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행복도... 마음에서 온다

by Chong Sook Lee


여름 날씨 같지 않게 선선하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금요일 오후에 가까이 사는 둘째 아들 가족과 캘거리에 사는 큰아들네로 향한다. 9년 전에 태어난 손자 생일을 축하하러 간다. 불금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교통 체증으로 밀리는 차들을 보며 약속 시간에 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미리 걱정이 된다.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 손자가 벌써 9살이다. 9년 전 6월 10일 날 손자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운영하던 식당을 닫고 한달음에 달려가던 날이 생각이 난다.


금요일 아침이었는데 매주 금요일 특별 메뉴는 만둣국에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드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만둣국 육수를 끓이고 200개의 만두를 만들며 하루를 준비하는데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간다고 사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진통을 하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들며 완벽하게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병원에 간지 30분 만에 손자를 출산했다고 연락이 왔다. 어찌나 흥분이 되던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 문을 닫고 캘거리로 갔다.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지만 빨리 가서 손자를 안고 싶은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가서 축하해 주고 오던 날 밤에 친정부모님께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도 하루 종일 뛰어다녔더니 너무 피곤해서 다음날 아침에 연락하기로 하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당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는데 오빠한테 전화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손자가 세상에 나와서 너무 좋았는데 다음날 아버지가 떠나셨다니 너무 황당했다.


급하게 비행기 표를 사서 공항으로 달려갔다. 입관식에서 라도 마지막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갔다. 막상 한국에 도착했는데 혹시라도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있나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장례식장에 갈 것이 걱정이었다. 가뜩이나 길눈이 어둔 나인데 갈길이 막연했지만 물어 물어 전철을 타고 가면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내려야 할 역을 물어 내렸다. 막상 내려보니 여러 개의 출구가 있는데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학생 여럿이 담소를 하며 지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모두 바쁜 것 같아 보여 선뜻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한쪽에 서서 누군가에게 물어볼 기회를 기다리는데 어느 한 여자분이 한가롭게 한쪽으로 걸어가는 게 보여서 다가가서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입관식을 하는 병원으로 가는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어보니 마침 자기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앞장을 선다. 16시간 동안의 비행시간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내가 안 됐는지 가방을 들어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녀는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친구 같았다.


둘이 같이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서로를 소개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촌오빠와 인사를 하는 사이에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9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으로 들어가 입관식을 볼 수 있게 해 준 친절한 그녀가 없었다면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하루 사이에 사랑스러운 손자가 태어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하시는 모습에 기쁨과 슬픔이 오고 가는 인간의 삶을 본다.


손자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고 떠나가신 아버지는 추억 속에서 만난다. 세월이 흘러도 손자의 생일이 되면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인연의 연속이다. 조상들이 하던 것들은 자손들에게 이어지며 완성되어 간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올 때가 있고 갈 때가 있어 시작하고 끝이 되고, 다시 시작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금요일의 거리는 차들의 행렬로 바쁘다. 3시간을 달려 큰 아들네 집에 도착했다.


숲에 근접한 집에서 사는 큰아들 내외는 직장 생활로 바쁜 와중에 큰 며느리가 준비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갈비와 잡채 그리고 만두와 떡갈비를 비롯하여 온갖 반찬들이 식욕을 돋운다. 황금 같은 주말에 만나 손자 생일을 축하하고 아들 며느리와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회포를 푸는 행복한 시간이다. 퇴직한 우리는 시간이 많아도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시간을 내어 손님을 치르는 것이 어려운 일임에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환영하는 마음이 고맙다.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손주들은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놀고 아들과 남편은 정원 손질에 바쁘다. 지난해 여름에 큰 집으로 이사한 큰아들과 며느리가 집안팎을 예쁘게 가꾸며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민 1세인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서 악착같이 살았는데 아이들은 다르다. 든든한 직장 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며 인생을 즐긴다. 즐기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던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철학을 가지고 산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만큼 어떻게 쓰는 것도 중요하다.


이민 생활이 길어지고 아이들도 이제 중년이다. 우리가 앞장서서 이끌어 왔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앞장서서 간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한다. 알던 것도 잊히고, 무섭게 발전하는 현대의 삶을 쫓아가기 어렵다. 열심히 따라간다고 해도 나날이 변하는 것들이 낯설기만 하다. 바람이 부는 뒤뜰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은 파랗고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 사는 게 정말 별것 아니다.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가족이 만나 먹고 놀며, 오고 가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 산책로 건너에 숲이 있고 골프장이 보이는 참으로 평화로운 동네다. 멀리 휴가를 가지 않아도 마치 휴양지에 온 것 같다. 숲이 있고 새들이 노래하고 아이들이 뛰어논다.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고 사노라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가 있을 것이다. 큰 행복을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 더 행복할 것이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구름이 사랑한다고 하늘에 예쁜 하트를 그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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