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살 것이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살다보니 몇십 년을 살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우왕좌왕하며 살 것이 틀림없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몇십 년을 살았으니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이상하다. 잘하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못하게 되고 잊어버리며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보면 오래 살았다 해서 잘난 체할 것 하나도 없고 배울 것도 없다. 경험 속에 있는 지혜와 슬기가 있다 해도 대단하지도 않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다. 많이 배우고 유명했던 사람들도 어느 날 기억력이 떨어지고 기능이 약해지면 그동안 쌓아왔던 지식의 탑은 허물어진다. 권력을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살던 사람도, 많은 돈을 가지고 부자로 평생을 살았어도 어느 순간 쓰러지는 것을 보면 정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짐승들은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지만 인간은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죽일 수 없다.


요즘엔 합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존엄사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해도 그것 역시 쉽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은 망설인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무나 죽고 싶다고 해서 존엄사를 택할 수 없기에, 존엄사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허용국가로 여행을 가서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말이 돈다.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길을 택하는 이유는 인간의 죽음이 존엄함을 믿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존엄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 불치병을 앓고 있던 그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존엄사를 택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기로 한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한다.


슬프지만 아름답게 떠나고 싶은 그녀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난다.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지 모른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모르고 세상에 왔듯이 떠나는 날도 모르고 떠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살고 싶어도 병마 때문에 죽어야 하고 가난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며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도 많다.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 중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들 죽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내일이라는 희망 속에 기다리며 인내하고 살아간다. 고통스러운 지금 당장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도 좀 더 나은 내일을 믿기에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내일이 없는 사람들은 숨이 끊길 때까지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데 짐승들처럼 산 사람을 죽일 수는 없기에 인간의 고심은 깊어가는 것이다.


병을 앓고 있다고, 고칠 수 없는 고질병에 걸렸다고 본인의 의사로 존엄사를 택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조차 가능하지 않을 때는 더욱 불행하다. 사는 동안 행복하기를 원하고, 죽는 순간까지 소망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지가 있고 생각이 있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살 이유가 없는 사람도 없고,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이유가 있어 태어났고, 누구나 까닭이 있어 죽지 못하고 산다. 몇백 년을 산다 해도 사람의 인생은 의문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기도 하지만, 불치병이 있어 고통 속에 오래 살지라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인명은 재천이니 한번 온 사람은 언젠가는 가야 하고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기에 비극인 그것이 운명이다.



(사진:이종숙)




겨울이 되어 다 죽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하는 자연처럼 생로병사의 이치에 따라 지구가 돌아간다. 생각하면 죽음 또한 그리 두렵지 않다. 태어나 사랑하며 살다 죽고 잊히며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난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인간의 생명은 이어진다. 살 가치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고, 죽어야 마땅하다고도 결코 단정 지을 수 없다. 싫어도, 좋아도 받아들여야 하기에 고통을 감수하며 산다. 고통 없는 사람도 없고, 고통만 있는 사람도 없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어 영원히 살고 싶기도 하다가도 조금만 괴로워도 죽고 싶기도 한 것이 인간이다. 욕심 많고 인내성 없이 작은 것에 화내고, 실망하며 쉽게 절망하는 것이 인간이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능력이 창조주의 영역을 침범하는 시대가 되었다. 때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자연사의 시대에서 의학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귀한 생명을 하나라도 구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지만 창조주에게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인간인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에 슬프면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다. 거부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삶은 나날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의자 생활로 길들여진 우리의 몸은 다른 형태의 질병에 시달린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다. 바닥에 앉아서 무엇이라도 하려면 쩔쩔맨다. 생활습관이 변하여 몸이 변형한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편리해진 삶이 오히려 움직이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육체를 무력화시키는지 모른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움직이며 손바닥 안에 세상을 쥐고 사는 현대인들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만 쓰고 산다. 한참 동안 앉아서 있다가 일어나려면 몸이 굳어서 맘대로 일어나 지지 않는다. 한참을 구슬려서 몸을 움직인다.


급하게 한다고 되지 않고 몸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달리기는 고사하고 약간의 높이나 깊이가 있어도 잘 안된다. 부드럽던 뼈들이 뻣뻣해지고 굳어지며 노화현상이 생긴다. 노인들의 주름살이 이상하게 보이고 굼뜬 모습을 이해 못했는데 점점 변해가는 몸으로 이해한다. 젊은 청춘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내게도 찾아왔다. 가을이 오래가지 않고 겨울 또한 급하게 찾아올 것이다. 내 인생의 겨울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겨울이 빨리 가기를 원하면 지나친 욕심일까? 어차피 봄이 오지 않을 겨울이라면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화사한 봄처럼 살고 여름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가을같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추운 겨울 동안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지 않다. 존엄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시대에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불쌍한 존재다.


고통에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과 가난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불치병으로 하루하루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싸움이 그치지 않고 폭력이 넘치는 세상에서 무기력한 사람들은 두 손 들고 있다. 인간의 고통을 없앨 수도 없고 평화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인간이기에 노력하고 인간이기에 실망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늙고 병든다. 아무도 다시 태어날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누구나 알던 것을 모르게 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변해도, 다시 태어나도,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살아갈 것이다.

처음 살아가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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