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는 내 마음도... 빨갛게 물들어 간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밤새 지붕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햇살에 금방 녹아내려 비가 온 듯 물방울이 여기저기 반짝인다. 이제 제법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어 채소들도 성장을 멈추었다. 낮에도 긴 옷을 입어야 하고 모자를 쓰지 않으면 머리도 썰렁하다. 어젯밤에 온도가 많이 내려간다는 기상청 뉴스로 고추화분은 처마 밑에 옮겨 놓아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깻잎도 며칠 날씨가 추워서 물을 안 줬더니 그새 억세지는것 같아서 어제 오후에 물을 주었는데 서리는 맞지 않아 다행이다. 크지 않은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가 밖에서 떨고 있는 것 같아 날이 추워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밭에 가서 밤새 안녕한가 확인한다. 뭐 그까짓 채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름내 우리와 함께한 채소들이다. 그것들을 기르기 위해 봄이 오기 전부터 궁리한다. 봄이 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물 안 주면 죽어 버리는 연약한 채소라도 생명은 소중하다.




(사진:이종숙)



메마른 땅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라서 꽃을 피고 열매를 맺으며 창조주의 부름에 답하면서 살아간다. 텃밭에 몇 개 있는 채소를 돌보며 세상이 아름다움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이 물을 먹고 비바람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비하다. 깻잎 모종을 몇 개 사다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아 속상해하던 참에 친구가 다른 종류의 모종 몇 개를 더 주었다. 비가 며칠을 내리니 안 자라던 깻잎들이 신나게 자라고 친구가 준 모종도 덩달아 잘 자라주어 올해는 깻잎이 풍년이다. 정성이라야 별것 없지만 틈틈이 물 주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채소들도 저 사랑하는 것을 아는지 무럭무럭 잘 자라 준다. 여름내 속을 썩이며 나를 애태우던 고추는 이제 주렁주렁 달려서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 끼니때마다 밥상에 올라오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다.



호박 오믈렛과 볶은 토마토 (사진:이종숙)



며칠 전에 호박이 풍년이라며 친구가 호박을 몇 개 가져 다 주었는데 호박 오믈렛을 만들어 먹으니 부드럽고 맛있다. 호박을 채 썰고 양파와 파를 잘게 썰어서 매운 청양고추 서너 개를 썰어 넣어 계란을 넣고 섞어서 오믈렛을 만들어 먹으니 엄청 맛있다. 고추의 매운맛이 살짝 곁들여져 입맛을 돋아주어 좋다. 음식도 세월 따라 나이 따라 변하는지 옛날에 먹지 않던 것을 먹고,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된다. 어릴 적에는 눈으로 음식을 먹어서 안 먹는 음식이 많았는데 나이 들면서 건강을 생각하며 가리지 않게 되었다. 음식이라는 것이 나라마다 다 다르고 요리 방식이 달라 처음 보는 음식에 두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다. 보기와는 다르게 맛있는 음식이 있지만 예뻐서 먹었는데 겉모습 하고 정반대인 음식도 많이 있다.





지난가을에 단호박을 사다 먹고 씨를 꺼내 말려서 봄에 뿌린 호박씨는 꽃으로 화려하게 밭을 꾸미더니 여기저기 단호박을 매달고 뒹굴어 다닌다. 올여름에 달팽이와 전쟁하며 살점을 뜯겨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채소를 보며 달팽이가 너무 미웠다. 날씨가 추워지니 땅속으로 다들 기어 들어가서 지금은 몇 마리 보이지 않지만 그들도 살기 위해 저리 악착같이 사는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세상은 그렇게 태어난 대로 살아가며 천적을 방어하고 생명을 이어간다. 햇빛이 비추는가 하더니 이내 하늘에 구름이 낀다. 어디서 온 구름인지 하나둘 모여들며 하늘을 덮는다. 소나기가 잠깐 다녀가고 하늘은 다시 맑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생처럼 하늘도,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게으른 나는 준비하고 거두는 계절인데도 내일로 미루며 산다.


추운 겨울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도 뻐개야 하고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도 따야 한다. 남편의 일이지만 해가 갈수록 일이 무서워진다.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우리의 손을 거쳐야 일이 된 다. 자식도, 친구도, 이웃도 각자의 할 일이 있고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데 우리의 일을 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급하게 할 필요 없이 조금씩 능력껏 하면 된다. 기운도 없어지고, 기능도 떨어져가지만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가오는 겨울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든 노인들이 천천히 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 나도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태풍이 지나간 고국의 모습이 처참하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오고, 태풍은 또 바람을 남겨두고 빠져나간다. 자연이 하는 일을 감히 인간이 알 수 없지만 당한 사람은 피눈물을 흘리며 막막해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또 살아가야 한다.




(사진:이종숙)



여름 내내 벌레 때문에 고생하던 장미도 날씨가 추워져 벌레가 없어지고 이제야 꽃을 핀다.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라도 겨울이 오기 전에 제 할 일을 하려나 보다. 자연은 고통속에서도 이겨내는 묘한 힘을 가졌다. 산불로 폐허가 된 곳도, 태풍이 휩쓸어 간 농가도 이듬해 봄에는 새싹이 돋고 나무가 자란다. 괜히 서리 내린 아침에 뜰을 걸어 다니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바쁘다. 봄이 오기 위해서는 가을도, 겨울도 빨리 왔다가야 한다. 오는 계절을 반갑게 맞고 가는 계절은 미련없이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지난날들의 추억도 좋지만 오늘 내게 온 것을 기쁘게 맞는 것이 최고다. 비가 와도 맞아야 하고, 바람이 불어도 바람 따라 흔들려야 한다. 때로는 눈보라가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싫다 고 문 걸어 잠그고 혼자 살 수 없으니 가슴을 열고 끌어안으며 살아야 한다.


지금껏 살아왔듯이 내게 오는 하루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는 항해의 길이다. 내가 두려워하면 제자리걸음이고 앞으로 가면 행복의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 나를 찾아온 하루는 나를 데리고 24시간을 산다. 걱정과 근심 없는 하루를 바라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된다. 하늘은 다시 깜깜해지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세상은 조금씩 물들어 간다.


가을의 모습이 되어 세상을 물들이고 내 마음도 가을을 닮아 빨갛게 물들어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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