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서... 오랜만에 나눈 우정

by Chong Sook Lee


들꽃이 아직도 화사하게 피어난다.(사진:이종숙)





내가 없는 세상에 산다. 세상은 나를 모른다. 아무도 나의 생사에 관심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비참해서 한순간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산다. 사랑이나 관심 없이 하루하루 그냥 살아간다. 마음속으로 간직한 채 표시 안 내고, 표현 안 하고 산다. 그리움도 궁금증도 없는 듯 무심히 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사람을 안 만나고 살아가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오고 가고 만나서 웃고 나누며, 쓸데없는 얘기도 하고, 남의 욕도 하며 사는 게 인생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산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은척하며 살아간다.


올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지병으로 간 사람도 있고 갑자기 떠난 사람도 있다. 주위 사람들이 떠나면 장례식을 통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통례인데 요즘엔 그것도 없다. 외출금지와 집합 금지가 있어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다 보니 소식도 전하지 않고 식구끼리만 모여 간소하게 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 나중에 알고 위로하며 넘어가지만 인정이 점점 메말라 간다. 그래도 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한국 같지 않고 대부분 단독주택에서 살기 때문에 뜰이 넓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다. 식사는 번거롭지만 뒤뜰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친분을 계속하며 살 수 있다. 외출금지가 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까이할 수 없지만 야외에서까지 못 만날 이유는 없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팀을 만들어 시간을 함께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먹고 마시고 놀며 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행복인데 전염병 때문에 만남과 나눔의 자유를 빼앗겼지만 마음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 감염이 되어 병이 들어 아프지 않은 이상 만나지 않고 집안에만 처박혀서 살 이유는 없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많은 사람이 만나지도 않고 고작 해야 먹을 음식을 사러 장 보는 것이 고작인데 손 닦고, 가까이 가지 말고, 아프면 집에 있으면 된다. 세상이 지금은 감옥 같은 생활이라고 불평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정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불러다 먹이고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침 튀겨가며 얘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교류하며 살 수 있다.


한 두 사람과 같이 공원도 가고, 산책을 함께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만나서 꼭 밥을 먹고 가까이 앉아서 쑥덕거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몇 달 동안 나름대로 정부의 수칙을 따르며 생활했다. 우리가 항상 해왔듯이 거리를 지키며 사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야 할 사항이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없어져도 어느 날 또 다른 전염병이 생겨 우리를 덮칠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 몇 달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적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 식당을 안 가도 되고, 문화생활을 안 해도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영상 통화를 하며 소식이 궁금하면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살아간다. 그것도 귀찮으면 죽은 듯이 살 수 도 있다.


코스모스가 가을을 반긴다.(사진:이종숙)




사람이 혼자 살 수 없지만 연습하면 혼자도 살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는 방식이 다르니까 어떻게든 살게 된다. 고국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며 몇 년 동안은 이곳에서 못 살 것 같았는데 이젠 이곳이 고향이 되었다. 한국이 좋지만 떠나온 세월이 너무 길어 다시 갈 수 없음을 매번 방문할 때마다 느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 사람이 된 것이다. 그처럼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조금 더 길어지면 옛날의 삶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며 사회를 배우는 것처럼 전염병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던 매너를 배우며 실천한다. 청결과 질서 그리고 기다림과 인내와 배려를 가르친다.


전염병으로 불편한 것은 옛날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기에 싫은 것인데 사실은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우리가 무시하며 살았기에 불편할 뿐이다. 일상을 빼앗긴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이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어디를 가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손 소독제가 있고,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고 다닌다. 싫으면 집에 있으면 되고 견딜만하면 외출을 하며 살면 된다. 싫다고 싸울 필요도 없고 화를 낼 필요도 없다. 하라는 대로 법을 따르면 서로 좋은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가 들렸다. 너무 궁금해서 얼굴이나 보려고 잠깐 들렸다며 집안에는 안 들어온다고 하기에 뒤뜰로 가서 지난 몇 달 동안의 이야기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좋은 날씨에 하늘을 바라보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데 만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세월을 보낸 것이 아쉽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면 우리는 만나서 여전히 교류하며 살 수 있음에 그나마 감사한다. 죽은 듯이 살 필요 없이 조심하며 만나면 된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온도차가 많이 나고 무심한 세월은 간다. 나이 든 사람이나 몸이 약한 사람들은 성당도 못 가는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뒤뜰에 와서 커피 한잔씩 마시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막혔던 체증이 내려간 듯 너무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산다는 것도 고역이니 서로 조심하며 거리를 두고 일상을 되찾으면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만남이 새로운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만나면 될 것을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무엇을 주저하는가?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도 못하게 되는 날이 다가오는데 생각 없이 살아보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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