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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05. 2020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걸음마다... 내일을 기약한다



(사진:이종숙)



참으로 고운 가을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다. 심호흡을 한번 깊게 해 본다. 폐 속에 있는 노폐물을 다 내보내고 싶다. 낙엽이 길을 덮어 길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냥 앞으로 걸어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작은 오솔길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어제 있던 나뭇잎이 떨어졌고 어제 흔들리던 나뭇잎도 떨어져 발길에 밟힌다. 걷다 보면  나무뿌리들이 여기저기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 나와있다. 자칫 잘못하면 앞으로 넘어진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는 숨이 차지만 내리막길을 갈 때는 신나서 미끄럼을 타며 내려간다. 나이를 잊을 수 있는 곳이다. 남편과 나는 애들처럼 깔깔거리며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며 숲을 뒤진다. 추억은 정말 아름답다. 둘이 함께한 세월 안에 추억이 보물처럼 쌓여있다. 하루가 모여 42년이라는 세월은 총천연색의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계곡물이 소리도 없이 흐르고 계곡물에 수많은 나뭇잎들이 내려앉아 쉬고 있다. 눈이 오면 물아래로 깊이 들어가 겨울을 날것이다. 여름철에는 숲이 우거져 숲 속의 오솔길이 보이지 않았는데 나뭇잎이 거의 떨어져서 오솔길이 훤히 보인다. 계곡 저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며칠 사이로 숲은 옷을 벗었다. 많은 나무들이 피곤한지 길 가에 누워있다. 크지도 못하고 넘어진 나무들이 있고, 죽은 줄도 모르고 새까맣게 마른 채 서있는 나무도 있다. 비탈길에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기도 하고 굵은 나무들 아래서 봄인 줄 알고 새파랗게 피어나기도 한다. 올 가을은 유난히 날씨가 좋아 이대로 봄이 왔으면 하는 엉뚱한 소망을 해보기도 한다. 나무 꼭대기에 예쁜 단풍잎을 매달고 서있는 나무들이 햇살을 받으며 행복해한다. 살랑거리며 바람 따라 춤을 춘다. 나뭇잎들이 손에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어댄다.


하나하나가 다 같은 모습 같은데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풀도, 나무도, 열매도, 각자의 타고난 모습으로 살다가 간다. 어느 것도 불평하지 않고 생긴 대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더 아름답다. 계곡을 지나다 보면 나무들이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누워있는데 계곡물이 그 나무들 사이로 빠져나간다. 강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며 흘러간다. 그들은 강에서 누구를 만나기 위해 저토록 기를 쓰며 흘러가는 것일까? 우리가 기를 쓰며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빈손으로 온 이민 초기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던 생각이 난다. 무작정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의 삶이란 상상하지 못한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지고 한국이 부자라서 이민오는 사람들은 많이 고생하지 않는다. 오자마자 집 사고, 차 사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살아간다.


한국이 가난하여 싫든 좋든 돌아갈 수 없었던 옛날이었지만 지금은 이민 와서 살아보고 다시 역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이민자의 설움 속에 살고 싶지 않다고 다시 돌아간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현지인들처럼 못하기에 불편하긴 하지만 오래된 사람들은 손짓 발짓으로 시작하여 눈치로 밥 먹은 세월이기에 잘 버티고 산다. 어차피 몇십 년 살았는데 다시 돌아가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껏 살아온 이곳이 고향이다. 한국이 너무나 발달되어 따라갈 수 없을뿐더러 한국에는 뜻을 알 수 없는 신조어는 왜 그렇게 많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다. 처음 이곳에 와서 영어가 힘들었어도 쓰고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사전을 찾아보며 소통하고 살았다. 곳은 이제 내게는 외국이 아니게 되었다.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알 수 없는 내일을 선물로 준다.




(사진:이종숙)



오늘도 깜짝 선물이었듯이 내일도 그렇게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매일이 새로운 이 오솔길처럼 우리네 인생도 매일이 새로운데 우리는 알지도 못하며 재미없는 똑같은 하루가 지겹다고 한다. 그런데 지겨운 게 아니고 우리는 삶을 모를 뿐이다. 알려하지도 않고, 보려 하지도 않으며, 아는 체할 뿐이다. 시시한 하루가 모여 수많은 세월을 만드는 동안 우리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웃고 울며 산다. 아무것도 아닌 삶이 하루가 되어 오고 가는 사이에 태어나고 병들고 괴로워하며 떠난다. 하루가 시시한 것이 아니다. 하루에 인생이 다 들어 있다. 마치 그냥 가만히 있는 오솔길의 풀처럼 어느 날 피었다가 서성이며 바람에 흔들리다가 아무도 모르게 소멸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이 하루를 기다리지 못해 떠난 사람도 있고,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온갖 일을 겪으며 살아가고 후회를 하고 미련을 남기고 간다. 후회 없이 살다가는 사람도 없고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도 없다. 세상에 피어난 한송이의 꽃처럼 살다가는 것이다. 비 올 때 피었다가 비만 맞고 가는 꽃도 있고 추울 때 피었다가 달달 떨며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도 있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꽃처럼 피었다가 꽃처럼 살다 꽃처럼 떨어지는 것이다. 하찮은 나뭇잎도 때가 되어야 피고, 때가 되어야 떨어진다. 몇 번을 오간 길인데 볼 때마다 새롭다. 있던 풀이 없어지고 없던 풀이 보인다. 걸어가면서 보았지만 처음 본 듯 새롭다. 어제 같은 오늘이지만 오늘은 오늘이고 어제는 이미 사라졌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게 그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사라지고 생기며 세월이 간다.


얼굴의 세포가 죽어가고, 주름살이 늘고, 흰머리도 더 생기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계곡이 깎이고, 땅이 허물어지고, 높았던 곳이 낮아지고, 새로운 언덕이 생기는 것은 그들만이 안다. 우리는 다만 그곳에 살아갈 뿐이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죽은 나무에 버섯이 옹기종기 모여서 산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삶도 영원하지 않다. 오늘의 인연이 끝이 아니고 언젠가 또 다른 모습이 되어 다시 만난다. 숲 속에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은 자연을 따라 한없이 꼬리를 물어 떨어지는 단풍잎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떨어진 낙엽도, 스러지는 풀잎도 언젠가는 다시 볼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좋다. 어쩌면 나는 나비가 되어 태어날지도 모르고 새가 되어 이 숲 속을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숲에 오면 나는 자연이 된다. 흙에서 오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듯이 우리는 이렇게 만나서 함께 어우러져 사랑하며 산다.


길 따라 걸어가고 걷는 길에 축복이 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걸음마다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해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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