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줄 알았다.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아는 것도 많아 세상을 살기 좋을 줄 알았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마음이 더 풍요로워질 줄 알았다. 그래서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며 열심히 살았다. 많은 세월이 가고 나의 지식과 풍요는 내가 생각한 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배워서 알던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잊히기 시작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모르는 것들이 알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어려서부터 배우던 것들은 다 지나간 것들을 책에서 배운 것이다. 책을 보고 남들이 알아낸 지식을 배우며 살고 기억한 것뿐이었다. 사람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는지는 내가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결혼의 길은 결혼 후에 알게 되었고 엄마의 길도 첫아이를 낳으며 배우기 시작했다.
사람이 태어나 성장한 뒤에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하더라도 어렸을 때의 순수함은 없다. 세상을 오래 살았다 해도 인간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통하는 사람끼리 정보도 주고받고,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힘든다. 지금껏 많이 알고 시대에 밝았어도 나이가 들면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져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따라갈 수 없다. 조금 안다고 거들먹 대다가는 요즘 세상에 큰 코 다친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내가 아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젊은 사람들보다 조금 오래 살았을 뿐 아는 것도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은 따라가지도 못한 채 어리버리하며 살아간다. 몇 번을 가르쳐 줘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매번 새롭다. 아이들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며 사는데 고정관념에 묶여있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머리가 꽉 막힌 것을 알지만 뚫을 수도 없다. 아이 티 강국이라는 한국은 시스템이 이곳보다 훨씬 앞선다.
뉴스를 들으면 같은 한국사람인데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한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하나하나 배우면 되겠지만 선진국이 라고 하는 이곳이 뒤떨어진 것인지 내가 무식한 것인지 세상이 너무 변했다. 모든 것이 컴퓨터식이 되어 컴퓨터를 모르면 입도 뻥끗 못하는 세상이고 무식한 사람이 돠는 것이다. 이곳에도 여유가 있어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신속하게 눈치채며 해결하는데 옛날에 와서 일만 하며 살다가 나이들은 나 같은 사람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알려고 해 봐도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 시작하는 것도 두렵다. 이제 와서 배우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고 엄두도 안 난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는 거지 하는 생각만 든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어렵고 모르는 것을 새로 시작하기도 귀찮다. 물론 배워서 못할 것도 없다. 따라가다가 넘어지더라 더 배울 것은 배워야 하는데 그리 쉽지 않다. 몸으로 하는 것은 몸으로 어떻게 해보면 되겠지만 머리가 안 돌아가니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답답한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아는 것만 가지고 편하게 살다 가는 수밖에 없다. 소 끌고 밭 갈던 세상이 아니고 모든 것들이 컴퓨터로 조작하여 기계로 하는 세상이니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집에만 있다가 어쩌다 시장이라도 가면 며칠 사이에 세상이 변했고 나는 한 발짝 뒤로 가 있다. 빠릿빠릿하는 사람들 틈에 서서 어벙하게 따라가는 나의 모습을 볼 때 괜히 움추러 든다. 그렇다고 숨어서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하늘과 나무는 저마다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사진:이종숙)
전염병으로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장도 보고, 드라이브 스루로 음식도 사고팔며, 음악회나 쇼 그리고 운동 경기도 전부 컴퓨터로 관람하며 사는 세상인데 나는 시장을 보러 다녀야 하고 관객이 되어 구경을 해야 한다는 관념으로 살아왔으니 바꾸기가 쉽지 않다. 한마디로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두 번 해보면 배울 텐데 안 한다. 물건도 직접 가서 신선한 것으로 눈으로 보고 사야 하고, 옷도 입어보고, 신도 신어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전부 오더를 해서 사고파는 세상이다. 사람이 태어나 그렇게 몇십 년을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바꿔지지 않는다. 고집인지 아집 인지 바꿔야 하는데 시대에 뒤 떨어진 삶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아이들한테는 쉬운 일이지만 왜 그리 안되는지 모른다.
뒤떨어진 시대에 살아온 날들에 길어진 탓일까 아직도 나는 이민온 해에 멈춘 채 살아간다. 그때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때까지로 멈추었다. 조금씩 하고 배우며 변하고 살지만 나의 고리타분한 의식을 바꾸려면 아직 멀었다. 세상이 바뀌면 따라가야 하는데 느리고 거부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퇴보하고 구석기시대로 돌아가 혼자만 외롭게 산다. 누가 이끌어 줄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배우며 흉내 내고 따라 해야 하는데 왕고집 그야말로 똥고집 때문에 할 일을 못한다. 백세시대다. 사람들은 말한다.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고 하는 세상이니 지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싫다고 모른다고 징징 대면 나만 손해다. 아무도 따라다니며 달래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시대다.
애들도 어른도 바쁘고 살기 힘든 세상이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생겨 세상이 무섭다고 한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살아간다. 행복하기 위하여 불행해진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찾아다닌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하며 행복을 찾아 떠난 많은 사람은 다 늦은 시간에 행복이 가장 가까이에 있음을 발견한다. 지금 내가 나이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우기 너무 늦었다고 하며 앞으로 몇십 년을 문맹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따지지 말고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처럼 살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자랑이 아니고 흉이다. 모두 다 함께 사는 세상을 따라가야 한다. 못해도 안 한 것보다는 낫다.
뭐라도 조금씩 배우고 연습하면 바보는 면할 것이 다.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배워야 뭔가를 알게 된다. 어른이 되었다고 배우지 않으면 철부지 아이보다 못하다. 사람들은 세상을 피해서 산으로 가고 바다로 가며 삶을 회피하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평화를 얻고 건강도 되찾았다 한다. 하지만 집을 떠나지 않고 세상을 버리지 않아도 건강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마음만 바꾸면 새로운 것도 배우고, 잃었던 행복도 만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생각으로 오늘부터 나는 신세대로의 한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