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은... 내일이 알아서 하리라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이제야 철들어 가는 중이다. 아니 다시 어려지고 있다.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 투성이다. 조금 마음에 안 들면 화내고, 신경질 내고,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산다. 코로나 19로 어디서든지 기다려야 한다. 어디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 마음대로 들락거리며 살았는데 이제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내가 주인이었던 시절에서 정해 놓은 규칙을 따라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싫으면 오지 마." 하는 삶이 되어간다. 기다리는 줄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서 있어야지 어중간하게 서 있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현실이다. 들어가는 길이 있고 나오는 길이 있어 사람들끼리 부딪히지 않는다. 아무리 급해도 내 차례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염병이 시작되고 처음에는 이런 관행에 짜증이 나서 웬만하면 물건을 사러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싫다고 마냥 집에만 있을 수 없어 한 번, 두 번 나가기 시작하다 보니 나름대로 새로운 관행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라도 특별 세일을 하면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마구잡이로 싹쓸이를 해가던 시절에서 차례차례 필요한 것만 살 수 있다. 불황을 견디다 못해 폐업 세일을 하는 상점이 많아졌다.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어도 싸게 판다고 하니 괜히 관심이 생긴다. 옷이고 신발이고 집에 넘친다. 요즘엔 사람도 만나지 않고 공공장소에 가지도 않으니 멋진 옷도, 예쁜 신발도 필요가 없다. 그저 편하면 최고다. 일요일에 성당에 갈 때 깨끗한 옷을 입었는데 그나마도 코로나 덕분에 성당을 가지 않으니 옷장에서 잠자고 있다. 철마다, 해마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몇 개씩 장만했는데 이젠 그도 저도 다 필요 없게 되었다.


사는 게 편해졌다. 있는 대로, 생긴 대로 살면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톡으로 만나고, 보기 싫은 사람은 볼 필요도 없다. 남을 위해 살던 삶이 나를 위한 삶이 되었다. 볼일이 있으면 마스크에 모자 하나 쓰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다니면 된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남의 눈치 안 보고 신경 안 쓰고 살아가니 코로나가 전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남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이래도 흉, 저래도 흉, 어느 것에 장단을 못 맞춘다. 좋을 때는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깔깔 대며 왔다 갔다 하다가 돌아서면 찬바람이 쌩쌩 분다. 간사한 인간의 모습이다. 만나지 않고 살아가니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심할 것 같다. 내가 퇴직하고 놀게 됐다고 하니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편히 쉬어요 ".라고 따뜻한 덕담을 하는 사람이 있고, "축하한다." 하고 식사대접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놀아보던 사람이 놀 줄도 안다".라는 말로 비아냥 거린 사람도 있었다.



(사진:이종숙)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말도 예쁘게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변하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코로나가 없어진다 해도 우리가 살아왔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학교도, 빌딩도 언젠가는 필요 없게 될 것이고 커다란 백화점도 없어질 가능성이 많다.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 슈퍼와 편의점이 인기가 있고 대형 백화점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 간다. 백화점에 있는 점포들은 여기저기 폐업을 하고 떠난다. 사람들은 이제 옛날의 일상을 버리고 새로운 일상을 찾으며 더 편하고 시간 절약을 원하는 삶을 산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던 시대가 왔다. 대형 컴퓨터로 커다란 사무실이 필요한 시대에서 손바닥만 한 컴퓨터의 시대로 바뀌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했던 2000년 도에서 20년이 지나고 있다. 그때 우리가 걱정했던 상황은 오지 않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달라졌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시대에서 컴퓨터가 선생님이 되어 안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시험도, 면접도 비대면으로 해결하는 시대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머지않아 지구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생각하면 막연하지만 달라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멋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 든 사람은 따라가지 못한 채 옛날 방식대로 살아가겠지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2살짜리 손녀가 스마트폰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보고 싶은 쇼를 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에 쉽게 적응하는 것 이리라. 자가용이 없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컴퓨터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컴퓨터를 모른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발달되어 무엇이든지 손가락으로 해결하며 살아간다.


걱정은 나같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데 아무리 가르쳐도 못 알아듣는 내가 걱정이다. 2살짜리 어린애도 아는 것을 모르면서 어른이라고 한다. 내가 어른이 아니고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었다. 6살짜리 손녀딸이 게임을 하자고 한다. 같이 하려면 손가락이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손가락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손녀딸이 웃어 죽겠단다. 할머니가 너무 느려서 게임이 안된다고 가버린다. 할머니한테 뜨개질을 배우고 요리를 배웠는데 컴퓨터가 다 가르쳐준다. 우리의 대충대충 살아가던 시대는 가고 정확하고 확실한 시대가 왔다. 로버트가 요리를 하고, 아이들을 보며, 책을 읽어주고, 운전을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나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노력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배움을 멈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알던 것을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정신이 없어 금방 한말도 잊어버리고 금방 둔 물건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 아니 왜 그 물건을 거기에 두었는지 모른다. 한심하지만 현실이다. 집안에 물건은 많지만 쓰는 것은 몇 개에 불과하다. 물건은 많은데 필요한 물건을 정작 쓰려고 찾으면 어디에 있는지 생각이 안 난다. 네 살짜리 손자가 리모트를 들고 다니더니 어디에 두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아 새로 장만했다. 나도 손자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금방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난다. 네 살짜리 손자처럼 어린애가 되어간다. 철들어 가지 못해도 어린애로 돌아가지는 말아야 한다.



그저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버리자. 내일일은 내일이 알아서 하리라.



(사진:이종숙)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을... 잃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