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꽉 차니... 덩달아 배가 부르다

by Chong Sook Lee



냉장고를 채우지 않고 산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배가 고픈 듯 날 빤히 쳐다봐도 나는 모른 체한다. 먹는다고 하는데 여전히 버리는 게 많다 보니 물건을 사다 놓기가 겁이 난다. 지구 전체가 쓰레기인데 웬만하면 버리고 싶지 않아 음식도, 그릇도 있는 것 먹고 쓰며 살아간다. 슈퍼가 가까이 있어 냉장고를 채우지 않고 틈틈이 오며 가며 한두 개씩 사다 먹곤 한다. 늘 배고파하는 냉장고를 무시하며 있는 대로 만들어 먹으며 냉장고를 채우지 않았다. 어차피 많이 먹지도 못하고 괜히 많이 사다 놓으면 썩어 버리니 부족한 듯 모자란 듯 만들어 먹으며 생활하다 보니 그것도 괜찮다. 아이들이 나가고 없는데 옛날에 장 보듯 여러 가지를 사다 놓고 먹다 보면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다.


옛날 같지 않아 물건값이 올라서 얼마 사지 않아도 돈이 많이 든다. 사느라고 돈 쓰고 냉장고에 모셔놓았다가 먹지 못하면 버려야 한다. 돈도 아깝고 버리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그때그때 조금씩 사다 먹으니 좋다. 지난번에 냉장고 청소를 하며 다시는 냉장고를 배불리 지 않겠다고 한 자신과의 약속을 이어가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면 텅 비어있어서 원하는 것을 찾기도 쉽고 먹다 남는 것이 없으니 버릴 것도 없다. 밥이나 하고 국이나 끓여서 밑반찬 몇 개 놓고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것저것 힘들게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코로나 19가 더 심해져서 확진자수가 내가 사는 주에서 하루 1500명을 웃돌아 방역이 많이 강화되었다. 캐나다 동부에 확진자가 많아 걱정했는데 이곳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초비상이 걸렸다.


모든 시설은 문을 닫았다. 식당도 배달만 되고 이발소도 닫고 공공시설도 다 닫았다. 갑자기 강화된 방역이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린다. 성당도 그동안 50명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25명만 들어가 미사참례를 할 수 있다.장례식은 10명이고 모든 것을 닫고 생활에 가장 필요한 슈퍼만 열게 된다. 집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정부에서 사정을 한다. 연말연시에 확산세를 막기 위함 이라는데 시책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막상 그렇게 되니 먹을 것으로 냉장고를 채워야 한다.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조금 여유 있게 사다 놓으려고 장을 보러 갔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나온 사람만큼만 들여보내고 있다. 굳이 이렇게 까지 기다리며 장을 보고 싶지 않아 가려다가 어차피 장을 봐야기에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사진:이종숙)


예전 같은 전쟁통 같았던 모습이 없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서둘러서 필요한 것을 사 가지고 나간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니 쳐다보거나 말을 걸지도 않는다. 연말인데 식구들이 오도 가도 못하니 장도 많이 볼 필요 없다. 그래도 당분간 꼼짝 말고 집에 있으려면 먹을 것은 있어야 하니 필요한 것들 몇 가지씩 사 가지고 급하게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역시 그동안 비워놓았던 냉장고를 채울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일단 쌀은 많이 사다 놓았으니 계란이나 우유 그리고 고기 종류를 사고 베이컨과 소시지도 샀다. 상추나 고추도 사고 양파와 감자도 샀다. 오는 길에 한국 장에 가서 콩나물도 사고 오징어와 어묵도 사고 떡국떡도 사 왔다. 어차피 완화된 뒤에도 계속 먹고살아야 하기에 필요한 것들을 대충 사 왔더니 냉장고가 터질 것처럼 꽉 차 버렸다.


지난번에 사다 놓았던 과일도 채소도 열심히 먹는 일만 남았다. 아이들과 함께 살 때는 장보고 돌아서면 또 봐야 했는데 둘이 먹는 게 별로 없어 며칠이 지나도 그냥 그대로 일 때가 많다. 이제 앞으로 꼼짝 말고 집에 있으면서 곶감 빼먹듯이 하나하나 빼먹으면 된다. 냉장고가 배고파하더니 이제 배 터진다고 난리다. 돈을 잔뜩 쓰고 이것저것 사다 놓았더니 나까지 배가 부르다. 얼릴 것은 얼리고 씻을 것은 씻고 나누어 놀 것은 작은 봉투에 조금씩 나누어서 차곡차곡 넣어 놓았다 오랜만에 냉장고를 채우니 내 마음도 풍요롭다. 냉장고가 배가 부르니 나도 벌써 배가 부르다. 사람의 욕심이 이렇게 많으니 걱정이다. 나중에 먹다 다 못 먹고 버릴지라도 일단 꽉 차 있는 냉장고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냉장고도 오랜만에 배가 차니 씽씽 잘 돌아가며 웅웅 거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이들이 와서 며칠 동안 있다 가기 때문에 장을 미리 다 놓고 이것저것 만들어 놓는다. 뼈도 고아서 곰국도 만들고 닭도 구워서 살을 발라놓고 생선도 절여서 바로 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서 얼려 놓는다. 밑반찬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와서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놓으면 나도 편하고 손주들하고 놀 수 있었는데 올해는 그게 아니다. 아이들이 올 수도 없고 내가 갈 수도 없다. 그러니 별수 없이 아이들 먹일 음식 대신에 냉장고나 실컷 배불려야겠다. 코로나가 심한 바람을 일으키며 세상을 돌아다니니 가만히 있으려면 냉장고가 살이 찌든 말든 많이 먹여야겠다.


꽉 찬 냉장고에 맛있게 먹으며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지만 올해는 자식 대신 냉장고를 먹이며 쓸쓸한 연말을 보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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