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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16. 2020

행복은... 마음을 비울 때 우리를 찾아온다



(사진:이종숙)



구름이 해를 숨겼다. 지구 저편에 있는 어느 곳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하늘이 흐리니 마음도 우울하다. 가까운 곳으로 가서 걸어야겠다. 날씨가 추워지면 그마저도 못하게 되니 더 춥기 전에 자주 나가야 한다. 한 번 두 번 귀찮아서 안 걸으면 간사한 몸은 알아본다. 어쩌다 걸으면 여기저기 아프고 더 걷기 싫어 몸도 마음도 약해진다. 틈틈이 운동을 해야겠다. 배가 고플 때만 밥을 먹으면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배가 쉬 고픈 사람들은 열 끼도 모자랄 것이다. 먹고 가만히 있으면 나오는 것은 뱃살밖에 없고 배가 무거우면 움직이기 싫어 앉아 있게 된다. 세상일이 그렇듯이 모든 것들은 돌고 돈다. 귀찮다고 가만히 있으면 몸의 질서도 무너지고 급기야는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다. 마음 한구석에 일어나는 게으름을 떨치고 나가서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도 정리가 되고 답답한 마음도 떨쳐 버릴 수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는 육아가 세상에서 최고의 일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 낳고 기르며 살아가니 이제 우리는 완전한 독립이다. 필요할 때 도와주고 오라 하면 가고 애들 봐달라면 그냥 봐주면 된다. 아이들 키울 때처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이런저런 미래를 위하여 계획할 필요도 없다. 하루하루 먹고 자고 놀며 살아가면 된다  요즘같이 만남도 외출도 자제하는 세상에 바쁠 것도 급할 것도 없다. 애들은 애들대로 살아가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가면 된다. 코로나 19로 불편한 것은 있지만 산책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서 사다가 해 먹으면 된다. 반찬도 여러 가지가 필요 없고 편한 대로 살아가면 된다. 있는 대로 해 먹고 간단하게 살다 보니 게 바로 노인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를 꺼내놓고 이것저것을 먹으며 행복했는데 먹을 것만 꺼내놓고 먹으니 설거지도 줄고 간소해서 좋다.




하늘이 구름을 벗어버렸다. 파란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반긴다. 멀지 않은 곳으로 가본다. 지나가는 차들의 무게로 다리가 울리는 느낌에 난간을 잡고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강기슭에는 누군가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닫혀 산길을 걸어본다. 여러 쌍의 오리가 유유히 수영을 하고 갈매기들도 휴식을 취하는지 강가에 앉아있다. 산책길은 넓고 평평하여 아주 걷기가 편하다. 가을이 짙어가니 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어 가을을 더 만끽하게 하고 이파리를 다 털어버린 나무들은 할 일을 다 한 듯 우두커니 서 있고 강 건너 가파른 절벽 위에 집들이 보인다. 어쩌다 한두 사람 지나갈 뿐 숲은 참으로 평화롭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숲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아프거나 늙어서 죽는 것처럼 나무들도 혼자서 씨를 뿌리고 자라서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


고요한 강변에 새도 다람쥐도 오늘은 조용하다. 날씨가 추워지니 어딘가 따뜻한 곳에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나 보다. 길가에 큰 나무가 쓰러져 있다. 아마도 지난여름 심한 비바람에 뿌리가 뽑혔나 보다. 절벽 위에 서서 내려다보니 수백 년도 넘을듯한 나무가 어디로부터 흘러왔는지 강기슭에 누워있다. 껍질은 다 벗겨지고 굵은 뿌리가 속살을 다 보이며 누워있는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강기슭에는 나무들이 가늘고 키가 작다. 강 둑의 허물어짐을 막고 바람막이 노릇을 하다 보니 힘이 겨워 키가 자라지 못했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해 본다. 자연 속에 있으니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웅장한 자연은 그들의 소리를 듣고 산다. 시키는 이도 간섭하는 이도 없는데 숲은 질서 정연하다. 이 거대하고 위대한 자연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사진:이종숙)



숲은 우리 둘 만을 위한 듯 아무도 걷는 사람이 없다. 바람이 부는 대로 떨어진 낙엽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낙엽이 길을 덮어 처음 온 길처럼 새롭다. 한참을 내려오니 구석진 골짜기에 흉물스럽게 부서진 옛날 차 한 대가 서있다. 아마도 몇십 년 전에는 이곳이 길거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산짐승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는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다람쥐들이 솔방울을 군데군데 쌓아놓은 모습도 정겹다. 좁은 오솔길을 빠져나와 강가로 발길을 돌려본다. 선생님이 몇 명의 아이들을 인솔하고 강가를 걸어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철없는 아이들은 오며 가며 장난을 치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참으로 순진하고 예쁘다. 멀지 않은 곳에 갈매기떼들이 강가에 모여있다. 어딘가 가기 위한 모임인지 꽤나 많다. 한두 마리는 정찰을 하고 나머지는 편안히 앉아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가기 위한 만남인가 보다. 말 못 하는 새들도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가 가까이 가려하니 전체가 움직이며 날아갈 듯 들썩인다. 모르는 체 돌아서 오니 그들도 아는지 다시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는다. 적이 아님을 알고 안심했나 보다. 강물이 조용히 흐른다. 맑고 깨끗하여 손을 집어넣어 물을 잡았다 놓으며 장난을 쳐본다. 어린아이가 되어 신발을 벗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 보고 싶다. 다리 아래쪽으로 걸어가  본다. 수심이 꽤나 깊어 물 색깔이 새까맣다. 아이 셋을 데리고 온 아낙이 아이들을 조심시키며 강가를 걷는다. 참으로 평화롭다. 머지않아 이 가을이 끝나 겨울이 오면 눈이 오고 강도 두껍게 꽁꽁 얼을 것이다. 작년 겨울 계곡물이 얼었을 때 그 위를 걷던 생각이 난다. 얼음이 깨질까 봐 무서웠지만 엄청 짜릿하기도 했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나무를 만난다.




(사진:이종숙)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나무들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서 있고 나름대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심히 지나친 나무에 귀한 버섯이 붙어서 나무와 함께 산다. 마치도 잘 구워진 빵같이 생긴 버섯이 나무에 붙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끝이 없이 변함에 있지 않을까? 이쪽으로 안보이던 것이 저쪽에서 보인다. 지나가며 보이지 않던 것이 돌아서 보면 보인다. 가까운 곳에 걷는 사람들을 위해 놓인 의자가 보여 잠시 가서 쉬었다 가려고 보니 누군가가 도네이션을 한 의자였다. 젊은 나이에 떠난 이를 기억하기 위해 가족들이 설치해 놓은 것이다. 만나지 못한 이를 위해 잠시 묵념으로 명복을  빌고 앉아서 강을 바라본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의자는 숲에서 강을 보며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오르고 내리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다리를 건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지나온 길을 건너다보니 오늘도 꽤 멀리 걸었다. 집에 있으면 앉았다 누웠다 하며 텔레비전이나 보며 하루를 보냈을 텐데 이렇게 밖으로 나와 자연을 보니 한없이 좋다. 희열 바로 희열이다. 자연을 보고 자연 속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은 참 행복이다. 인간은 행복을 찾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 행복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며 안간힘을 쓰느라 평생을 보내지만 끝내 그 행복을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행복은 마음속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는 참 행복을 만날 수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아주 작은 것에서도 가슴이 뛰는 참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자연 속에서 느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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