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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21. 2020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 추억이 피어난다


(사진:이종숙)



천천히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어제 많이 왔는데 더 남았는지 조금씩 내리는 눈과 함께 바람이 많이 분다. 어젯밤에 심하게 불은 바람 때문에 가을에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들이 하얀 눈 위에 잔뜩 떨어져 지저분하게 누워있다. 바깥은 엄청 춥다. 영하 13도이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라니 꼼짝하지 말고 집에 있어야겠다. 준비하고 나가면 못 나갈 것도 없지만 엄살 부리고 싶은지 핑계 김에 집에 있는다. 하늘은 회색이고 세상도 다 회색이다. 오랜만에 집에 있자니 기운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진다. 보통 이 시간에 숲에서 걷느라고 바쁜 시간인데 집에 있으니 몸이 벌써 눈치를 채고 게으름을 피운다. 움직이면 모르는데 가만히 있으면 여기저기 반기를 들며 나가자고 한다. 걸으면 아프지 않은데 앉아있으면 몸이 칭얼거린다. 집에 있으니 여러 가지 일이 보이지만 하기 싫어 빈둥댄다.


내일을 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고양이 세수만 하고 산다. 그래도 노는 김에 편하게 놀고 뒹굴뒹굴한다. 날씨가 추우니 남편은 벽난로에 불을 피고 나는 그 앞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불빛을 본다. 옛날에 작은집에 가서 보았던 아궁이 불빛이 생각난다. 사촌들하고 작은 엄마 옆에 옹기종기 앉아서 불쏘시게를 하나씩 넣으며 놀았다.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무를 집어넣을 때마다 푸시시하고 불이 붙는 것이 좋았다. 썰렁한 부엌이 훈훈해지고 식사를 준비하는 작은엄마의 걸음바빠지고 나는 시골생활이 궁금해서 작은 엄마를 따라 여기저기 쫓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장독으로, 마당으로 걸어 다니시면 멋짓 밥상이 하나 차려지고 맛있는 음식은 김이 모락모락 난다. 작은엄마는 서울에 사는 나를 공주대접을 해 주셨다.


밥할 때 가운데에 흰쌀을 집어넣어 사촌들에게는  보리밥을 주고 나는 하얀 쌀밥을 해주셨다. 밥상에는 밭에서 따온 가지나물과 집에서 기른 콩나물이 있고 여러 종류의  김치와 장아찌들이 귀여운 종지에 담겨있다. 커다란 냄비에는 호박과 감자를 넣은 된장찌개가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온 식구가 일제히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으며 식사가 시작된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상상도 못 하는 모습이지만 옛날에는 어느 집이나 누구나 그렇게 살았다. 입맛이 까다롭고 눈으로 음식을 먹는 나는 그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보다 조선간장에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하얀 밥에 비벼먹기를 좋아했고 밥하고 동치미를 좋아했다. 어린 조카딸도 손님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이것저것 해 주시며 서울에서 온 조카딸이 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셨다.



(사진:이종숙)



사촌들 얼굴이 유난히 하얀 나를 동네에 데리고 다니며 서울 사람은 이렇게 생겼다고 자랑하고 아이들은 나를 쫓아다니며 부러운 눈길을 주던 생각이 난다.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나 되는 줄 알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시시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것이 너무 좋아서 방학 때가 되면 작은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여름철 더운 날 저녁을 먹고 식구들이 멍석에 누워서 바라보던 별들은 왜 그리도 컸는지 별들이 멍석 위에 누워있는 우리들에게 쏟아질 듯하던 생각이 난다. 작은집을 가려면 큰길로 갈 수 있었는데 산길로 가면 엄청 빨랐다. 가다 보면 뱀들이 나뭇가지에 허물을 벗어놓은 것이 보였지만  무서워도 그 길을 갔던 생각이 난다. 오빠와 남동생은 나무로 뱀 껍질을 건드려서 땅에 떨어뜨리면 나는 무섭다고 소리 지르면 그것이 재미있어 더 장난을 쳤다.


