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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04. 2020

필요 없는 것... 하루에 하나씩  버리며 살자


(사진:이종숙)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 피곤하다. 목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고 여기저기 아프다. 특별히 한 것이라고는 냉장고 청소한 것 밖에 없는데 온몸이 반란을 일으킨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썼다고 데모를 한다. 그래도 이대로 엄살만 피다 보면 더 아프니까 간단한 아침 운동을 하고 오늘 할 일을 생각해본다. 며칠 못 본 척했더니 가구들이 눈총을 준다. 닦아주고, 쓸어주고, 만져달라고 한다. 바닥도 닦아야 하고 먼지도 털어내야 한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살다 보니 여기저기 손댈 곳이 보인다. 가을이 왔다 가려하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게으름만 피우며 살았다. 가을 준비를 하나하나 잘해나가는 남편을 보며 나도 무언가 해야지 하면서도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에 감히 시작하기가 두렵다. 바깥일 이야 남편이 알아서 하지만 집안일은 내손이 닿아야 되니 겨울이 오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햇빛이 아까워서 무를 썰어 말려서 무말랭이를 만들고  호박을 썰어 말리며 겨울을 준비했던 엄마 생각이 난다. 내일보다 젊은 오늘, 나도 뭐라도 해야 한다. 내일이 되면 기운도 더 떨어질 것이고, 근육도 더 약해질 것이니까 오늘 팔 걷어 부치고 하자. 먼지를 털고 바닥을 닦기만 했는데 벌써 집이 광이 난다. 넘어진 것은 바로 세워놓고 비뚤어진 액자도 똑바로 놓는다. 오래된 가구지만 정리를 하니까 새집같이 좋다. 옷장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다용도실을 열어 보니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것저것 겹쳐서 던져놓고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누워있다. 국수는 국수끼리, 캔은 캔끼리 모아서 제대로 놓고 보니 정리가 된다. 꺼내먹고, 사다가 채워놓기만 했더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도대체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데 정리를 하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사다 놓고 뜯어보지도 안 한 것이 있고  날짜가 지난 것도 나온다. 버릴 것은 버리고 안 먹으려면 사지 말아야 하는데 무조건 사는 습성부터 고쳐야 한다. 몸에 좋다고 하면 사서 한두 번 먹어보고 뒤로 밀쳐 놓았다가 날짜가 지나면 버린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 하지만 쓰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안 할 때는 그냥 놔두고 못 본 척 하지만 한번 하면 후다닥 잘하는 내 실력을 보고 남편은 요술쟁이 손을 가졌다며 칭찬을 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니 나 역시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서 열심히 한다. 옷장도 한번 본다. 아직은 더운 날이 있어 놓아둔 여름옷은 내려가고 추동복을 올려다 놓는다. 가을 옷이라야 며칠 못 입겠지만 그래도 너무 춥지 않은 늦가을까지는 필요하다. 작년 9월에 눈이 많이 와서 얼렁뚱땅 이른 겨울을 맞이 했는데 올해는 보너스 같은 따스한 가을이 있어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잊을 뻔했다.


(사진:이종숙)




밤새 안녕이 아니고 밤새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일 수 있는데 더 이상 게으름 피우지 말아야 한다. 계절이 온다고 미리 알려 주는 것도 아니니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일을 할 때는 옷장에 여러 가지 걸어놓고 이것저것 골라 입었는데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옷도 필요 없어 편한 옷만 입게 된다. 생활이 단조로워지고 만남도, 외출도 없는 생활이 계속되어 어디를 가든 남편과 동행하다 보니 가방도 필요 없어졌다. 신분증도 남편의 지갑에 넣고 홀가분하게 다니다 보니 어쩌다 가방을 면 불편하다. 장사를 할 때는 커다란 가방에 오만 가지를 다 집어넣고 다녔는데 현금을 안 쓰는 시대가 되어 카드 하나면 어디든지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 특별히 살 것도, 필요한 것도 없는 나이가 되다 보니 웬만하면 있는 것 쓰고 그냥 넘긴다.


옛날에는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것이 좋아 유행하는 것이 갖고 싶었는데 그것도 다 때가 있는지 그런 것은 이제 관심이 없다. 그저 마음 편하고 몸 편하면 그게 최고다. 어디 가서 잘난체 할 데도 없고 하루하루 걱정 없이 살아가면 족하다. 있는 것도 없애야 하는데 이것저것 자꾸 사다놓으면 집안만 복잡하니 아예 살 생각을 안 하니 마음이 편 하다. 옛날 같지 않아 요즘 물건은 지도 안고 떨어지지도 않아 오래오래 쓰는데 여러 가지가 필요 없다. 추동복을 걸어놓고 겨울 구두와 부츠도 준비를 해 놓으니 내일 당장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다. 어제는 냉장고 청소를 하고 오늘은 집안 청소를 하였더니 딴 집이 되었다. 손가락 조금 움직이면 집안이 이토록 달라지는데 망설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청소할 때마다 쓰레기가 나온다. 더러워서가 아니고 쓰지 않는 것들을 끌어안고 살다가 버리는 것이다.


버리기는 아깝고 남 주기도 뭐해서 이리저리 밀어 넣고 살다 보면 나중에는 쓰레기가 된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안 쓰는 것이 많다. 유튜브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하루에 한 가지씩 버리며 살림이 간소해졌단다. 한꺼번에 버리지 못해도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필요 없는 것을 찾아 버려 봐야겠다. 집안을 청소할 때마다 결심을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금 쓰지 않는 것은 내일도, 모레도 쓰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아니 10년에 한 번 쓰기 위해 놓아두는 것은 난센스다.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미련 없이 버리면 된다. 요리조리 옮겨놓았던 쓰레기를 치우니 집안이 훤하다. 먹지도 않으면서 날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다. 쓰지 않으려면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식구들 다 모이는 날 쓰기 위한 물건도 사실 필요 없다.


한두 번 쓰기 위해 복잡하게 살 필요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찌뿌둥하던 몸이 청소를 하다 보니 집처럼 말끔해졌다. 안 쓰던 근육을 썼다고 몸이 데모를 할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다. 세수만 하다가 목욕을 한 기분이다.

매번 청소를 할 때마다 하는 결심을 또 한다.
지금, 오늘,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없애보자. 하루에 하나씩...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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