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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27. 2020

시시한 나날이... 특별한 날이 되어간다


함박꽃이 활짝 웃는다.(사진:이종숙)




특별히 하릴없이 하루하루 산다. 아침 먹고 뜰에 나와 이것저것 참견하고도 점심시간이 되려면 몇 시간이 남아 있다. 대낮에 집안에서 뒹굴거리기는 싫어 간단한 옷차림으로 동네길 산책을 나간다. 집안에서 할 일을 찾아보면 되겠지만 왠지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우리 집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초등학교 운동장이 있다. 비가 많이 온 뒤에는 버섯이 있어 간혹 지나갈 때 혹시나 하고 유심히 보는데 오늘은 안 보인다. 잔디 버섯이 군데군데 있을 뿐 송이버섯은 아직 철이 이르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쓸쓸하고 흉흉하기까지 하다. 늑대가 학교 이동식 교실 옆에서 새끼를 낳은 뒤로 한번 왔었는데 늑대가 아직 학교에 살고 있다. 새끼들은 잠을 자는지  안 보이고 어미 늑대만 언덕에 홀로 앉아 주위를 살피고 있다.


무서운 눈으로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한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오늘도 그 모정이 눈물겹다. 밤낮으로 새끼들을 지키는 모습이 여느 인간과 다름없다. 부모 자식을 학대하며 때리거나 죽이는 사례가 인간사회에도 넘쳐나는데 저 미미한 동물의 모정은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 측에서 한 것인지 정부에서 한 것인지 모르는 노란 리본이 이동식 교실 주위에 쳐져있다. 위험하니 접근을 금지하는 표시다. 멀리 걸어오는 우리가 의심스러운지 늑대가 우리 쪽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괜히 늑대의 무서운 심성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멀리 돌아서 학교 운동장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왔다. 초등학교 길 건너에는 초급대학 건물이 있다. 주차장에 엄청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에서 공짜로 검사를 해주고 있는데 온라인으로 신청을 하고 약속을 잡아야 한다. 조금씩 풀어지면서 사람들 많은 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 검사를 받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어서 빨리 코로나 19 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검사하는 곳을 지나 큰길을 건너면 고등학교와 공원이 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거리도, 공원에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19의 예산 부족으로 길거리 옆에 있는 잔디를 안 깎아서 길게 자라 풀숲을 이룬다. 돈이 없으니 사람들을 잘라 일을 할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 보기 흉하고 지저분 한데 그래도 공원만큼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 확 트인 공원에 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다. 해마다 여러 가지 경기와 행사를 하며 바쁜 곳인데 아무도 없다. 그래도 나무들은 잘 자란다.


생긴 지 30년이 넘은 넓은 공원에 남편과 나만 걸어 다닌다. 멀리 야구장에 남자 2명이 공을 주고받지만 참으로 한가하고 조용하다. 꽃사과가 엄지손톱만 하게 자라고 있다. 사과가 살구만 하게 자라면 달고 신맛이 나고 아무도 따먹지 않은 채 떨어지고 남은 것은 대추처럼 나무에 달려서 햇볕에 자연스럽게 마른다. 지난 이른 봄에 지나가면서 하나 따서 먹어 보았더니 모양도 맛도 영락없는 대추였다. 공원에는 소나무가 많다. 한국의 산천 초목이 그리워지는 소나무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온순해지고 평화로워진다. 예쁜 솔방울을 꽃처럼 달고 서있는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 다. 비가 와서 잔디가 젖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왔는데 다 말랐다. 이곳의 여름은 그야말로 뽀송뽀송하게 건조하여 오히려 여름이 시원한 느낌이 든다. 나무 사이로 걸어본다.



함박꽃이 세상을 밝힌다.(사진:이종숙)




작년보다 나무들이 많이 자라 제법 깊은 숲을 이루고 하늘은 푸르고 맑다.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을 잊고  파란 잔디를 밟고 걸으니 평화롭다. 멀리 잔디 위에 뽀얗고 하얀 물체가 보여 걸어가 보니 송이버섯 3 개가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앞으로 쭉 걸어본 다. 먼저번에 왔을 때는 민들레가 함께 모여 피었는데 어느새 민들레는 다지고 토끼풀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이좋게 피어있다. 민들레나 토끼풀이나 잡초지만 여기저기 피어있는 게 정겹게 보인다. 며칠 전에 갔던 숲 속엔 모기가 물고, 꽃가루가 날려 산책을 즐기지 못했는데 이곳은 모기도,  꽃가루도 없어 아주 좋다. 숲이 깊지 않고 나무가 많지 않아서 모기가 없으니  살 것 같다. 한두 시간 걷는데 모기에 뜯기고 꽃가루가 시야를 가리니 고역이었다.


그늘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걷다 보니 아이들 놀이터가 보이는데 아이들은 없고 심심한 어른들만 띄엄띄엄 거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만나면 즐거워 이런저런 이야기로 친구가 되던 시절이 그립다. 사람을 피하고, 의심하며, 서로가 떨어져야 한다는 의식이 일상화되었다. 언덕이 깊어 겨울에는 많은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러 오는 곳인데 올겨울은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 멀리 보이는 곳에 사고가 났는지 구급차와 경찰차가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소형차 한 대가 왕창 찌그러져 울고 있다. 젊은 사람 몇 명이 근심 어린 얼굴로 토잉카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고가 없을 수는 없지만 속상한 일이다. 생각지 못한 사고로 힘이 빠져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살면서 누구나 사고를 당한다.


차사고를 보고 지나가노라니 오래전에 났던 사고가  생각난다.  파란불에 지나가는데 기다려야 하는 차가 갑자기 우리 차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우리 차는 한 바퀴 삥 돌고 바퀴 하나가 빠져 달아나고  반대방향으로 보고 멈췄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앉아있고 길 건너 있던 경찰이 달려와 구급차를 부르고 토잉카를 불러주며 수습되었다. 우리는 병원으로 응급차를 타고 가서 검사를 받고 집에 왔다. 충격으로 목과 허리가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한참을 병원에 다녔다. 한번 사고 난 차도, 몸을 다친 우리도 후유증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던 기억이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리막길을 지나 운동장으로 다시 접어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한가롭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공원이 있어 너무 좋다.


늦여름이 되면 비 온 뒤에 나오는 버섯이나 따러 다시 와야겠다. 자연 훼손 때문에 아무런 약도 뿌리지 않는 정부가 고맙고, 나물이고 버섯이고 안심하고 뜯어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집안에 있어도 세상은 돌아가지만 이렇게 나와서 한 바퀴 돌면 기분도 새로워지고 궁금하던 것들이 답이 나온다. 늑대도 궁금했고, 버섯도 궁금했는데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시시한 나날이 특별한 날이 되어간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하루가 가고 순간순간의 작은 행복을 만들며 특별하지 않은 나날은 이렇게 특별하게 지나간다. 어쩌면 삶이란 음식에 넣는 양념 같은 것 같다. 맛이 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듯이 맛난 삶 속에 행복이 깃든다.



볼수록 예쁜 함박꽃이 사랑을 전한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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