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참으로 요사스러운 것이다. 천량 빚을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있다니 말 잘하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말이 없고 뚱한 사람은 받아먹을 떡도 못 받아먹는다고 한다. 말은 소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묘한 것이다. 희망을 주고 절망하게 만들기도 하는 말의 힘은 위대하다.
간사스러운 말은 의심을 사고, 묵직한 말은 경종을 울리고, 인정 많은 말은 눈물 나게 한다. 말 한마디로 혼돈과 평화가 엇갈리고, 희망과 절망이 오고 간다. 말은 분열과 일치를 만들고 사랑과 미움을 낳는다. 말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무시무시하다.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고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위선을 떠는 것은 눈에 보인다. 진실한 말 한마디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이민 선배가 생각이 난다. 나보다 11살 위인 그분을 성당 야유회에서 만났다. 말도 별로 없으신 그분인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지고 사람 냄새가 나는 분이다. 그녀는 중매로 남편을 만나 딸 둘을 낳고 막내아들을 임신했을 때 남편은 독일로 돈을 벌러 갔다. 남편이 4년 뒤에 캐나다로 이민 가기로 하여 그녀가 세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공항에서 생후 처음 아빠를 만난 그녀의 4살짜리 아들은 아빠를 보며 “엄마, 저 아저씨가 우리 아빠야?” 했다는 말을 하는데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한 이민 생활이 매서운 겨울보다 더 혹독하다며 ‘열심히 산 죄 밖에는 없어요’ 하시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민 온 캐나다는 살기 좋아 뭐든지 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아 그녀는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때우는 청소 일을 하며 아이들 자라는 것을 보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의 삶이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아이들도 많이 자라 시내에 작은 가게를 인수받아 사업을 하며 재미있게 살았다. 낮에는 가게를 보고, 저녁에는 청소를 하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 교외에 있는 나름대로 제법 큰 주유소 하나를 사게 되었다. 돈을 벌며 생활이 안정되어 삶의 재미를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갔다.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장 생활을 하며 잘 살아가기에 사업을 조금 늘려서 이전을 했다.
사업이 커지면서 결혼을 한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사랑스러운 손자들과 행복한 생활이 이어지는데 아들이 분가를 하겠다며 시내로 가게 되었다. 사람을 구하기 힘들게 되고 일은 더 해야 했지만 돈 버는 재미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참혹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어 사업을 팔려고 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녀는 딸과 함께 운영하며 견뎌야 했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의 남편이 병석에 누우면서 가게에 있는 기계들이 고장 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사람을 쓰는 게 쉽지 않고 수리비가 만만치 않아 고장이 날 때마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장사는 그런대로 잘 되어 돈은 벌어도 인건비와 수리비를 내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병환이 심해져서 일을 못하고 요양병원에 들어간 뒤로 치매가 심해져서 폐인이 되어 갔다.
그녀와 딸이 직원 몇 명과 운영하던 사업은 불경기를 맞아 힘들어지는 가운데 건강하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회생불능한 급성 간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 당시 그녀는 갓 일흔을 넘긴 나이였다.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하고, 좋다는 것을 먹어도 병세는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어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기를 반복하면서 그녀는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행복하던 그녀의 가정에 병마가 찾아와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뺏아가는 비참한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이었다. 아직 조금 더 살만한 나이에 치매 걸린 남편을 두고 가버린 그녀. 떠나신 지 10년이 되었어도 따뜻하던 그녀가 생각난다. 구수한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며 우정을 나누며, 힘든 이민 생활에 정을 주고받으며 웃고 울던 생각이 난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아까워하지 않고 가져다주시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털어놓던 그녀가 떠나고 4년 뒤에 그녀의 남편도 가셨지만 그분들의 진심은 늘 가슴에 남아 있다.
따뜻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성의 없이 내뱉은 말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천량 빚을 갚을 수 있는 말은 사람을 살리고, 한번 내뱉은 잘못된 말은 엎질러져 주워 담을 수 없는 물과 같다. 되는대로 내뱉고, 생각나는 대로 쏟아내는 말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으며 사는 세상이다. 말수가 적고 말재주가 없어 조심을 해도 상대의 기분을 망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처럼 무서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웃자고 하는 말이 칼이 되고, 사이가 나빠지고, 원수가 되는 경우는 많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살다 보면 생각지 않은 말실수가 빚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많다. 남의 말을 옮기면서 살이 붙어 부풀어져 엉뚱한 말이 되어 돌아다닌다. 말이라는 것이 정말 희한해서 말을 너무 안 하면 답답하고, 말이 너무 많으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되어 조심해도 일이 벌어진다. 천량빚을 갚는 것도 말이고, 상대의 마음을 찢는 것도 말이다. 말수가 적으면 적다고 흉을 보고, 말수가 많으면 말이 많다고 욕을 하는 세상에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