봄날씨가 오랜만에 걷는 산책길에서 행복을 만난다. 나무들과 다람쥐와 새와 꽃과 계곡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희망을 준다. 저마다의 할 일을 하며 계절을 맞고 보내는 자연 속에 평화가 있다. 구름과 햇빛이 숨바꼭질하는 아름다운 오후에 집으로 가는 길에 노란 민들레가 활짝 웃는다. 홀씨를 날리며 굴복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차지하며 영원히 퍼지는 민들레를 닮아 간다.


(사진:Chong so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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