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고... 생각 나는 날

by Chong Sook Lee


산타 스타킹 안에서 꿀잠을 자는 딸




12월 21일 아침이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38년 전 딸을 낳기 위해 병원으로 갔던 날이 생각난다.




남들은 동지라고 동지 팥죽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병원에 가야 했다. 1살 반짜리 와 두 살 반짜리 두 아들을 집에 놓아두고 셋째를 낳기 위해 병원으로 가야 했다. 남편이 집에서 아이 들을 보지만 몸이 무거워서 먹을 것도 준비도 해놓지 못한 채 걱정만 잔뜩 안고 문가에 놓아둔 가방을 본다. 가방도 걱정이 산더미 같다. 어린애 둘을 남편 혼자 보기 힘들 거라며 아기 없는 친한 친구 신혼부부가 우리 집에 들러서 잠깐씩 봐주다고는 하지만 걱정만 앞서고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힌다. 아이들을 씻기고 아침 점심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갈 준비를 하지만 마음은 복잡하다. 둘째가 거꾸로 있어서 수술을 해서 낳기 때문에 셋째 때도 다시 그 무서운 수술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도 잡아 놓은 수술 날짜가 내일이니 오늘 저녁에는 입원해야 한다. 캐나다에 와서 만난 서양 할머니가 병원에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조금 있으면 오실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나 다름없는 분이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에게 치밀하고도 정확하게 계획을 세워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번역기가 없으니 만나는 날은 영한사전이 필수다. 말을 하다가 단어의 뜻을 모르면 사전을 찾아가며 소통한다. 그렇게 가까워지며 엄마처럼 나를 병원에 데려다 입원을 시켜준다며 앞장서신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이 없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책도 생겨서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셋째를 가지고 초기에 입덧을 심하게 했을 때도 심신을 편하게 해야 아가에게 좋다며 자기 집으로 휴가를 오라고 배려해 주셨는데 이번에도 병원까지 데려다준다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야 할 시간이 되어 집을 나서는데 두 아들이 눈에 밟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도살장으로 잡혀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갔다. 나를 입원시키고 멀리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할머니를 병원 창문으로 바라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공중전화로 남편과 통화를 하며 잘 도착했음을 알리며 침대에 들어가 지난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뒤돌아 보았다. 이민 와서 24일 만에 큰애를 낳고 지금까지 내 시간은 없었다. 연년생으로 아이들을 낳다 보니 기저귀와 젖병을 가지고 다니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하루 종일 무거운 몸으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더니 몸이 힘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는지 깨어 보니 간호원이 수술실로 갈 준비를 한다.




주사를 맞으며 나는 잠이 들었고 나의 이름을 부르며 딸이라고 하는 말이 잠결에 들려 깨어보니 남편이 와서 아기를 보며 서 있는 게 보였다. 셋째가 세상에 나왔다. 그때만 해도 아기 성별을 알 수 없던 때라 나는 이번에도 아들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딸이었다. 아들 둘에 딸 하나의 엄마가 되었다. 수술 후에 오는 통증으로 괴로웠지만 곤하게 자는 아기를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건강한 세 아이를 낳게 도와주심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때 당시 남편은 실업자였고 가진돈은 없었지만 젊고 건강했기에 두렵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잘되겠지 하는 믿음으로 버텼다. 수술 후유증으로 복통이 심했고 허리가 빠질 것 같아 힘들어할 때 간호원이 해준 마사지는 평생 잊지 못한다.


잠은 쏟아지는데 누울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이 허리가 아팠다. 수술로 열었던 배에 가스가 들어가서 복통을 만들었는데 배속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아프다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영어를 잘 모르니 괴로워도 말도 못 하고 끙끙대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밤에 일을 하는 담당 간호원이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그녀의 손에 바셀린을 듬뿍 바르더니 손을 비벼서 따뜻하게 한 후에 내 등을 살살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아프던 통증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심심이 지쳐있던 나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 한숨 잘 수 있었다. 일어나 보니 그녀는 없었고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며칠 뒤에 나는 퇴원을 했다. 이름도 모르고 생긴 모습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의 친절하고 따뜻하던 손길을 잊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가도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잊히기는커녕 점점 더 또렷하게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아기 낳을 때의 일일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날로 돌아간 듯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난 아기라서 산타 스타킹에 아기를 넣어 침대에 뉘어놓았던 것도 눈에 선하다. 그때 나를 도와주었던 할머니는 그 뒤로 20여 년을 우리와 가까이 지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언제나 그리운 할머니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그분이 진짜 할머니로 알고 자랐을 정도로 가까웠다. 세월이 흘러 내일이면 38살이 되는 딸한테 전화가 와서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날이 생각나서 적어본 글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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