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텅 빈 듯 아무런 생각이 안 난다. 기억도 안나는 꿈을 꾸다 일어나서 인지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듯 잠이 덜 깨서 멍하다. 글을 쓸까 말까 망설인다. 백지가 된 머릿속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쓰다 보면 무언가 나올지도 모른다. 꼭 써야 할 이유도 없고, 누가 쓰라고 하지 않는데도 그동안 써 왔다. 글을 쓰고 읽으며 멈추었던 머리는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안 써지는 날도 한두 줄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특별한 주제도 없고, 이야깃거리도 없지만 쓰다 보면 나온다. 세상살이 꼭 할 일이 있어서 사는 게 아니고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기듯이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하다. 아무런 생각이 안 난다고, 아무런 일이 없다고 가만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볼 수 없다. 세상은 숨 쉬듯 끊임없이 돌아가고 자연은 질세라 저 할 일을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나만 뒤진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꺼내서 쓰기만 하면 되는데 게으름을 필 이유가 없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큰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뉴스거리 천지다. 매일 접하는 산더미 같은 뉴스는 곳곳에서 튀어나와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홍수처럼 밀려와 쌓인다. 브런치에도 새로운 글들이 쌓여가고 있는데 내일 내일 미루다 보면 좋은 글들을 못 읽은 채 그냥 넘어간다. 옛날에 한국 뉴스가 궁금해서 남들이 읽고 넘겨주는 오래된 신문을 애지중지 하며 읽었던 생각을 하면 지금은 정말 좋은 세상이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에 알고 싶은 정보를 듣고 보고 할 수 있으니 마음만 있으면 글감도 넘쳐난다. 아무런 생각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나는 대로 써보니 여기까지 왔다. 전문적인 글도 좋고 세련된 글도 좋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넋두리도 좋다.
잘난 사람도 살고 못난 사람도 사는 세상이다. 최고도 좋지만 최선도 좋다.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잘하려고 하는 것도 좋다. 사람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 이듯이 사람들의 생각도 여러 가지다.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도 없다.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 있다. 멋진 글이 아니더라도 한 줄의 글로 누군가의 영혼에 힘을 줄 수 있다면 몇백 권의 책 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할 말도 없고 쓸 글도 없었는데 머릿속을 뒤져보니 한줄한줄 나온다. 어제의 일들이 생각나고 오늘 할 일도 생각난다. 뉴스에서 보았던 사건도 생각나고 어제 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었으면 이글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 낭비일 것 같은 이야기라도 꺼내서 써보면 생각의 꼬리가 터질 것 같아 머릿속을 뒤져보니 어제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게 된 광장시장 이야기가 생각난다.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음식장사를 하는사람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을 나와서 하루를 준비하는 모습을보니 오래전 내가 식당을 경영할 때가 생각난다. 새벽 5시 반에 식당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 6시에 문을 열지만 기다리고 있으니 문을 열어주면 단골들이라 그들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그들은 앉아서 신문을 읽고 남편은 커피를 만들고 나는 베이컨과 소시지 그리고 감자를 구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식당 안에 퍼지는 커피 향과 베이컨 냄새가 진동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들어오고 그들의 밥을 해 주며 하루를 시작하던 때가 떠오른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그들은 몇십 년을 한자리에서 도를 닦은 도사의 모습이다. 욕심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그들은 그저 밥 먹고 살면 된다고 한다. 평생 동안 장사하여 먹고살며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한다.
살아있기에 살기 위해 쉬지 않고 한다. 자식이 물려받아도 옆에서 도와주고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 언니의 딸을 양녀 삼고 자매가 열심히 살아간다. 수줍은 여자 사장은 오랫동안 장사를 했어도 아직까지 시장 아줌마로 적응하지 못하지만 노력하며 산단다. 힘들어도 천직이려니 생각하며 산다. 단돈 5천 원에 커다란 그릇에 칼국수가 담겨 나오고 푸짐한 비빔밥이 나온다. 이익은 별로 없겠지만 먹고살고 조금 남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남들이 문을 닫고 폐업을 하는데 그래도 시장이라조금은 나을 거라 생각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빈대떡과 호떡, 마약 김밥과 순대,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고 여러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먹는 그곳에 가서 먹으며 세상은 돌고 돌며 평범한 그들의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비좁은 곳에서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만들고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가는 길에 들려서 먹기도 하고 일부러라도 와서 먹는다. 몇십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재래시장을 보존하기 위해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다. 70이 넘고, 8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절대 힘들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하고 긍정적으로 기쁘게 살아가기에 그 오랜 세월 가게를 지켜올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끌어가는 작은 가게에서 환한 미래를 본다. 아들이 물려받고 딸과 동생이 물려받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삶의 터전에 하늘이 축복하리라. 지금은 앉아서 세상을 구경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푸짐하게 만들어 놓은 음식에 침을 삼키며 언젠가 한국에 가면 광장시장에 꼭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자고 약속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어제 텔레비전에서 본 광장시장을 풀어내다보니 아침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난 참새들은 창밖의 나무에서 낮잠을 자는지 잠꼬대를 하고, 해는 어느새 부엌으로 들어와 앉아 있다. 나도 하루를 시작한다. 생각 없이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어제를 정리하고 오늘을 살면 된다. 오늘은 또 다른 어제를 낳겠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