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Chong Sook Lee
화폭에 그려진 꽃은 시들지 않는다.( 그림 : 이종숙 )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도 그때가 전성기가 아니었나 하는 시간이 있었다. 기운도 좋아 무엇이든지 후다닥 하고, 주위에 친구들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아 어디를 가도 인기가 좋았다. 머리도 좋아 무엇이든지 한두 번 들으면 기억하고 눈썰미가 좋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거의 완벽하게 흉내도 잘 내던 때도 있었다. 무엇을 입어도 맵시가 있어 예뻤고, 화장을 안 해도 얼굴 곱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아이들 한테 시달려도 한 밤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가시고 직장을 여러 군데 다녀도 생전 피곤하지 않았다. 음식도 여러 가지로 순식간에 맛있고 예쁘게 잘 만들었고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을 초대해서 재미있는 시간도 종종 가졌다.


그런데 그런 시절이 어느덧 세월 따라가 버렸는지 이제는 나는 나 이건만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어깨도 구부정하고, 얼굴도 주름살이 생겨 여기저기 홈이 파이고, 머리는 반백이 되어 염색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펄펄 나를 듯하던 몸놀림도 이제는 느려져 매사를 천천히 하고, 기억력도 없어져 쉬 잊어버린다. 손으로 하는 것들을 좋아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틈틈이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어라도 하다가 끝을 내지 못하면 어쩌나 아니면 몸이라도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갑갑해서 바람이라도 쐴까 하며 쇼핑센터라도 걷다 보면 얼마 걷지 못해 피곤해지고 어딘가라도 자꾸만 앉고 싶어 진다. 사람은 이렇게 세월 따라 늙어가고 젊었을 때 하던 것들을 못하고 안 하게 된다. 그래도 나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 한인 노인회가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사람으로 만으로 65세가 되면 노인회에 가입할 수 있다. 회비는 일인당 20불이다. 퇴직 후 남편과 나도 회비를 내고 노인회 회원이 되었다. 특별히 정기적으로 날짜를 잡아놓고 만나는 것이 아니고 노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회원들의 취향과 시간이 맞는 회원들이 참석한다. 노인회는 한인회에 부속된 단체이라서 한인회에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참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노인회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노년대학이 있다. 많은 노인들이 참석하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스마트 폰 활용법과 간단한 컴퓨터 기초를 배우고 노인회 합창반이 있어 많은 분들이 고은 목소리로 우리 고유의 노래를 들려주신다. 잊혀 가는 고향의 명절인 설과 추석을 위한 향연으로 큰 잔치를 하고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말 행사를 정기적으로 한다. 노래교실을 비롯하여 뜨개질반과 그림반 그리고 사진반과 장구반이 있다. 강사진에 따라 몇 개의 프로그램이 더 추가되기도 하고 휴강을 하기도 한다. 골프와 온천을 포함하여 봄가을 소풍을 가서 상호 간에 친분을 쌓을 기회를 만든다. 몇십 년을 한도시에 살아도 교회가 달라 만날 수 없었던 많은 분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나이가 들어 이러한 교류 없이 집안에 처박혀서 고독한 노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 처량한데 이런 노인회가 있어 여러 가지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도 윤택하여지리라 믿는다. 젊었을 때 일하느라 애들 키우느라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어도 또는 배우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취미생활을 넓혀 나간다. 노인이 되어 다시 어린이가 되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또 다른 나날의 기쁨이 되었다. 노래하며 손뼉 치고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이민 동기들과 이민 선배님들을 만나니 다시금 하루하루가 새롭다. 행사를 주관하시는 임원분들은 준비하는 과정이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신다.


시간이 없었던 젊은 시절의 전성기는 끝났다 해도 제2의 전성기는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모르는 것을 배우며 나날의 보람 속에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나의 전성기이다. 나보다 몇 년 연배인 어른들이 보면 나는 아직도 청춘에 속하는 나이다. 모든 것들이 젊었을 때와 확연히 달라졌지만 아직 좋아하는 취미가 있고 여기저기 나름대로 활동하며 친구들과 만남도 지속하며 살아간다. 감수성도 예전같이 예민하지는 않아도 눈물이 나도록 웃기도 하고 슬픈 영화나 아픈 사연에 나의 일처럼 눈물도 흘린다. 젊음의 전성기는 이미 없어도 오늘은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다. 한창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다보는 오늘은 나의 또 다른 전성기가 아니던가. 오늘의 내가 20년 전의 나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듯이 오늘은 20년 후에 돌아보면 아마도 퍽이나 멋진 날 일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세월에 참으로 관대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괴롭지 않은 날이 어디 있을까? 슬프지 않았던 청춘이 어디 있을까? 다 지나고 보면 가시밭길도 꽃길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전성기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들을 잊지 않고 아름답게 기억한다면 우리의 전성기는 영원하리라. 자식들을 키우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가 생각이 난다. 연년생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정신없이 보낸 세월은 참으로 아름다운 나의 전성기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나의 여생을 즐겁고 보람 있게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멋진 전성기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살다가 내가 떠난 후에 아이들과 친구들이 나를 기억하는 한 나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으리라.


IMG-20200112-WA0017.jpg 오늘은 나의 최고의 날 ( 사진 : 이종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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