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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27. 2020

걸을 때마다... 함께 걷는 그림자도 신나게 따라온다


(사진:이종숙)



밤새 눈이 와서 세상이 하얗다. 아무도 걷지 않은 오솔길로 걸어간다. 꿈길처럼 신비로운 눈길을 걸으며 나무들을 본다. 새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설국이 되어 반긴다. 하늘은 파랗고 눈 덮인 숲 속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다람쥐와 새들 먹이를 나무 위에 놓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다 없어졌다. 공짜로 생긴 음식이 맛있어서 부지런히 먹었나 보다.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 공짜 음식이라는 것을 그들도 아나보다. 눈 덮인 숲에서 음식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용케 살아남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먹을 것이라고는 얼은 나무 열매 밖에 없는데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에는 까치가 엄청 많다. 까치 모임이라도 있는지 동네 까치가 다 모여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나무마다 한두 마리씩 앉아 있고 떼로 몰려다니며 숲을 들썩인다. 공짜로 먹을 것이 생겨서 사돈의 팔촌까지 다 불렀는지 몇십 마리도 넘는 것 같은 까치들이 온 숲을 점령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가지에 짝을 지어 앉아서 어딘가를 내려다보며 짖어대는 까치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하다. 무슨 일이기에 저리도 난리를 치는 것인지 하늘을 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까치를 한참 보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가을이 올 즈음 저녁 산책을 하러 동네를 걷는데 수십 마리의 까치소리가 들려서 보니 나무마다 까치들이 앉아서 아래를 보며 한 마리씩 땅으로 내려와서 차례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무엇인가 하며 땅을 보니 다람쥐 한 마리가 객사를 해서 누워있는데 까치들이 그것 때문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시식을 하던 까치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마도 골짜기 어딘가에 객사한 다람쥐라도 있는지 멀리 보니 우리 담장에서 망을 보던 까치도 합류한 것 같다. 한참을 날아다니고 소리를 지르더니 조용해진 것을 보니 먹을 만큼 먹고 배가 부르니까 다 돌아갔나 보다. 배가 부르면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욕심 없는 그들의 삶이 보인 다. 쌓고 또 쌓아야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비웃듯 떠나간 까치들은 어딘가에서 휴식을 취하는지 숲은 다시 정적 속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솔길을 따라 앞으로 걷는다. 나무들이 빡빡하게 서있는 숲 속은 한겨울인데도 바람이 없어 따스하다. 눈이 여기저기 쌓여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등 굽은 나무에 쌓인 눈은 등이 굽었고 누워있는 나무에 쌓여있는 눈은 포근한 이불이 되어 덮어준다. 눈이 만든 거북이도 있고 토끼도 있다. 사슴도 있고 귀여운 강아지도 있다.



(사진:이종숙)



가지마다 쌓인 눈은 눈꽃이 되어 화사하게  피어있고 잘라진 나무에는 포근한 모자가 되어 예쁘게 앉아있다. 계곡도 눈이 쌓여 그 모습을 감추고 장난꾸러기 개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산나물을 뜯으며 헤매던 길에 눈이 쌓여있지만 나의 생각은 그때로 돌아가서 산길을 오르내린다. 힘드는데도 '조금만 더' 하며 열심히 뜯으며 해가 지는 줄 모르던 그날은 이렇게 추억이 되어 나를 찾아온다. 눈길을 걷는 오늘도 어느 날엔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소중하다.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간 길을 따라가다 옆길로 걸어본다.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길을 걸으며 앞을 보니 사슴 발자국이 보여 따라가 본다. 사슴도 있고 늑대도 있다는 이 숲에 겨울에는 한 번도 못 보았는데 발자국을 보니 신기하다. 어딘가 가까운 곳에 그들의 집이 있는지 발걸음이 끊겼다. 그들이 사는 곳에 침입자로 오인받으면 안 되니까 서둘러서 그 자리를 떠난다.


가까운 곳에 다리가 보인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엄마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숲에 퍼지고 지나가는 개들은 허공을 향해 이유 없이 짖는다. 아침에 나를 찾아오는 게으름의 유혹을 떨치고 나와 걸으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난다. 추웠던 몸은 오르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땀이 난다. 가만히 앉아 연속극 하나 볼 시간에 나와서 걸으면 이렇게 좋은데 아침에는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만 걸쳐 입고 나오면 하느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 나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세상에서 걷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이 행복이 새삼스레 감사하다. 사는 게 바빠서, 할 일이 많아서 하지 못했던 지난날인데 이제는 아무 때나 찾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세상은 발품 파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걷고 볼 수 있을 때까지 많이 보며 살자.


삶이란 누구에게 줄 수도  누가 가져다 줄 수도 없다. 느끼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은 내 몫이다. 맘껏 즐기고 행복할 때 세상은 아름답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 걷는다. 아까 보지 못했던 모습이 눈에 들어와 처음 걷는 길처럼 새롭다. 가는 길에는 나무들을 보며 갔는데 오는 길에는 계곡도 보이고 보이지 않던 빨간 열매도 보여 목 마른김에 한주먹 따서 입에 넣어 본다. 얼음과자처럼 시원하여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장갑도, 모자도 벗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앞으로 이런 숲 속 오솔길을  얼마나 걸어 다닐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오늘 지금만 생각해도 바쁜데 오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미래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백 년도 못 사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근심 걱정에 세월을 보낸다. 오늘은 오늘의 바람이 불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다.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사랑하며 매사에 감사한다. 잘된 일에 감사하고 안된 일에도 감사하며 지나간 모든것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하늘을 본다.


유난히 파란 하늘은 눈이 부시고 나무 사이로 비취는 태양은 숲 속으로 내려온다. 마른나무 곁에도 가서 앉고 구부러진 나무와도 손을 잡으며 세상을 다 비추어 살게 하고 힘을 준다.


어제 그제 날씨가 흐려서 보지 못한 햇볕이라 더 반갑고 걸을 때마다 함께 걷는 그림자도 신나서 걸어간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산책길은 행복이 넘치고 내일을 기약하며 차를 향해 언덕을 오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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