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들이 물고 빨며 사랑한다고 덤벼든다. 오랜만에 산책길에 들어섰더니 왜 그동안 안 왔느냐며 난리법석이다. 얼굴, 목 그리고 팔다리 할 것 없이 좋아 죽는단다. 내 피가 그리도 먹고 싶었는지 내 주위를 빙빙 돈다. 귀에 바짝 대고 왱왱 거리며 사랑을 고백한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3주를 살다 보니 산책은 꿈도 못 꾸고 지내다가 오늘은 산책을 나왔는데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며칠 동안 날씨가 덥고 찌더니 오늘은 아침나절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소나기가 내렸다. 산책을 갈까 말까 하다가 비가 한번 지나갔으니까 괜찮겠지 생각하며 산책길로 들어섰다. 신선한 숲 냄새가 싱그럽다. 그런데 산책 길에 들어서자마자 모기들이 버선발로 달려와 환영을 한다.
손을 휘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새까맣게 날아와 소리도 없이 살그머니 팔이고 다리고 사정없이 깨문다. 모자를 벗어 여기저기 모기를 쫓아도 어느새 달라붙어 있다. 얼마나 사람들을 물었는지 여간해서는 도망가지도 않는다. 빙빙 돌다가 다시 와서 살짝 앉아서 피를 뽑아 먹는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까 모기의 사랑 공격에 내가 지면 안되니 열심히 걷는다. 비가 와서 시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후덥지근하다. 못 본 사이에 숲은 더 우거지고 나무들도 더 많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들꽃은 어느새 지고 없다. 여기저기 빨간 열매들이 꽃처럼 익어간다. 날씨가 가물어서 계곡에는 물이 많지 않지만 어미 오리가 새끼오리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와 헤엄을 치며 간다.
어미오리는 눈에 불을 켜고 새끼 오리들을 보호하며 새끼 오리들은 어미 오리를 따라 열심히 계곡물을 해쳐나간다. 오늘은 공휴일이라서 노는 날이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 해마다 60여 개의 나라가 한 곳에 모여 각 나라의 음식과 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기자랑을 하는 날이다. 3 일간 계속되는 행사에 50여 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데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집안에 있기 너무 답답하니까 사람들은 여기저기 놀거리를 찾아다닌다. 이곳은 평소에는 사람들이 얼마 없어 산책하기에 아주 조용한 곳이다. 꾸미고 다듬은 곳이 아니고 자연으로 조성된 곳이라서 더 좋다. 꾸밈없는 저마다의 모습을 보이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지에 벌집이 있다.(사진:이종숙)
한동안 못 온 사이에 벌들이 두 군데나 커다란 집을 나무에 지어 놓은 것이 보인다. 물론 숲 안에는 많은 벌집들이 있겠지만 산책길에서 보이는 벌집은 처음 봤다. 작은 수박만 한 벌집으로 벌들이 들락거린다. 잘못 건드리면 벌들이 난리를 치니 조심하며 걸어간다. 몇 년 전 우리 집 앵두나무에 벌이 벌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주먹만 한 벌집이지만 집안으로 벌이 들어올까 봐 남편이 벌집을 슬쩍 건드렸는데 벌이 길 건너까지 쫓아와서 공격하는 바람에 한번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정도로 날씨는 화창하다. 다리를 건너며 계곡을 본다. 많은 나무와 풀과 꽃들이 상생하는 비밀스러운 숲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모기들은 여전히 쫓아온 다.
다리에 모기가 물은 자국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가렵다. 숲 속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모기 때문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봄에는 꽃가루가 날려서 힘들었는데 여름엔 모기 때문에 괴롭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 두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모자를 벗어 모기를 쫓으며 열심히 앞으로 간다. 어디를 가도 방해꾼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겨나듯 숲 속에는 모기가 방해를 한다. 다리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앞에는 거무죽죽한 취나물 꽃이 흉하게 죽어있다. 한때 그리도 아름답던 꽃이 죽으니 저리도 흉한 것을 보니 죽음이란 것이 동물이나 식물이나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덕을 오르는데 양쪽으로 길이 나있다. 비가 심하게 올 때 가운데가 파여 길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가 물 길을 만들어주면 한쪽으로 물이 흘러 길을 보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간다. 자연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낙수물이 바위를 뚫고, 없던 길을 만들고, 있던 길을 메운다. 세상사, 인간사도 다를 바 없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으로 연결이 되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생겨난다. 어느 것 하나도 영원하지 않다. 믿을 것도 없고 감출 수도 없다. 마음에 수많은 마음이 있어 순간순간 바뀌니 그 안에 무엇이 있는 줄 모른다. 맹세하고 언약해도 확실한 것은 없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얼굴의 땀을 시켜주며 숲 속으로 달아난다. 잡을 수도, 쫓아갈 수도 없다. 사람의 마음도 바람 같아 수도 없이 변한다. 하늘과 땅이 하는 것을 볼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기가 사는 동네(사진:이종숙)
아까 지나갈 때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니 새삼 반갑다. 각자 갈길에 바빠도 숲에서 잠시 스쳐 가는 인연도 소중하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웃으며 헤어진다. 모르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이고 다를 것 없다. 알던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언젠 가는 헤어진다. 걸으며 생각해본다. 인생은 무엇인가? 못 만나면 못 살 것 같고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놓고 만났던 사람들을 못 본 지 오래됐다. 안 만나도 이렇게 산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친구 삼아 살아간다. 언제라도 나를 환영하는 숲이 있어 좋다. 계산 없는 숲이 있어 좋다. 봄에는 꽃을 피고, 여름에는 그늘을 주고, 가을에는 단풍잎으로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겨울에는 하얀 눈길을 주니 너무나 고맙다.
거기다 모기까지 오랜만이라고 이렇게 환영하니 얼마나 행복한가. 모기와의 전쟁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을바람이 불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그래.. 실컷 물어라 모기야. 너도 살고 나도 살며 한 세상 의지하고 살아가자. 여름 한철 친구 하며 살다 보면 겨울이 오겠지. 못 만날 것 생각하며 사이좋게 지내자 모기야. 모기는 여전히 나를 쫓아와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가 싫다고 뿌리칠수록 더 덤벼든다. 해결책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모기가 사는 숲 속에 들어온 내가 방해꾼이다. 자연이 좋아 자연 안에 사는 그들을 위해 숲 속을 떠난다. 그들이 없을 때 다시 오리라. 열심히 걸었더니 더워서 땀이 범벅이 되었는데 어서 한바탕 비라도 왔으면 좋겠다. 비가 와서 땀도, 모기도 싹 없애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