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걸어본다. 죽은 듯 서있는 나무들 옆을 지나간다. 나무에는 이파리도 없고 누렇게 말라죽은 풀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아무것도 없는듯한 황량한 겨울 숲인데 숲이 숨을 쉰다. 꽃이 없어도 이쁘다. 눈길을 걸으며 숲과 이야기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에 사람들이 지나간 발자국이 보인다. 여름에 볼 수 없었던 숲이 환하게 보인다. 숲을 지나갈 때마다 보이지 않는 숲이 궁금했는데 발가벗고 서있는 숲이 훤히 보인다. 넘어진 나무와 자빠진 나무가 보이고, 기운이 없어 옆 나무에 기대고 서있는 나무도 보인다. 숲에 들어와 보니 숲을 알겠다. 숲 속에 비밀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각자 사느라 바쁜 우리네 인생살이와 별 다를 것 없다.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잎을 만들며 여름을 맞고 가을에 치장하며 할 일을 다하다가 땅에 떨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추운 겨울에 눈을 맞으며 봄을 준비한다.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숲 가운데에 있는 새로운 길로 걸어간다. 처음 걷는 길은 언제나 새롭다. 나무들의 모습도 예쁘고 계곡도 아름답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숲길을 걸어가는데 나무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해가 따사롭다. 오르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 곳은 바람도 없이 따뜻한 곳이 있고 어느 곳은 싸하여 추운 곳이 있다. 나무 몇 개 사이로 온도 차이가 난다.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고쳐 쓰고 열심히 걷는다. 겨울인데도 얼었다 녹은 계곡물이 흐르고 계곡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물에 비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하지만 무언가를 한다. 다람쥐들도 눈 쌓인 숲 속에서 나름대로 먹을 것을 찾아내어 먹는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다. 몇 명이 단체로 와서 신나게 타는 모습이 좋다.
겨울이 긴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며 지루한 겨울을 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놀이를 한다. 앞에 보이는 언덕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다. 오다가 속도 조절을 못했는지 넘어지고 깔판은 숲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숲에 메아리치는 평화로운 날이다. 그들을 지나쳐 다시 아무도 없는 숲으로 들어간다. 한 시간 정도 걸었더니 덥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추운데 밖에서 걸으니 하나도 춥지 않다. 날이 푸근해서인지 새들이 많이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나무에 새먹이를 걸어 놓아 새들이 바쁘게 드나든다. 추운 겨울에 새 먹이를 가져다주는 예쁜 손길에 숲은 아름답다. 지난가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언제나 겨울이었던 것 같다. 겨울이 추워서 싫다고 했는데 이렇게 나와서 숲 속을 걸으니 겨울의 아름다움을 본다. 꽃이 있어도 꽃이 없어도 세상은 아름답다.
(사진:이종숙)
녹음이 우거져도 단풍이 들어도 세상은 아름답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산도 참으로 아름답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의 모습은 달라진다. 가을이 가지 않기를 바라는데 가고 봄이 오기를 바라지만 겨울과 함께 한다. 높이 오르기를 바라지만 자꾸만 미끄러진다. 채우기를 바라고 쌓기를 바라지만 자꾸만 잃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는 대로 바라보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찬다. 가지려 하지 말고 오는 것을 안으면 가슴속에 뜨거움이 샘솟는다. 아무것도 주지 않는 숲 속을 걸으며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는데 나는 행복하다. 보이지 않지만 숲은 나에게 평화를 준다. 욕심을 내려놓게 하고 마음을 비우게 하고 감사하게 한다. 싫은 것보다 좋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미운 것보다 예쁜 것을 기억하게 한다. 바람이 불어 눈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여기저기 뒹군다.
자연이 하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밟혀서 다시 나무에게 돌려주기 위함이다. 누워있고 포개져 있는 나무들이 있어 좋다. 깨끗하지 않아 좋고 넘어진 나무들이 있어 좋다. 그들이 하는 일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사진 언덕을 숨차게 올라간다. 이 언덕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힘들어도 가다 보면 평지가 나오는 것을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안다. 봄이라고 다 좋지 않고 겨울이라고 다 나쁘지 않다. 가을이라고 다 아름답지 않고 여름이라고 뜨겁지만은 아니듯 삶의 맛을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숲이 점점 깊어지고 낭떠러지가 보인다. 여기서 발 한발 잘못 디디면 계곡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계곡으로 직행이다. 한눈팔지 말고 가야 한다. 멀리 보이는 나무 꼭대기에 까치 한 마리가 숲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남편과 나는 숲을 걷고 새들은 날아다니고 다람쥐는 나무를 오르내린다.
넘어진 나무는 땅에서 쉬고 서 있는 나무는 바람을 맞고 서있는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겨울 숲을 만나고 아름다운 겨울을 안고 왔다. 내일도 우리는 이곳에 와서 걸을 것이고 이곳에서 숲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