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ng Sook Lee Jun 26. 2020

옥상에 있는 고추 잘 있냐


고추가 하얀 꽃을 피웠다.(사진:이종숙)




화창한 6월 아침이다.

어제저녁에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비가 많이 올 줄 알았는데 비가 비켜갔는지 하늘이 맑고 화창하다. 며칠 온 비로 채소들이 부쩍 자랐다. 은 이미 노란색 꽃이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고 있고, 옆에 있는 파도 벌써 씨를 품고 있은지 며칠이 지났다. 상추와 깻잎은 나름대로 잘 자라 몇 번 뜯어먹었고, 작년에 친구가 가져다준 부추 모종이 제법 잘 자라 부침개를 몇 번 해 먹었다. 채소라는 것이 물 주고 풀 뽑아주며 정성을 들이면 웬만하면 잘 자라주는데 여름 날씨가 추운 이곳이라 신경이 쓰인다. 자라면 먹고, 안 자라면 사 먹으면 되지만 기왕 씨를 뿌렸으니 예쁘게 자라주면 좋겠다. 세월이 오고 가고,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철이 다가오는데 그 옆에 있는 고추는 자라지 못한 채 꽃망울이 달려 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예쁜 하얀 꽃이 고추가 되어 열릴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몇 년째 고추농사가 안되어 본전은커녕 조바심만 하다가 여름이 가고 말았는데 올해는 꽃까지 피니 몇 개라도 따서 먹을 것 같다. 그까짓 거 시장에 가면 2-3불이면 몇 개씩 사서 먹겠지만 기르는 재미로 해마다 모종을 사 온다. 몇 년 전 고추 농사가 대풍이었던 해는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서 나무가 무거워 쩔쩔매어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기댐 목을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에는 고추 장아찌까지 담가 먹고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밥을 먹으며 고추 농사 자랑을 했었다. 오래전, 그러니까 정확히 31년전시어머니가 옥상에 고추를 심어놓고 한참 자라고 있을 때 이곳에 오시게 되었다. 모종을 심고 운동삼아 매일 옥상에 오르내리며 물을 주고 정성을 들였다. 고추가 하나둘 열매를 맺으며 예쁘게 잘 자라고 있을 때 오셨는데 어머니는 마치 어린애를 놓고 온 것처럼 궁금해하셨다. 그때만 해도 국제전화 하기가  비싸자주 할 수가 없었다. 서로 안부 묻기도 아까운 시간에 어머니의 관심은 오직 옥상에 놓고 온 고추가 궁금하셨던 것이다.





당연히 함께 살고 있는 아들 며느리가 잘 돌보고 있는데도 엄청 걱정을 하셨던 생각이 난다. 식구들의 안부보다 고추 안부가 더 궁금했던 어머니는 전화를 할 때마다 "옥상에 있는 고추 잘 있냐?"로 시작하고 고추에 물 잘 주라는 말로 전화를 냈다. 그때 어머니 연세가 73세로 평생을 해 오시던 농사도, 살림도 안 하시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셨다. 옥상에서 고추 기르는 재미로 하루하루 지내시며 정이 듬뿍 들었으니 궁금도 하시겠지만 그때 나이가 젊었던 남편과 나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거리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드라마를 보며 다음회가 궁금 해지듯이 어머니도 고추가 엄청 궁금하셨는데 그것을 이해 못하고  그까짓 고추가 뭐길래 그렇게도 궁금해하시는 어머니가 이상했다. 아들 며느리가 사는 것이 궁금해서 이곳에 오신 어머니는 너무 심심하셨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남편과 나는 직장에 다니니 하루 종일 텅 빈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한국에 있는 고추만 생각셨을 것이다. 사람과 차가 많아 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복잡한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하루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지나다니는 차를  셀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쉬는 시간에 손주들을 만나시려고 길 건너에 있는  운동장으로 가셔서 얼굴을 보고 오는 것 밖에는 하루 종일 집에 계셨다. 저녁때 퇴근하고 집에 오는 우리와 저녁을 먹고 나는 또 알바를 하러 나갔었다. 은행빚으로 집을 샀으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빚을 갚기 위해 또 일을 가는 나를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셨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온 며느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 텐데 며느리가 피곤할까 봐 주무시는 척하셨다. 




갓이 노란색 곷을 피고 하늘거린다.(사진:이종숙)


하루 종일 누구 하나 말할 사람도 없이 심심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여 피곤하지만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인사를 드리면 "피곤한데 어서 가서 자라".  하셨다.  아들네집에 놀러 오셨는데 3박 4일로  록키 산맥에 있는  제스퍼와  밴프를  여행시켜 드리고, 매일 집에만 계시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많았기에 "오늘 뭐하고 지내셨어요 어머니?"  하고 안부를 묻고 옆에 앉으면 그때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신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생모가 돌아가셔서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낳은 엄마처럼 사랑해 주셨고, 친정이 워낙 잘 사는 집이라서 남의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사시다가 시집오셨단다. 작약꽃을 시집올 때 가져다 심었다는 것 까지 기억하시고 친정 동네 친척들의 생일까지 다 기억하실 정도로 기억력이 좋으셔서 한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면 밤새는 줄 모르고 하셨다.


한참을 이야기하시다 담배 한 대 피시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서방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18살에 시집와서 40살에 서방님을 먼저 보내시고 한 많은 세상을 서방님을 향한 그리움 속에 사셨으리라. 자식들을 키우는 세월 따라 자신도 늙고 한가하게 사시다가 고추 기르는 재미를 붙였다. 그러다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곳에 와서 잠깐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으셨는데 막상 이곳에 와서 보니 손주들도 다 자랐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무료하셨는지 한 달만 머무르고 가셨다. 식구들 기다리며 혼자 뒤뜰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세어보니 하루 종일 10명이 집 앞을 지나갔고 8대의 버스가 지나갔다며 심심했던 하루를 이야기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오죽 심심했으면 옥상에 심어 놓은 고추가 궁금하셨을까를 생각하니 너무 죄송스럽다.


나름대로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심심하실까 봐 성당에 다니는 친구분들을 초대하고 틈틈이 여기저기 모시고 다녔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혼자 계신 시간이 많았다. 사람 구경도 못하고,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는 외국에서 텔레비전을 켜도 이해 못하고 아무 데나 나갈 수도 없으니 참으로 갑갑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사는가 보다 하며 별 신경을 안 썼다. 철없던 시절이 지나고 나도 이제 심심한 나이가 되었다. 아이 들네 집에 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차라리 내가 힘들어도 애들이 오는 편이 훨씬 좋은걸 느낀다. 하얀 꽃을 피우는 고추를 보며 생각은 어느새 몇십 년 전으로 돌아다녔다. 지금도 귀에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옥상에 있는 고추 잘 있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