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사정상 올해는 한국 행을 차일피일 미루며 안 가기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쩌면 이번이 살아생전 뵙는 것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서둘러서 고국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혼자서 생활이 안되시는 94세의 고령의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이 다행히 오빠네 집 근처라서 오빠 가족들이 자주 찾아뵈어서 안부를 전해 듣고 있어도 여전히 궁금하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지라 혹시라도 내가 도착하기 전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비행기표를 사고 기다리는 2주간이 그렇게도 길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를 기다리지 못하실 것 같은 마음에 “엄마 제발 제가 갈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하며 간절히 기도하며 한국에 도착했다. 말로 할 수 없는 엄청난 수난과 역경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곱게 살아오신 엄마의 기나 긴 한평생이 아름다운 총천연색의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백내장 때문에 멀리서 온 딸마저 잘 못 보시는 슬픈 현실이 야속하지만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이치가 아니던가. 작년 까지만 해도 걸어 다니며 씩씩하게 활동하시던 엄마가 1년 사이에 이토록 변하신 것을 보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엄마는 아직도 그 높으신 연세에도 정신도 또렷하시고 사람들과 재미있는 농담을 잘하시어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신다. 30년 전 캐나다에 오셔서 1년 반 동안 살으시면서 배우신 몇 마디의 영어도 잊지 않고 사용하시는 고령의 우리 엄마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여전히 곱게 늙어 가시기를 바란다.
바짝 마른 엄마의 따스한 손 한번 더 만져보고 싶어 그 멀리서 찾아온 딸의 얼굴이 희미해 보여 잘 볼 수 없지만 내 손을 자꾸 만지시며 손을 놓지 않으시는 고령의 우리 엄마... 언젠가 우리 헤어지는 날이 와도 그 따스하던 엄마손의 온기를 영원히 기억하련다. 엄마의 손을 잡고 흐느끼는 나를 같이 간 딸이 위로한다
앞으로 그렇게 나도 나이가 들어 엄마처럼 늙어 갈 때 우리 아이들도 지금의 나의 심정을 이해하리라.
2주간의 방문 기간 동안 틈틈이 찾아뵙고 언젠가 찾아 올 이별의 시간을 위해 슬퍼하지 않고 보내드리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될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며 살아가지만 엄마의 그 넓고 깊은 사랑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만사 제백사하고 이렇게 와서 보면 될 것을 '비행기표가 비싸다'고, '식구들 밥해 주어야 한다' 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미루며 이제야 찾아온 딸이지만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며 “건강하게 잘 살라.” 고 수십 번 당부하신다. 떠나시는 그날까지 편안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