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하얀 캔버스에 희망을 그린다

by Chong Sook Lee


(그림:이종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날
무엇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어떤 것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 무엇도 흥미를 찾지 못하는 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그 무엇도 마음이 다가서지 않는다


하얀 캔버스를 이젤에 올려놓는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고
아무런 색도 없는 하얀 캔버스
가만히 쳐다본다
백옥처럼 하얗고 깨끗하다
무엇을 그릴까
어떤 물감을 칠할까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감을 보고 붓을 본다
그림을 그려보려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 난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지만
몇 가지 페인트를 짜 놓고
붓을 물에 적신다
어떤 색을 칠할까
연하게 칠해본다.


(그림:이종숙)




하얗던 캔버스가

연하게 옷을 입는다
하얀색이 깨끗하지만
연한 색 옷을 입은 캔버스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깨끗했지만 따뜻하지 않고
포근하지 않던 캔버스는

내 마음을

끌어당기며 이야기한다
조금씩 다가오며
조용히 속삭인다


또 다른 색의 옷을 입히며
하얗던 캔버스는 생각하지 못했던
화려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 있다.
색을 칠하고 하늘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냇가를 그리니
하얗던 캔버스는 숲이 되었다
숲 속에 있는 나무가 보인다
가늘고 굵은 나무가 있고
비틀리고 허리 굽은 나무도 있다


이파리를 그려본다
마른 아파리도 싱싱한 이파리도
나무에 붙어 바람에 흔들린다
숲길에 작은 오솔길을 그리고
떨어진 낙엽도 길가에 그린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머릿속에서
생각이 만들어지고
하얀 캔버스는

생각의 그림을 그리며
또 다른 모습의 캔버스가 되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이
무료하던 삶이

캔버스에 옷을 입히며
희망이라는 날을 만든다



(그림: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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