그토록 무섭고 재미있던 지난날들은 추억이 되어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에 다시 피어난다. 추억은 작은집의 아궁이에서 시작하여 나는 처음 이 집을 사서 이사 왔을 때가 생각난다. 벽난로가 있으니 겨울에 때우기 위해 장작을 잔뜩 사다 놓았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  굴뚝 뚜껑이 닫혀 있는지 모르고 불을 땠다. 굴뚝을 열어주고 창문을 열면  불길이 굴뚝을 통해 불길을 빨아들여 불이 붙는데 뚜껑을 열지 않아 집안은 연기로 가득 찾고 추운 날  집안의 모든 유리창을  다 열어놓고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한번 크게 혼난 뒤로 준비를 잘하고 불이 잘 펴서 굴뚝에 연기가 잘 나가고 있는지 온 식구가 밖에 나가서 굴뚝으로 빠져나오는 연기를 구경하며 깔깔 대던 생각이 난다. 불은  신나게 잘 타오른다. 길고 추운 겨울에 다행히 우리 집에 벽난로가 있어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종종 장작을 때며 오늘처럼 추억에 젖는다.



(사진:이종숙)


불이 활활 잘 타오르는 것을 보니 벽난로 옆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싶다. 집안에 냄새가 배지 않게 김치찌개를 끓일 때나 생선을 구울 때는 벽난로 옆에서 요리를 하면 굴뚝으로 냄새가 빠져나간다. 오래전 이곳에는 한국음식이 별로 없어 이곳에서 파는 재료로 한국음식 흉내를 내서 먹으며 고향을 그리워했는데 이제는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르게 모든 것이 풍부하다. 매일매일 이곳에서도 한국 뉴스를 보고 한국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산다. 한국에 있는 식구 들을 생각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지만 만날 수 없기에 그립다.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아 이곳 사람이 다 되었지만 나의 뿌리는 영원한 한국인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나이가 들면 이가 된다고 나는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지 한국 음식이 더 좋아진다. 언제 어느 때 먹어도 좋은 김치찌개는 나에게는 고향의 맛이다.


지금도 다른 반찬은 필요 없고 하얀 밥에 김치찌개만 있으면 되는데 그때 먹었던 그 맛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영양 생각해서 여러 가지 잡곡섞어놓고 밥을 해 먹는데 어릴 적에는 하얀 쌀밥을 먹었다. 여러 가지 밑반찬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딱 한 가지인 김치찌개였다  하얀 밥에 김치찌개 몇 개씩 얹여서 먹으면 매워서  코에 땀이 송송 맺히는 줄도 모르고 코를 훌쩍대며 먹는다. 별것 아닌 김치찌개만 있으면 만족했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신 김치에 기름 한 방울  넣어 끓인 것을 더 좋아했다. 지금이야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큼지막하게 뚝뚝  썰어 넣고 끓이지만 그때는 고기도 귀했지만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고 김치와 밥 그리고 멸치볶음을 주로 가지고 다녔다.


교실 안에 있는 난로 위에는 도시락이 층층이 올려져서  반찬이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배속은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친다. 난로 위에서 익은 김치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점심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도시락을 먹던 생각이 난다. 이제 도시락의 낭만은 없어지고 아이들은  따뜻한 급식을 먹으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든다. 벽난로를 때며 생각은 몇십 년 전의 아이가 되어 친구들과 깔깔댄다. 멀어져 간 세월은 추억만 안겨놓고 달음질쳐 버렸다.


지금 이런 세상이 오리라고는 상상 조차 못했는데 도시락을 먹으며 깔깔대던 아이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보고 싶다. 왜 그런지 불을 때면 추억의 창고가 열려 옛날로 돌아간다.
보고 싶은 식구들, 그리운 친구들, 그때는 옆에 없으면 죽을 듯하던 사람들과 헤어진 지 많은 세월이 흘렀고  다시 돌아가지 못해도 추억은 벽난로 안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피어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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