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지만... 아름다웠던 서울이 그립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꽃처럼 뽀얗게 피어난다. 나무들도 더운지 꼼짝하지 않고 서있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더운 날의 땀을 식힌다. 동네는 아주 조용하다. 날씨가 더워서 인지 아이들도 없다. 멀리서 누군가 잔디 깎는 소리가 날뿐 조용한 한낮이다. 찾아보면 일거리가 있겠지만 그것도 귀찮다. 사람의 몸은 간사하여 게으름을 피우면 마냥 늘어진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냥 놀고먹는 엉터리 인생이다. 아이들 낳고 기르며 일도 하고 돈도 벌며 하루 24시간이 짧다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살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도 세월은 잘도 간다. 식당을 팔고 하루 이틀 놀은 세월이 벌써 3년인데 그동안 그야말로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고 있다. 느지감치 일어나 간단한 체조를 하고 아침을 먹으며 한국 뉴스를 본다.


물난리와 홍수로 피해를 입은 많은 수재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정치인들은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고 국민들은 데모를 한다. 잘살기 위하여 '잘살아보세'라는 한마음으로 살았던 그 옛날의 한국은 어디로 갔는지 원망과 질책을 하며 나라가 시끄럽다. 집값 폭등으로 서민은 살 곳이 없고, 불황으로 실업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울상이다.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해결책은 없다. 코로나 19의 재확산 징조로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움직이지 않고 살 수도 없고, 산속으로 떠나서 살 수도 없다. 자유가 지나쳐 방종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의심의 마음만 가득 찬 사회가 되어간다.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고 나쁜 소식만 들리니 뉴스를 보기가 역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국 소식이 궁금하여 보게 된다.


뉴스를 보고 나면 괜히 우울하다. 이렇게 떠나와 사는 우리들은 고국을 위해 특별히 한일은 없어도 고국이 잘 나가기를 바라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날씨가 덥다더니 하루 종일 찐다. 이곳 더위는 한국이나 다른 열대 지역에 비할 수 없지만 어쩌다 더운 날엔 쩔쩔맨다. 몇 년 전 6월에 한국에 다니러 갔던 여름날이 생각난다.



(사진:이종숙)




익어간다는 말이 맞을까?
타들어간다는 말이 맞을까?
6월의 서울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서운 더위로 생각되는 것은 어쩌면 추운 나라에 사는 나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사는 곳에 따라 피부의 결이 달라지듯이 40년을 넘게 추운 곳에 살다 보니 피부는 추위에 강해지고 더위에는 약해진 듯하다. 불과 30도 전후의 온도이지만 얇은 윗도리마저 벗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옷 속을 뚫는듯한 뜨거운 햇살의 열기에 옷 위를 손으로 대면 잘 달군 인두의 뜨거움을 느낀다. 머리부터 흐르는 땀은 얼굴을 타고 줄줄 흐르고, 닦아도 여전히 솟아나는 땀과의 전쟁은 오직 나만의 문제인 듯 주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무관해 보였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태양의 열을 받는데 사람들은 뜨거움을 모르고 조끼에, 스웨터에 겉옷을 걸치고 전혀 더위를 느끼지 않는 듯이 무심히 지나친다. 사람들은 이런 뜨거운 날씨가 견딜 수 없는 열기와는 상관없는 듯 생활한다.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미세먼지는 “아주 나쁜 상황”이라는 정보였지만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 정도의 온도와 미세먼지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처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상이 타도, 땅속으로 가라앉아도, 하늘로 솟아도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뉴스로 보있던 한국의 모습은 사람이 살 곳이 안돼 보였는데 그 추한 서울의 모습은 어디를 보아도 찾아볼 수 없이 아름답기만 한 서울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데모를 일삼는 사람들의 모습도 없었고, 공기 때문에 마스크로 입과 코를 막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몇몇에 불과할 뿐 사람들의 모습은 위험에 노출된 모습과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어떠한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묵묵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어쩌면 온도도, 공기도 사치일 뿐인 듯하다. 영상 3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위대한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처절한 사명감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멕시코를 비롯해서 열대지방은 40-50도를 넘나들지만 그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내심은 과연 위대한 한국인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서울의 여름은 아름다웠다.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고 조용하며 사람들은 친절하고 어디를 가도 예의를 지키며 상냥하다. 외국생활을 많이 한 나로서는 한국이 나의 모국이지만 내가 살던 70년대와는 너무나 달라져 어리둥절하기도 해도 언제 정감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더위에 약한 나는 매번 고국방문을 4월에 하곤 했는데 계획도 없는 6월에 방문을 하여 처음으로 겪어본 더운 날씨에 땀 세례를 받았어도 추운 12월의 날씨보다는 낫지 않았겠는가. 서울의 여름이 더워서 힘들었어도 불평하지 않음은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사는 서울이기에 그 뜨거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사진:이종숙)



차고 뒤편에 자라는 앵두나무와 딸기나무는 올해 유난히 풍년이었다. 코로나 19가 세계 곳곳에 창궐하여 사람들을 괴롭혀도 자연은 꾸준히 계절을 맞고 보내며 제 할 일을 한다. 씨를 잔뜩 물고 있는 파들은 너무 무거워 넘어져 누워있고 그 옆에 새 파가 자란다. 더운 날이 몇 번밖에 없는 이곳 여름인데도 날씨가 더우면 덥다고 불평을 하는데 지금 장마와 홍수에 지치고 쏟아지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을 한국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차마 불평을 못한다.


여전히 태양은 나무 위를 내려쬐고 멀리 보이는 나무는 미풍에 천천히 움직이며 몸을 식힌다. 세상이 멈춘 듯 동네는 조용하고, 어디서 날아온 까치는 텃밭에 우리가 먹다 던진 수박을 찍어 먹는다. 개망초는 지지 않고 계속 피어 번지고, 호박은 덩굴을 여기저기 뻗어가며 꽃을 피우더니 그중 2개는 호박을 매달고 있다. 상추와 쑥갓이 꽃을 피우고 감자는 땅속에서 잘 자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태양이 주는 뜨거움으로 자란다. 덥다고 그늘을 쫓아다니지만 그 태양이 없으면 지구 상에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뜨거운 여름날 아름다운 한국의 뜨거웠던 여름을 생각하며 나무 아래서 더위를 식힌다.



뜨거웠지만... 아름다웠던 서울이 그립다



마가목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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