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겨울은... 겨울에 걱정하자

by Chong Sook Lee


맛있는 비빕밥(사진:이종숙)




여름 같지 않은 날씨에 여름옷을 몇 번 입지 못하며 지냈는 데 이번 주 내내 영상 30도를 웃돈다. 체감온도로 34도 35도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나무 밑에서 손주들과 앉아서 놀고, 물장난하는 손주 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간다. 바람도 없는 맑은 날이 세상을 다 태울 듯이 뜨겁다. 이렇게 며칠 덥다가 8월이 되면 갑자기 가을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조금 더우면 더워서 못살겠다고 불평하고, 조금 추우면 벌써 여름이 갔냐고 서운해하는 우리네 들이다. 계절은 제 할 일을 하는데 아무 잘못 없는 계절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봄이 따스하기만 해도 꽃은 피겠지만 바람도 있고 비도 내려야 함을 모르고 따뜻하고 맑은 봄 날씨만 원한다. 여름도 봄같이 적당히 따뜻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들 마음대로 되지 않고 더웠다 덜 더웠다를 반복하며 작물을 익힌다.


올해는 봄도 여름도 선선해서 심어놓은 고추는 이제야 꽃이 만발했다. 고추가 익어야 하는 8월이 내일 모래인데 이제야 꽃을 피우니 올해도 고추농사는 틀린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며칠 계속되는 뜨거운 여름 날씨 덕분에 몇 개라도 열리면 좋겠다고 기대해 본다. 재미로 하는 텃밭농사이지만 희망과 실망을 거듭한다. 사람의 일이란 만족이 없는지도 모른다. 잘되면 더 잘되기를 바라고 안되면 절망하고 체념을 하게 된다.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려 다른 채소들은 풍년인데 추위에 약한 고추가 안되어 잘된 채소는 관심 없고 안된 고추 가지고 신경을 쓰는 게 인간이다. 열 가지 잘되고 한 가지 안되면 불평하는 인간의 모습이니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벌써 3주째 대식구가 모여 식사를 하며 지낸다. 다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단하고 맛있는 음식 메뉴로 아이들도 먹고 어른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해야 한다.


큰며느리는 한국사람이니 당연히 토종 음식을 좋아하고 둘째 며느리는 여기서 태어나 자랐지만 필리핀계인데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무엇이든지 해주면 맛있게 잘 먹으니 걱정 없다. 아이들 모두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잘 먹으니 해주는 나도, 먹는 아이들도 모두 행복하다. 곰국이나 육개장을 해줘도 잘 먹고, 냉면이나 비빔밥을 해 줘도 잘 먹는다. 집밥이지만 매일 다른 음식으로 해 주니 매일매일 외식하는 기분이 든단다. 음식재료가 한국처럼 흔하지 않지만 현지에서 구하여 한국식으로 하면 부족할 것 없다. 열 명의 입맛이 다 다르지만 식당을 한 경험으로 하다 보면 다들 행복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가서 산 세월이 길어져 다들 나름대로 음식을 잘하지만 엄마 음식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라도, 무언가라도 만들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다.


지금도 생각난다.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가면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루종일 부엌에서 서성대시던 엄마가 그립다. 외국에서 한국음식도 못 먹고사는 나이 든 딸을 위해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정성 들여 만들어 주셨다. 한국음식을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에 부모님이 이곳에 오셨기 때문에 시대가 바뀐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하신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지만 2년 전만 해도 뭐라도 해주시려고 애를 쓰셨던 엄마의 생각을 하며 나도 아이들이 좋아하고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다. 30도가 넘을 듯이 바람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하니 오늘은 무언가 시원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 김밥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다가 간 고기가 있으니 여러 가지 야채를 준비해서 비빔밥이나 시원하게 만들어 먹어야겠다.




쑥갓 꽃이 노랗게 피었다.(사진:이종숙)




일단 간 고기에 불고기 양념을 하여 볶고 호박을 채 썰어서 볶어놓았다. 시금치는 없지만 당근과 버섯 그리고 부추를 볶고 오이는 채 썰어 놓았다. 이제 계란 프라이를 식구 수대로 만들어 접시에 담아 놓고 고추장과 열무김치를 꺼내놓으면 된다. 커다란 그릇에 밥을 담고 맛있게 볶아놓은 야채와 고기를 색깔에 맞춰서 밥 위에 고명으로 올려놓고 맨 나중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놓으니 근사한 비빔밥이 완성되었다. 비빔밥 에는 국물이 필요하니 두부와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심심하게 국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도 날씨가 너무 더워 식욕이 없는데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비빔밥이 오늘은 크게 한몫했다. 뜨거운 여름은 여름대로의 음식이 있어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는 뜨거운 국물로 추위를 이겨내는 슬기로운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며 산다.


나날이 외식 문화가 발달되어 가면서 요리의 필요성이 줄어가던 중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식당의 문이 닫혔다. 사람들은 나가서 외식하던 일상을 빼앗기고 서서히 집 밥에 익숙해져 간다. 생활이 바쁘다 보면 요리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 즉석요리로 때우거나 외식하기 일수다. 전염병으로 수입도 줄어들고 직업도 구할 수 없이 되면서 사람들도 집밥을 연구하게 되었고 집밥의 즐거움을 발견한 요즘 오히려 젊은이들도 집밥을 선호한다. 내가 음식을 해주면 "이런 것을 음식점에 가서 먹으면 재료도 많이 넣지 않고 값만 비싸다." 라며 "이런 것 식당에서 얼마짜리".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귀찮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저 재미로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재료를 준비하고 하나하나 하다 보면 어느 날 근사한 요리가 상에 올라갈 수 있다.


싫어서 안 하고, 귀찮아서 안 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안된다. 잘하지 못해도, 생각하고는 다른 결과가 나와도 자꾸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결혼초에 내가 만든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쩔쩔매던 남편의 식성은 내 입맛에 길들여져 내가 하는 음식은 뭐든지 다 좋아한다. 세월 따라 내실력도 좋아지고 남편도 길들여졌다. 아이들도 며느리들과 사위도 맛있게 먹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는 이대로의 삶이 좋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맛있는 것 해주고 손주들과 재미있게 놀다 가면 된다. 하늘에 는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떠다니고 바람도 우리를 찾아와 인사를 한다. 더운 여름날 불쾌지수는 높지만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오늘같이 더운 여름날이 있기에 겨울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을 알아간다.


어느새 7월도 다 가고 있다. 여름이 길어봤자 8월 한 달인데 더우면 더운 대로 감사하고 추우면 추운대로 여름을 생각하며 버티면 된다. 세상사, 인생사 싫어도 좋아도 떠날 때는 짧은 인생이 아닌가. 어느 날 추억을 더듬다 보면 더위도, 추위도 좋았던 시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더운 날엔 노래나 부르며 게으름 피우는 베짱이가 되어 여름을 즐겨보자.


오지 않은 겨울은... 겨울에 걱정하자.


사과가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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