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아침에 일어나 온도를 보니 영하 21도였다. 체감온도로 하자면 영하 30도는 넘을 텐데 눈까지 와서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이렇게 추운 날은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책길에 가서 걸어본다. 밤새 내린 눈이 숲을 하얗게 덮어 설국에 온 것처럼 세상이 아름답다.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단단히 묶고 한 발씩 걷는다. 아무도 걷지 않은 숲 속을 걸어가며 나무들을 본다. 눈을 이불 삼아 덮고 있는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을 내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사람들은 꽁꽁 싸매고도 춥다고 하는데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들은 어찌 저리도 잘 견디는지 모르겠다. 얽히고설킨 나무들이 참 사이좋게 잘 살아간다. 잘나고 못나고 다투지 않고 크고 작고 뽐내지 않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나무들은 힘든 겨울을 함께 견디고 아름다운 봄을 같이 맞이한다. 먼저 피고 먼저 져도 누구 하나 말하지 않는다. 예쁘다고 잘난 체하지 않고 못생겼다고 내치지 않고 홀로 피고 지며 시기하지 않고 상생한다. 아프면 혼자 힘들어하다 견딜 수 없으면 누워 버리고 더 이상 살 수 없어 넘어지고서도 아무도 모르게 버섯을 기르며 누워있다. 오래전, 이민 초기에 한국이 그리워도 가지 못할 때 나는 죽어서 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숲을 찾으며 나무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차피 좋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원하는 대로 될 리도 없겠지만 정말 우리에게 환생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저 하루하루 욕심 없이 마음 비우며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지 않고 살아 가면 사후에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산책길을 따라가노라면 계곡이 나온다. 계곡물은 꽁꽁 얼어 있고 그 위에 눈이 쌓여있다.
산짐승의 발자국인지 개 발자국인지가 보인다. 나무들도 여기저기 넘어져 있고 며칠 전에 심하게 불던 바람 때문에 열매들이 많이 떨어져 뒹군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아무도 걷지 않는 숲 속은 다람쥐도 새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추운 날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먹을 것도 없는데 날씨까지 추우니 걱정이 많을 것이다. 처음에는 춥다는 생각에 거북이목을 하고 걸었는데 15분 정도 열심히 걸었더니 덥다. 아무리 추운 날도 이렇게 걸으면 혈액순환이 되는지 목도리부터 하나둘 벗게 된다. 춥다고 가만히 집에 있고 싶어도 막상 나와서 걸으면 이렇게 좋은데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유혹하는 게으름이 문제다. 귀찮아도 움직이면 건강을 가져다주는데도 잠깐 귀찮다고 꾀를 부린다. 알면서도 못하는 게 인간이다.
(사진:이종숙)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싫어서 안 만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밀쳐내면 나중에 남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좋은 점을 찾아내고 예쁜 마음으로 바라보면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도 없고 미운 사람도 없다. 다 바라보는 내게 달려있다. 좋게 보고, 좋은 생각으로 이해하고, 작은 것 큰 것 상관없이 고마워하면 세상에 싫은 사람이 없다. 부족하고 실수도 많은데 사람들은 잘한다고, 부럽다고 이야기해주는데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싫다 밉다 하면 안 된다. 사람들도 내가 그냥 좋기만 하고 예쁘기만 하지 않아도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조금 모자라면 어떻고 조금 다르면 어떤가. 이해하고 배려하며 받아들이면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는데 따지고 계산해 받자 아무런 이익이 없다. 화가 나서 내친 친구도 좋은 때가 있었고 지금 좋아라 하는 친구도 맘에 안 들 때도 있다.
숲 속에 사는 저 많은 나무들이 서로를 미워한다면 저렇게 모여 살지 못할 것이다. 눈 오고 바람이 불어대는 이 겨울에 서로를 보듬고 서있는 나무를 보며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들 사는데만 삶이 있는 게 아니다. 어디든 삶은 있다. 흐르는 계곡물에도, 얼어붙은 강에도, 밀려오는 파도에도 우리네 삶이 있다. 보이지 않는 순서가 있고, 예의가 있고, 양보가 있고, 배려가 있다. 부러진 나뭇가지도 할 일이 있고 죽은 나무도 무언가를 한다. 평화로운 곳에 오면 마음도 평화롭게 되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원망도 후회도 없어지고 자연처럼 아름다워진다. 생각할수록 약 오른 일도 잊고 바보같이 살았던 시간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을 보며 나무와 이야기하며 걸어간다. 인생이란 지난날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똑같은 일이 생길 수도 없다.
하루를 살고 보내고 또 다른 하루를 맞으며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된다. 어제의 내가 될 수 없고 어떤 내일이 나를 찾아올는지 모른다.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오늘에 충실하며 되도록 좋은 생각 속에 살아야 하는 것뿐 알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교과서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대로 살 수 있으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을 피하면서 살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죽은 삶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미워하고 뒤에서 쑥덕거려도 그게 사는 삶이다. 싸움이 있어 화해가 있고 분열이 있어 일치를 원한다. 바닷물도 오고 가는 썰물과 밀물이 있고, 날마다 뜨는 해도 뜨고 지며, 밤마다 뜨는 달도 차고 기우는 이유다. 부족하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원하고 욕심내고 사는 것이다. 숲 속을 걸으며 자연을 만나며 속마음을 이야기하니 기분이 좋다. 아무도 듣지 않고 뭐라 하지 않아도 순수한 자연과의 소통으로 마음이 후련하다.
세상살이 따지고 보면 친구도 적도 없다. 만나면 웃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면 그게 행복 이리라. 말이 많으면 잔소리가 되고 말을 안 하면 무관심이 되는 세상에 저기 서있는 나무들처럼 서로가 가까이 있음에 감사하자. 햇빛을 나누고 비바람 눈보라가 불 때도 서로 감싸며 살아갈 때 더 멋진 숲을 이루듯이 서로의 옆에 있어 소중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