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내게 와 준... 사랑스러운 손자야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큰 손자가 10살이 되는 생일날이다.

10년 전 오늘 직장 관계로 호주로 간 아들 며느리가 아들을 낳아 아들 며느리는 엄마 아빠가 되었고 남편과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돈이 산후조리를 해준다고 호주로 간지 1주 만에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다고 연락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애를 낳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불안한지 걱정이 많다. 아무도 없는 곳이지만 사돈이 가서 어련히 잘해줄 텐데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침이 되었다. 어질어질하지만 일을 하러 가야 하고 아이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답답하다. 정신없이 아침 장사를 하고 난 뒤에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손자가 태어났단다. 14시간을 고생하고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한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을 받고 한숨을 놓았다. 지금부터 10년전 2011년 2월 9일 첫 손자가 태어났다.




남편과 나는 엄마 아빠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에 없던 손자가 태어나며 온 집안 식구들은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둘째 아들 며느리는 엄마 아빠가 됨과 동시에 큰아들 큰며느리는 큰엄마 큰아빠가 되었고 딸은 고모가 되었다. 한 생명이 태어남으로 명칭도 본분도 달라지고 책임도 마음도 달라진다. 호주에서 태어난 4개월짜리 손자가 캐나다로 돌아온 뒤부터 지난 10년 동안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온갖 사랑을 다 쏟아붓고 사랑하며 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손자를 보고야 알게 되었다.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월 가는 줄 몰랐다. 어린 눈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까운 사람들처럼 보이는지 우리만 가면 좋아한다. 가서 몇 번 짝짝 쿵을 가르쳐 주었더니 한 번은 시키지도 않는데 일어나서 짝짝 쿵을 해서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첫 손자라서 우리에게 준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많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사랑스러워 자랑하려면 밤이 새도 모자란다. 그때만 해도 우리 또래들은 손주들 생각도 못할 때였는데 손자 자랑을 하려면 돈 내고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떠 돌았는데 어찌나 예쁜지 돈을 내면서라도 자랑하고 싶었다. 정신없이 아이들 낳아 기르며 예쁜지도 모르고 어서 빨리 자라주기만을 바랬었는데 손자는 다르다. 열 가지 백가지 안 예쁜 게 없다. 하는 짓마다 예쁘고 신기하고 거기다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나 혼자 손자를 가진 할머니같이 자랑스러웠다. 기고 걷고 뛰며 학교를 다니고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시험지를 보여주면 남편과 나는 깜빡 죽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손주들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시작해서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손주들이 넷이 되었다. 남편과 둘이 손잡고 캐나다에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12명의 가족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할머니로 살면서 행복을 가져다준 손주들이 너무나 고맙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20살의 어엿한 청년이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찬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 어른이 되고 늙어간다. 젊었을 때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지금의 내 모습도 언젠가는 찾을 수 없겠지만 세월 속에 하나둘 변해간다. 요람 속에서 꼬물거리며 웃고 울던 손자의 모습은 어디를 봐도 찾을 수 없다. 의젓하게 앉아서 할 일을 하며 알게 모르게 커가는 모습이 멋지다. 세월 속에 있던 사람은 없어지고 없던 사람은 생겨나 그 뒤를 이어가는 자연의 섭리다. 이곳에 와서 산 세월이 길어지고 아이들은 자라 또 어른이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언젠가 우리는 자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 영원한 것이다.


내 안에 조상들이 살고 또 자손들의 마음속에 우리도 살 것을 생각하면 나이 드는 것이 결코 허망한 것만은 아니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는 것처럼 사랑과 그리움은 늘 우리들의 가슴속에 머물며 세상을 따라 살아간다. 세심하고 자상한 큰 손자는 나를 만날 때마다 마디도 굵고 힘줄도 많이 틔어 나온 내 손을 만지며 눌러본다. 그 어린 눈에도 무언가 다름이 보이는가 보다. 조금씩 철이 들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모르던 것들을 알고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기억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3살도 채 안되었을 무렵 아들 며느리가 데이트하고 싶다고 맡겨놓았던 날이 생각난다. 도망치듯 나가는 엄마 아빠를 동네가 떠나가도록 불러대며 울던 아기가 어느새 10살짜리 소년이 되었다.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 속에 하루하루 살다 보니 오늘을 산다.



10년 전에 우리에게 와서
의젓하게 잘 자라는 고마운 손자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거라. 원하는 것을 하며 기쁘고 즐거운 나날을 맞고 보내며 감사하며 사는 멋진 사나이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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