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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03. 2020

냉장고야... 무조건 집어넣어서 미안해


(사진:이종숙)



아이코.. 이를 어쩌나. 일을 저질렀다. 손이 미끄러져 설탕통이 뒤집어지며 설탕이 바닥으로 아졌다. 바로 냉장고 옆으로 쏟아져서 손을 집어넣어 청소를 하려는데 너무 좁아 팔이 안 들어가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냉장고를 빼놓고 청소를 해야 할 것 같다. 여름철 내내  자주 청소를 못해서 안그래도 한번 하려고 생각했는데 냉장고를 옮기려면 안에 있는 것을 다 빼야 한다. 설탕을 엎지른 덕분에 겸사겸사 냉장고 청소나 하자고 냉장고를 앞으로 끌어내며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일단은 냉장고에 있는 것을 다 꺼내 놓았다. 뭐가 그리 많은지 꾸역꾸역 한없이 나온다. 매일 해먹을 반찬이 없어 끼니마다 고민을 하는데 꺼내도 꺼내도 한없이 나온다. 다 꺼내놓고 보니 상으로 하나 가득이다. 빈자리 없이 채워놓고 또 사다 놓고 여기저기 찔러 넣고, 쌓아놓고 하다 보니 빈자리가 없다.


먹다 남은 음식, 다음날 먹을 재료, 매일 먹는 밑반찬, 양념통 소스 등 엄청 많다. 다 끄집어 내놓으니 냉장고의 처참한 면모가 드러난다. 국물 넘친 자국과 고기에서 나온 뻘건 핏물 자국도 보이고 반찬에서 흘러나온 여러 가지 자국이 보인다. 깨끗한 척하며 사는데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하루의 때가 다음날과 만나고 겹치고 쌓여서 냉장고가 더러운 줄도 모르고 차가운 냉장고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지난번 빈대떡 먹을 때 찍어먹다 남겨둔 양념간장, 삼겹살 먹을 때 먹던 쌈장 남은 것 하며 여러 가지 잔잔한 그릇들이 냉장고 안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쌓아놓고 살면서 냉장고가 너무 작아 몇 개 안 들어간다고 불평만 하고 사는 자신이 한심하다. 정리도 안 하면서 더 큰 냉장고 타령을 하고 살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냉장고 안을 말끔히 닦고 버릴 것 버리고 모을 것 모아서 한군대로 넣고 오래된 것들을 버렸더니 속이 시원하다. 날짜 지난 요구르트가 구석에 넘어져 있고 여름에 사다 놓은 무쌈도 엎어져있다. 열심히 사다 놓고 잊어버리고 먹지 못하니 쓰레기만 쌓인다. 냉장고 아래에 붙어있는 냉동고를 보니 더 한심하다. 무조건 얼리면 최고라고 오만 가지를 얼리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어쩌다 엄마를 찾아가 냉동고를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무조건 얼려 놓으셨다. 더 이상 넣을 자리도 없는데 꽉꽉 쟁여놓고 사셨다. 아무 때나 자식들이 오다가다 들리면 뭐라도 녹여서 해주시려고 얼린다고 하셨는데 지금의 내가 엄마가 되어 무엇이나 얼려 놓고 산다. 마른오징어, 먹다 남은 채소, 삶은 야채 조각, 쓰다 남긴 고기 덩어리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 안 먹으면 나중에도 안 먹는데 뭐하려고 이렇게 모아 놓고 쌓아놓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여름에 아이들이 와서 같이 살 때는 식구가 많아서 인지 냉장고도, 냉동고도, 물건을  사기가 무섭게 쑥 쑥 잘 없어지며 순환이 잘되었는데 남편과 둘이 먹으니 영 줄어들지 않는다. 버리기는 싫고 먹지도 못하면서 쇼핑을 가면 이것저것 사다 놓는다. 아이들이 있을 때 사다 놓은 피자도 말라가고 언젠가 먹으려고 사다 놓은 블루베리도 얼은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놓으니 그것도 커다란 그릇으로 세 개나 된다. 한심하고 기가 막히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꽝꽝 얼려놓고 뭐 하려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꺼내놓고 보니 앞으로도 안 먹을 것들이 많다. 손을 뻗어서 여기저기 닦아내니 너무나 깨끗하다. 이대로 아무것도 넣지 말고 싶다.


배고프면 나가서 사 먹고 냉장고에 넣지도 말고, 냉동고에 아무것도 얼리지 않고 살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는 너무 깨끗해서 눈이 부신다. 꺼내놓은 음식을 보니 별것도 없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차곡차곡 분류해서 넣고 정리를 해본다. 육류는 육류대로, 생선은 생선대로 차례로 집어넣는다. 얼린 야채나 과일도 나란히 집어넣어 놓는다. 꽉 차서 옴싹달싹할 수 없었던 냉동고에 자리가 생겼다. 무조건 얼려 놓고 새 것을 사다 놓으며 엉크러 졌던 냉동고가 예쁘게 정리가 되었다. 너무 오래된 것이나 먹지도 않으면서 버리기 아까워서 놔뒀던 것들을 없애고 나니 정말 깔끔하다. 이제 이거 다 먹을 때까지 절대로 아무것도 사지 말아야 한다. 냉장고 청소를 하며 혼자 결심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음식을 해 먹으며 살았는데 이젠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안 된다.


가까운데 사는 둘째도 오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여기저기서 확진자가 나오니 아이들도 걱정이 되는지 오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당장에 먹을 것만 사다 놓고 살아야 한다. 사러 다니느라고 고생하고 버리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귀찮아도 조금씩 사다 먹자. 깨끗하게 청소한 냉장고가 씩씩하게 잘  돌아간다. 그 많은 것을 안고 서있던 냉장고가 힘들어했는데 설탕을 엎지른 덕분에 냉장고 짐을 덜어주었다.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집어 넣어서 미안해 냉장고야.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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