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비밀번호의 행방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기억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어 살다 보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주위에 동년배들 중에는 본인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도 많다. 전화번호를 작은 수첩에 일일이 적어 다니던 시절에 한번 적은 번호는 내 머릿속에 바로 입력이 되어 수첩을 안 보고도 다 기억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이 생기고 카톡이 생긴 지 오래되어 전화번호를 기억할 필요 없이 이름만 알면 된다. 아이들 전화번호도 기억이 안 나서 외우려고 생각했는데 카톡 방에 들어가면 전화가 바로 연결되어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람의 두뇌는 쓰지 않으면 멈추는 것일까? 한번 보거나 읽으면 기억하던 나였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로 바뀌었다.


한 번은 공들여 글을 쓰고 발행 전에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서 쓴 글을 잃어버려 도저히 찾을 수 없던 적이 있다. 그 글을 찾으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도 찾지 못해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쓰기로 했지만 몇몇 단어만 생각날 뿐 없어진 글을 다시 쓰기란 불가능해서 체념하고 말았는데 그 글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있다. 글을 내가 썼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약이 올랐지만 글은 이미 태평양 바다를 향해 흘러가 버렸다. 그처럼 기억은 나를 떠나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지를 하는 온라인 시대가 되어 무엇이든지 로그인을 해야만 해당 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비밀번호나 사용자 이름이 혼동되어 문제가 생기면 들어가지 못한 채 발만 동동거린다.


오래전 컴퓨터를 시작할 때는 로그인하는 것이 하나였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비밀번호를 여러 곳에 사용하게 되었다. 몇 번은 기억하지만 한동안 쓰지 않으면 잊혀 기억이 안 나고 다시 만들고 하다 보면 어떤 것인지 헷갈려서 모르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로그인 할 일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물어보다가 아이들이 비밀번호와 사용자 이름을 보관해 놓는 앱을 전화에 깔아 주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 문제가 생겨서 전화로 문의하는 과정에 로그인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기억이 안 났다.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서 간신히 로그인을 하고 들어갔는데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컴퓨터나 전화로 연결되는 사이트를 들어가는 비밀번호와 사용자 이름이 그렇게 생소한지 모르겠다. 간단하게 해도 모르고, 기억하기 쉬운 뻔한 것으로 만들어도 매번 혼동이 되어 기억이 안 난다. 아이들한테 한심하다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기억이 안 난다. 적어 놓으면 된다 고 생각하고 적어 잘 모셔두지만 어디에 적어 놓았는지 막상 필요할 때는 생각이 나지 않아 허둥댄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며 자신이 한심하여 정신을 차린다고 달력에 적어놓았다. 다시 또 필요한 날이 생겨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어디에 적어두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간신히 찾아보니 어디에 쓰는 것인지 모를 번호가 달력에 적혀 있어서 로그인을 보니 안된다.



(사진:이종숙)




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필요한 번호를 다 묶어서 한 군데 들어가게 해 놓고 가장 쉬운 번호를 만들어 보관했는데 그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으니 걱정이다. 아이들에게 전화하고 아이들은 모른다고 하고 나는 그것이 필요한데 생각은 안 나고 이리저리 헤매다 어찌어찌해서 해결을 했지만 한심하다. 바보가 아니고선 이럴 수 없다.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막혀 웃음밖에 안 나온다. 옛날 25년 전 1994년에 짐 케리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왔던 바보와 멍청이 (dumb and dum ber)라는 영화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찌나 웃기는지 아이들과 엄청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남편과 나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웃기며 산다.


남편과 나는 나이가 동갑이다 보니 기억력도 거기서 거기다. 한 사람이라도 나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텐데 둘 다 똑같이 기억을 못 하니 작동이 안 되면 집안이 한 번씩 훌떡 뒤집힌다. 우리 둘이 하다가 못하면 가까이 사는 둘째 아들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한다. 거기서 해결이 안 되면 멀리 사는 큰아들과 딸에게 까지 연락을 하며 비밀번호를 물어본다. 결국 비밀번호를 새로 만들어 다시 보관함에 집어넣어 놓는다. 며칠 전에 잘되던 텔레비전이 연결이 잘 안 되어 전화국과 이야기를 하며 문제를 해결하던 큰아들이 "벽에다 크게 써 놓아야 해요."라고 하는 걸 간신히 말려서 넘어갔지만 그야말로 큰 일이다.


비밀번호 이야기만 나오면 꼬리를 내리는 남편과 나의 이름은 '바보와 멍청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바보 둘이 산다. 가르쳐줘도 모르고, 기억하라고 해도 잊어버리고, 써놓은 곳도 모르고 왜 써놓았는지도 모른다. 고작 기억하는 것은 옛날 고리짝 시절 이야기만 기억한다. 아무런 기억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일 뿐 정작 필요한 것은 아무리 가르쳐줘도 금세 까먹는 바보가 됐다. 이제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벽에 까만 매직펜으로 비밀번호를 적어 만인에게 알릴 텐데 이번 비밀번호는 머리에 쥐가 나도록 기억해야겠다.


그까짓 몇 안 되는 단어나 번호가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나도 모른다. 비밀번호를 물어보면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웃는다. 왜 그까짓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아이들은 기가 막혀서 같이 웃는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사는 동안 로그인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잊혀 버린 비밀번호 이야기만 나오면 잔뜩 긴장이 되어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숙이는 바보와 멍청이가 산다.


기억나지 않는 비밀번호의 행방을 알고 싶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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