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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19. 2020

수다 300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이종숙)



오늘도 나는 수다를 떤다. 수다는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로 친밀감이 있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되는데 사람들은 수다를 떤다고 하며 수다를 떨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수다를 떨지 않으면 세상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물가에서 아낙네들의 수다로 동네 소문이 돌고 동네 소식을 듣는다. 뉴스를 통해 세계 소식을 듣고 본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수다가 빠지지 않는다. 여자들 수다에 접시가 깨진다고 하지만 남자들도 수다를 잘 떤다. 만나서 온갖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른다. 수다는 마음에 있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고 남의 마음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한 행위이며 커다란 행사이다. 너무 수다스러워서 욕을 먹는 사람도 있고 말이 없어서 욕을 먹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 수다쟁이가 되어 수다를 떤다. 생전 말수가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수다를 글로 쓰는 경우가 있다. 말로 풀지 못한 수다를 글로 풀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 때 옆에서 듣기만 하고 웃기나 하는 사람도 수다를 떠는 방식이 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고 애완동물이나 식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속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만남이 없는 세상이 되어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수다쟁이는 누구와 수다를 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람마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해결방법이 다르다. 나는 말재주가 별로 없어 주로 듣고 웃는 편이다. 주위에 말재주가 좋아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참 부럽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는다. 옛날에 이곳에 이야기 좋아하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그분은 영어도 모르고 프랑스 말은 더더구나 모르시는 분이다. 아들 며느리가 일을 나가고 손주들이 학교를 가고 나면 너무나 심심했다. 집안일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도 시간이 남아 심심풀이로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언어를 모르는 할머니는 영화를 봐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냥 보며 조금씩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같아 보였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사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한 편 두 편 보다 보니 영화를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그 뒤부터 할머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영화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영어도 모르고 프랑스어를 모르는 당신이 어떻게 영화를 본단 말이오? " 하면서 귀 밖으로 들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매일매일 열심히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만들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콧방귀 뀌던 사람들도 차츰 할머니 수다를 듣기 시작해 그녀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그녀는 계속해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이종숙)




언어를 모른다고, 이야기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문학 창작과를 나오지 않은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 11년 전에 시인으로 등단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브런치 카페를 알게 되어 작가 신청을 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브런치를 통해 '하루 하나'의 글로 수다를 떨며 300일이 지나 300개의 글을 쓰게 되었다.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쓰고, 아프고 힘든 상황을 글로 풀어내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수다를 떨 수 있는 브런치가 있어 행복하다. 공감하고, 소통하며, 용기와 힘을 주고받으며 응원한다. 기쁘면 함께 기뻐하고, 슬프고 우울하면 위로하고, 힘들고 고달플 때는 응원으로 용기를 주고받는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글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어 소통하며 서로의 수다를 들어준다. 지난날들의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더듬고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갖는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속마음을 털어놓고 수다를 떨지 모르지만 지금껏 내 수다를 들어주고 격려해 준 이웃분들이 있어 행복하다. 읽어주고 좋다고 해 주고 공감하고 댓글로 소통하며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서로를 존중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다. 실컷 수다를 떨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막혔던 마음이 뻥 뚫려 기분이 좋다. 때로는 그 수다가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여 곤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어 수다의 상대를 고를 때 신중성을 필요로 한다. 수다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하루 하나씩 주제를 가지고 글로 수다를 떨며 살아보니 좋다.


매일매일 300일 동안 글을 쓰며 300번의 수다를 떨었는데 그 수다를 들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잘 쓰지 못해도 재미없어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글을 쓰다 보니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린다. 지나가 버리고 말 것들을 기억할 수 있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며 세상과 자연에 감사할 수 있어서 좋다. 문학적인 가치가 별로 없어도 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가까운 이웃에게 더 친절할 수 있고 지나간 삶을 이해할 수 있어 좋다. 영화를 이야기로 풀어 수다를 떨며 이야기꾼이 된 할머니처럼 나도 글로 수다를 떨며 사는 수다쟁이가  되고 싶다.  


300번의 수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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