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는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무언가 해 보려고 하는데 무기력하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소리 없이 다녀가는 시간은 왔다가 그냥 간다. 그 시간을 그냥 보낼 수도 있고 내게 온 시간과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기회와 시간은 함께 온다. 내게 온 시간이 데리고 온 기회를 그냥 보내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별히 할 것은 없지만 특별한 날을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 그냥 흐르는 대로 보낼 수 있는 것도 내가 정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퇴직생활은 참으로 무미건조 하지만 그렇다고 직업을 갖는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심심하다고 할 일이 없다고 평생 동안 원하던 퇴직 생활까지 일하며 살고 싶지 않다. 먹고 놀고 자고의 반복으로 생산성이 없지만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노후생활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세시대에 정년을 더 늦춰야 한다는 말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약간은 빠른듯해도 노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늦추고 몇 년 더 일하며 돈을 더 벌고 싶어 하지만 막상 몇 년 늦게 퇴직하면 후회를 한다. 더 일찍 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도 좋고 사회생활도 좋지만 자신도 모르게 늙어가는 인간의 세포를 막을 수 없다. 퇴직한 후에 막상 놀려고 하니 기운도 없고 의욕도 떨어져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젊을 때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인간은 많은 것들을 갈망한다. 여행을 가며 멋있게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기운도 있고 의욕도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세상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 보일 때는 늦은 것이다. 신나게 놀아도 더 놀고 싶고, 많이 먹어도 금방 배가 고프고, 자고 또 자도 피곤한 것은 그만큼 신체가 왕성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고 가고 세월이 오고 가며 나이가 드는 사이 예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되어 산다. 생각도 모습도 예전의 나를 찾을 수 없지만 지나고 보면 지금의 나의 시간도 아름다운 시간일 것이다.
먹고 노는 것도 힘들 수 있고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날도 있을 텐데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다. 어제는 열 시반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안 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영혼이 나를 재우지 못한다. 카페인이 들어있는 초콜릿을 먹어서 인지 잠이 도망가고 눈이 말똥말똥 해진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늦은 시각에 텔레비전을 보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를 대는 즉시 잠이 쏟아져서 신경질이 나는 정도로 잠을 잘 자는 데 이렇게 잠이 오지 않으니 그것도 신경질이 난다. 잠 잘 자는 것도 복이라고 말하는 지인이 있다. 몸이 피곤해서 자려고 누우면 잠이 달아나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나 되어 잠이 온단다. 그러다 보면 대낮에 일어나고 또 밤에는 잠을 못 자는 것이 반복되어 허송세월을 보내고 산다고 한다.
(사진:이종숙)
남들 잘 때 자야 하는데 자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잠 잘 자는 나를 부러워한다. 간신히 늦은 시간에 잠이 들어 늦게 까지 자고 일어났는데 몸은 여전히 잠에 취한 듯 피곤하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눈도 뻑뻑하고 몸도 찌부등하다. 무언가를 써 볼까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이럴 때는 드러누워서 유튜브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어차피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시간은 가고 또 다른 날이 오니 오늘 하지 못한 일을 내일 하면 된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진 모르지만 오늘은 그냥 이렇게 보내야겠다. 무기력한 날이 지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 삶이란 날씨 같은 것이다. 구름 낀 날이 있고 햇볕 나는 날도 있는 반면에 바람 불고 비바람, 눈보라 치는 날이 있다. 비 오는 날은 가만히 비를 피해 게으름도 피워보는 것도 괜찮다.
비 오는 날 핑계 삼아 낮잠도 자고 햇볕 나는 날에는 일거리 밀어놓고 고운 옷 입고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다. 내일을 생각하느라 오늘을 느끼지도 못하고 살은 날들이 많다. 너무 편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뒹굴거려본다. 놀아 본 사람이 잘 논다고 게으름도 피워 본 사람이 핀다. 하루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 세상에 제일 좋은 게 놀고먹는 것이라 한다. 평생 일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쉬엄쉬엄 놀며 살자. 생각이 안 나면 멍하게 밖을 쳐다봐도 괜찮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하지만 누워서 편히 쉬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기운이 나고 의욕이 생기면 그때 해도 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하루하루 살면 되는데 안달할 필요 없다. 밤에 어쩌다 잠 못 드는 것은 그만큼 인생이 편하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불면의 어젯밤 덕분에 오늘 밤엔 꿀잠을 잘 것이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온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시작이 가져다주는 기회다. 시작은 늘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존재다. 오늘 시작된 하루는 게으르게 시작했지만 어떤 날이 될지 모른다. 쉬고 자고 놀고먹고 하는 지금이 나의 전성기의 시작이고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