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추위에 눈 쌓인 밖을 내다본다. 마루로 들어오는 햇살은 그 어느 때 보다 따스하다. 집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벽시계 소리와 실내 온도가 내려갈 때 자동으로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까 사람들도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는지 거리가 한산하다. 찾아보면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게으름을 피우며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본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이런저런 사진을 걸어놓아 사람들이 놀러 오면 구경을 했는데 전화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서 사진을 찍어 전화에 보관하며, 사진이 보고 싶을 때 전화를 열어 사진을 보기 때문에 따로 현상을 해서 벽에 걸어놓는 경우가 점점 줄어든다. 옛날에는 카메라에 있는 필름을 사진관에 가져가면 사진을 현상해서 주었는데 요즘엔 사진을 뽑기도 우리 같은 노인들은 복잡하여 귀여운 손주들 사진도 몇 개 없다. 8살이 된 손자가 6개월일 때 안고 있는 사진과 두 살 반이 된 손자가 5개월 때 찍은 손자 사진 그리고 두 손주가 빠진 몇 년 된 가족사진과 아이들 결혼사진이 걸려있다.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보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더 커가고 있음을 보며 세월의 빠름을 또 느낀다.
어느새 그 많은 세월이 왔다 갔는지 모르겠다. 캐나다 이민생활이 만 40년이 되었다. 무엇을 하며 그 세월을 살아왔는지 정말 꿈만 같다. 애들을 키우며 먹고사는데 정신없이 살아온 것 외에 어디 한번 한눈팔 시간도, 여유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세월 속에 다 묻어 버렸는지 요즘엔 아무런 의욕이 없다. 그저 편하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한없이 늘어지고 게으름만 느는 것 같다. 세상은 편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언제 그런 옛날이 있었나 하는 듯 전혀 다른 삶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집안 청소도, 부엌 정리도 전문인을 고용한다. 음식을 요리하는 시간도 절약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음식을 사다가 데워 먹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외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것뿐인가. 드론과 로버트가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서울 정도로 빠른 발전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버튼 하나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가 세상을 이끌어 간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가는데 나는 따뜻한 마루에 앉아서 게으름만 피우고 있으니 걱정이다. 하루하루 나이는 들어가 정신도 없고, 무엇을 가르쳐줘도 자꾸 잊어버리지만 더 늙기 전에 하이텍을 익혀야겠다. 공공시설이나 병원, 그리고 은행과 전화회사에 무언가라도 물어볼 일이 있어 전화를 하면 모두가 자동 응답기로 묻는다. 여러 가지 이해 못하는 것 때문에 서툴러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걱정이 많다. 세상만사가 컴퓨터화, 기계화로 변하는데 작동하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이라도 카메라에 있는 사진을 유에스비에 저장하여 사진도 뽑아보고, 작은 드론이라도 사 가지고 집에서 조금씩 작동하는 법을 배워봐야겠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늙었다고, 이젠 너무 늦었다고 미루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주위 사람들 한테라도 물어봐 가며 뭐라도 배워야 한다. 학원에라도 가고, 형편이 안되면 독학으로라도 배워야 한다. 한가한 오후에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다 생각은 엉뚱한 곳까지 달려간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은 이미 지나가 희미한 기억만 남았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내게 남은 시간이 하루가 되었든 20년이 되었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다 보면 안 배우는 것보다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한걸음 두 걸음 걷다 보면 멀리 보이는 산에도 도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이가 들어 활동량이 줄어들었지만 백세시대이니 어쩌면 나는 아직 청년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를 따라가지는 못해도 뒤쳐지지는 말아야 한다. 나이로 인하여 안 그래도 자신감이 낮아지는데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자신을 위해서나 주위 사람을 위해서 좋은 것이다. 누구나 없으면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 폰 하나에도 무궁무진한 기능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무엇 하나 사용하지 못하고 비싼 전화료만 내는 실정이다.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으로 또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급할 때 연락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그 많은 기능을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잘못 사용해서 전화료가 많이 나오는 것이 무서워서 새로운 것을 배울 생각을 못한다. 더구나 요즘 전화 사기가 많다 보니 정작 받아야 할 전화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전화가 무서운 폭탄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은 스마트 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본다.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하나 찾아보면 조금씩 알게 되고 배우게 된다.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 보면 엄청난 앱들이 있다. 생활에 필요한 무료 앱들이 그렇게도 많이 있는데 아예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용할 생각을 못한다. 기계를 모르는 우리 세대로서는 백번 이해가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계를 두려워한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데도 전화나 컴퓨터가 잘 안되면 겁부터 먹는다. 아이들과 함께 살 때는 애들이 다 알아서 했지만 지금은 우리 둘이 살고 있어 뭐라도 고장 날까 봐 걱정이다. 집안의 물건들도 오래된 물건들이라서 고장이 잘 난다. 지금에 와서 새로 사기도 그렇고 하여 고쳐서 쓰다 보니 간혹 신경질이 난다. 잘 나오던 텔레비전이 보는 중간에 꺼지고, 마이크로 오븐도 문이 헐렁거려 일을 했다 안 했다 한다. 물론 옛날보다 물건값이 싸고 더 다양해서 새로 구입하면 간단하지만 웬만하면 고쳐 쓰려는 생각이 있다 보니 잘 안된다.
기술자들은 힘 안 들이고도 고칠 간단한 문제도 모르는 우리에게는 큰 문제 같아 보이고, 모든 기계들이 전문용어가 있어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엔 유튜브에 들어가면 웬만한 것들은 다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모른다고 미리 겁먹지 말고 모르는 것은 인터넷에 물어가며 지금부터는 뭐라도 배워야겠다. 한 개 두 개 배우면 아쉬운 대로 아이들 신세 안 지고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세상이 달라지고 하루하루가 무섭게 변해 가는 요즘 세상에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이 나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