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정말로 고마우신 분들이 많지만 그중 한 분께는 "감사합니다". 하며 골백번 절을 해도 모자란 분이 있다. 그분의 고마움이 내 마음을 채우고 생각만 해도 고마운 마음이 절로 난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작은 것이라도 받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면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이다. 95세의 고령의 엄마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요양원에 계신다. 4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91세였던 엄마는 혼자 사실수 없어 집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 사시다가 2년 전에 오빠가 사는 동네인 안산으로 오시게 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요양원 시설에 친절하신 몇몇 분이 일을 하시고 계시는 그곳은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2년 전 6월에 나는 딸과 함께 한국에 계신 엄마를 방문하러 갔다. 갈 때마다 시간이 없어 계획했던 일도 못하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는 정년퇴직을 한 뒤라서 마음이 느긋했다. 가기 전에 내가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었던 목록을 적어갔다.
1. 엄마께 예쁜 꽃다발 사드리기
2. 엄마가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 사드리기
3. 엄마가 좋아하시는 사탕 사드리기
4.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바깥바람 쐬어 드리기
5. 엄마 얼굴 보고 감사와 사랑한다는 말씀 전하기
6. 엄마의 손잡고 많이 안아 드리기
7. 엄마와 옛날이야기 많이 하기
8. 엄마와 재밌는 사진 많이 찍고 음성 녹음하기...
9. 엄마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
그 외에도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 잘못해서 어디 다치시거나 아프시기라도 할까 봐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만을 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식사도 잘하시고 정신도 또렷하시어 말씀도 잘하고 옛날에 부르시던 노래도 잘하셨다. 요양원 앞에 휠체어로 나가서 바람도 쐬고 내가 사다 드린 스웨터를 입고 "어쩌면 이렇게 예쁘냐?" 하시며 함께 사진도 찍고 농담도 하시며 참으로 좋은 시간을 함께했다.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방문을 하면서 본 간호사분들과 요양보호사들의 친절에 감탄했다. 마치도 자신들의 부모님을 대하듯 친절하고 깔끔하며 다정하셨다. 하나도 부족함 없이 자상하게 돌보아 주시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환자들 하나하나 에 쏟는 사랑에 너무나 고마웠다. 요양원에 대한 여러 가지 나쁜 정보로 처음에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하신다고 했을 때 나는 멀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원망했었다. 내가 가까이 살았으면 엄마를 모셨을 텐데 하는 죄책감으로 많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내 걱정은 지나친 우려에 불과했다. 막상 가서 보니 엄마는 많은 의료진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편안하게 지내고 계셨다. 맛있어 보이는 여러 가지 반찬을 번갈아 드리고 식사 시중도 잘해드렸다. 2주 동안 있으면서 의료진과 친해지고 그들 중에 한 분과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웃음을 잃지 않으시며 진실하게 마음을 읽어 주신 그분은 늘 엄마에게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주셨다. 엄마를 놓고 떠나 와야 하는 마음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때 그분은 나를 언니처럼, 동생처럼 따스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자주 찾아오지 못함에 슬퍼하는 나에게 "내가 잘 봐드릴 테니까 걱정 말고 가세요". 하며 위로해 주어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떠나올 수 있었다. 그분의 위로는 말로만 하는 것으로 끝난 위로가 아니었다. 이곳에 온 뒤 수시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우정을 키우며 지금껏 살아온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떠나오며 나는 그분을 의지하게 되었다. 살다가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 나는 그분에게서슴지 않고 메시지를 보낸다. 엄마의 안부가 궁금하여 가슴이 뛰고 불안할 때도 그분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분은 언제나 친절하신 글로 답장을 해주신다. 나는 그분이 보내주신 답글로 희망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그릴 수 있고 엄마의 편안하심을 믿을 수 있었다. 때때로 그분은 내 마음을 읽고 엄마의 사진을 보내주신다.
사진으로 보는 엄마의 모습은 늙으셨지만 그 사진 한 장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엄마를 보러 갈 수 없는 나에게는 엄마와 가까이에서 엄마를 돌보고 계시는 그분은 내 삶의 은인처럼 고맙다. 그분도 날마다의 생활이 바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내가 되어 내 마음을 읽고 다 해주신다. 때로는 엄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엄마 앞에서 춤도 추며 즐겁게 해 드린다. '요양 보호사'라는 직업명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시는 그분은 나의 마음의 안식처이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하여 요양원 출입이 금지되어 자식들도 방문하지 못하는 힘든 상황에 한 장의 사진은 금쪽같은 희망이다. 인정 많고 사려 깊은 그분의 배려로 나는 엄마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엄마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엄마가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움직이며 운동하는 영상을 보내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를 만난 듯이 반갑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겸손하신 그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언제나 해드리겠다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신다. 사람은 어디서든지 만나고 헤어진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그분의 배려와 친절로 누군가는 살아간다. 이국 만리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보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렇게 좋으신 분과의 친분은 특별한 은총이고 축복이다.전염병으로 하늘길이 막힌 요즘 나는 많이 우울하다. 엄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조바심하고 산다. 물론 95세의 엄마는 천수를 누리신 것이지만 내가 엄마의 마지막을 못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그분께 매달린다. 그분의 사랑과 배려로 엄마가 평화롭게 지내시기만을 바란다.엄마가 보고 싶은 날은 그분의 카톡의 문을 두드린다." 안녕하세요 박선옥 님?" 하면 그분의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정겨운 답글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