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따뜻한 국밥 생각이 간절하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어도 버릴 수 없는 것은 한국인의 입맛이다. 가만히 있어도 생각나는 음식들은 대개가 국밥이다. 국밥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국밥을 먹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침을 삼킨다. 국밥은 시간과 정성의 음식이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참으며 만날 수 있는 귀인 같은 음식이다. 좋은 사람은 쉽게 만나지 못한다. 오랫동안 보고 또 보며 정들어진 사람 같은 음식이다. 평생에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행운이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산다.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알고 보면 실망하고 싫은 사람을 기다려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사람과 백번 천 번 좋다가도 한번, 두 번 실망하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처음에 싫은 사람은 이상하게 선입감이 생겨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어쩌다 첫인상이 나빠도 사귀어 보면 진국일 경우도 많지만 보통은 첫인상으로 관계가 이루어진다. 몇십 년을 살아도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좋아하는 형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바쁜 세상에 기다리며 사람을 사귀는 사람은 없다. 좋으면 좋고 지금 싫으면 영원히 싫다. 한마디로 인내가 없는 것이 인간관계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참으면 인간관계도 달라질 텐데 안 그런다. 곰국같이 오래 기다리며 친해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국밥은 짧은 시간에 오물조물해서 만들어지는 나물 같은 음식이 아니다. 아무 때나 이것저것 넣어서 볶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말없이 침묵하고, 바라봐야 한다. 맑은 물이 멀건 국물이 되고, 멀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진국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유혹이 생긴다. 이만하면 된 것 같다고 참지 못하고 먹으면 그 맛을 모른다. 보일 때까지 기다리면 어느 순간 보이는 진국의 참모습이다. 뽀얗게 우러난 그 색이 나오면 거울처럼 맑다. 이제 다 끓었어하는 무언의 모습이 된다. 국밥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나의 인내를 실험하며 최상의 맛을 제공한다. 국밥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머리 국밥, 돼지국밥, 해장국, 우거짓국, 그 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국밥이 있다.
(사진:이종숙)
일단 국밥은 국물로 승산을 본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쓴 국밥이라도 잘 끓이지 않은 국밥은 맛이 안 나온다. 끓이고 또 끓이며 뼛속의 모든 것들이 다 나올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천상의 그 맛이 난다. 음식점이 크고 작고 상관없이 진짜 맛을 가진 식당을 사람들은 안다. 그냥 뿌르르 끓여서 파는 집은 얼마 안 가서 사람들이 안다. 양념으로 그때그때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은 맛이 없는 곳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사람의 입맛이 간사해서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돈을 위해 살지만 돈이 따라갈 수 없는 맛도 사람이 낸다. 기다리고 때를 알아야 한다. 성급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 설익으면 독이다. 진국의 길은 힘이 들지만 계속 걸어가면 도가 통한다.
하루아침에 도가 통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국밥의 국물이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다.국밥을 먹고 싶은 생각을 하며 일장 연설을 하게 되었다. 설렁탕, 곰탕, 갈비탕, 콩나물 국밥, 순대국밥 등 여러 가지는 국물의 맛이 좌우한다. 한 숟갈 먹어보며 감탄사가 나오는 진국의 맛이 있어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국밥 생각이 절로 난다. 소꼬리 곰탕도 좋고, 소족으로 끓인 곰탕이나 설렁탕도 좋고, 돼지갈비 잔뜩 넣고 끓인 감자탕도 좋다. 문만 열고 나가면 먹고 싶은 국밥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한국인데 멀리 살아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뼈를 사서 푹 고아서 깊은 맛의 곰국을 먹고 싶지만 오늘은 부담 없이 한두 시간 삶아서 해 먹을 수 있는 닭 한 마리 삶아서 인삼 없는 닭곰탕을 해 먹었다. 마늘 한 줌 넣고, 대추 몇 알 넣고, 찹쌀 넣고 푹 끓여서 여름 동안 지친 몸보신 하며땀을 내고 먹고 나니 가을이 온다 해도 아무 걱정 없이 힘이 난다.
뼈는 몇 시간을 끓이며 인생을 만나듯이 닭곰탕은 한두 시간 정도 끓이면이웃에 사는 친구 같은 좋은 맛을 낸다. 멀리 있어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이 뼈를 우려내 만든 곰국이라면 간편하게 끓여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닭곰탕은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 친구 같다. 벼르고 별러서 만드는 뼈 곰탕도 좋지만 언제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닭곰탕의 매력이다. 그리워하며 못 만나는 멀리사는 친구도 좋지만 가까이 살며 자주 보는 친구가 더 정이 드는 이유가 있기에 주변에 있는 좋은 친구 같은 닭곰탕을 먹으며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진한 곰국의 맛은 없지만 쉽게 끓여도 닭국은 입맛을 돋운다. 비 올 때나 눈 올 때나 가까이서 힘이 되어주는 좋은 친구의 맛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