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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23. 2020

인생 기차는... 오늘도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


(사진:이종숙)


지나간 세월에 비하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별것 아닌 짧은 시간인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 다시 다섯 살짜리 아이로 돌아간 듯 어정쩡하다. 할 줄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기억력도 저하되고 결정을 내릴 때 많이 망설인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연속극의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도 생각 안 난다. 금방 읽은 숫자나 단어도 다시 봐야 한다. 세일 품목을 금방 봤는데 머릿속은 깜깜하다. 중요한 것을 잘 두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 어제와 오늘이 헷갈리고 한 것을 안 했다고 잡아떼고 안 했는데 했다고 우긴다. 카톡을 통해 여러 가지 글을 주고받으며 똑똑해져야 하는데 나날이 새롭다. 알던 사람이 언젠가 보았던 사람이 되고 어디선가 들었던 말일뿐 확실하게 아는 게 없다. 나만 그런가 하여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그들도 그렇단다. 그럼 이게 대체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가면 그저 먹고 자는 짐승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절망할 것 까지는 없다. 이 나이가 되면 그렇게 서서히 익어간다. 사람이 익어가기 까지는 몇십 년이 걸려야 맛있게 익을까 생각해 본다. 상행선을 타고 가며 다 익었나 보면 하행선을 탄다. 기운도 없어지고 능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없어지며 하행선 안에서 살아간다. 그까짓 가는 세월 잡을 수 없으니 가던 길 멈추어서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마라톤 선수 마냥 뛰고 또 뛰며 살았어결국 제자리걸음인데 안달할 것 없다. 천천히 걸은 사람이나 빨리 뛴 사람이나 종착역에서 만난다. 똑똑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이 치매를 앓더니 자식이고 친구고 아무도 못 알아본다. 겨우 평생 살아온 부인은 기억하지만 멍청하게 산다. 꿈을 꾸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박사고 농부고 상관없다. 그 병은 비처럼 오고 눈처럼 와서 누군가를 적시고 삶의 기억을 뺏아간다.


아직도 치료약이 없는 치매라는 병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병이다. 80이 조금 넘은 지인이 기억력이 자꾸 저하되어 혹시 치매가 아닌가 걱정이 되어 치매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치매는 아니고 노인성 기억력 저하로 나왔다. 예방 차원으로 치매를 늦추어 주는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이 심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부작용이 있어 사용을 꺼려하지만 약을 병행하며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면 효과가 좋다는 연구결과이다. 그렇게 호탕하게 웃기도 잘하고 농담도 잘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던 사람인데 갑자기 말수도 적어지고 딴 사람처럼 행동한다. 밤중에 이유 없이 돌아다녀서 부인과 손을 끈으로 묶고 자는데  끈을 풀고 사라졌다. 사람이 없어져서 집안을 다 뒤져도 없어 차고에 가 보았더니 깜깜한 곳에 불도 켜지 않고 구석에 서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의사와 상담 후에 치매병동이 있는 요양원에 살면서 상황은 더 나빠지고 부인이 돌아갔을 때도 못 가보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고 그냥 바보처럼 비참하게 살다 간 그분 얘기를 들으니 정말 안타깝다. 몇 안 되는 똑똑한 사람 중에 한 분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런 병에 걸렸는지 기가 막히다.



(사진:이종숙)


아무런 변화 없는 매일의 생활에서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아무 필요도 느끼지 못 한 채 스마트폰에 기대어 산다.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무언가 보고 산다. 웃고 울고 화내고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기계 안에서 살아간다. 기계는 인간에게 감정 없이 모든 걸 보여 주고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대한다. 끝없이 나오는 무궁무진한 재밋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세월도 시간도 잊는다. 할 일도, 해야 할 것도 잊은 채 기계에 빠져 산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배가 고프면 대충 먹는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인간이 퇴화되어 가는지 모르게 산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많이 배운 사람들이 늙고 죽는 사이에 기계가 작동하는 세상이 되었다. 기계만 잘하면 학교도 직장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하고 인간은 할 일이 없어 기계만 끌어안고 산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잠을 못 자며 못한 일을 해도 밀렸던 일을 기계가 순식간에 해결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기계와 논다. 40년 전 큰아이를 낳았을 때는 헝겊 기저귀를 사용했지만 세탁기가 빨아주어 이 셋을 키우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지금은 종이 기저귀를 쓰면서도 사람들은 바쁘고 힘들다고 한다. 모든 것들이 기계화된 세상인데 시간이 없다고 난리인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SNS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가고 앉아서 기계와 놀다 보면 밤새는 줄 모른다. 기계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살다 보면 정작 머리를 쓰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구글 박사와 유튜브 박사가 사람들을 가르쳐주어 똑똑해지는 세상에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기억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스마트폰 하나 들고 다니며 할 일을 하며 살면 된다. 약속 시간을 알려주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준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을 알려주고 손가락 하나로 세상에 필요한 정보를 다 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도 앉은자리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니 세상이 조용하다. 세상이 뒤집혀도 컴퓨터나 핸드폰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알 수 있으니 좋은데 자꾸 옛날이 그리워진다. 힘들게 살며 사람들과 부딪히며 웃고 살고 싶다.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으며 편지를 부치고 불편함 속에 정을 느끼던 날이 생각난다.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우체부 아저씨가 지나가면 혹시나 하며 설레던 날들이 생각난다. 모든 게 귀해서 작은 것도 아끼며 감사하던 마음이 그리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고생하고 살던 시절이 추억이 되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 그리워진다.


인간의 종착역은 어디인지 모른다. 인생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폭풍우도 만나고 비바람도 만나지만 아프지 않고 사는 게 최고라는 마음이 든다. 젊어서 객기 부리느라 '굵고 짧게'를 외치고 다니지만 특별나지 않아도 좋고, 유난하지 않아도 좋고, 그저 평범하게 무병하게 살기를 바란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다 갈 권리가 있다. 구독자 작가 한분이 많이 아파 가슴이 아프다. 댓글도 차단하여 위로와 용기를 드리지 못하지만  힘겨움에도 글을 쓰시는 그분이 어서 빨리 건강을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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