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에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세상을 살아간다. 발가벗고 세상에 나왔는데 더 이상 무엇이 부끄러울 것인가? 잘 보이기 위해서 예뻐 보이기 위해서 또는 잘 나 보이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쓴다. 그래 봤자 옷 한 벌 걸치고 떠날 인생인데, 그래 봤자 오라고 하면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가야 할 인생인데 무엇이 그리 무서워 오만데에 신경을 쓰고 사는 걸까? 감추고 숨기며 내가 아닌 남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의 연속이다. 좋은 옷과 멋진 집 그리고 명품이라는 물건들.. 따져보면 별것 아닌 것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다. 몸을 가리면 되는데 옷장에 꽉 차도록 걸어놓은 옷들... 배를 채우면 되는데 맛있는 것들을 먹으러 여기저기 맛집으로 향하는 발길들... 사람 사는 곳은 거기가 거기이건만 여기저기 여행 다니기에 사람들은 바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도 못 가본 곳 투성이인데 먼 외국에 가야만 사람대접을 받는 듯이 해외여행이 유행이다.
제 잘난 멋에 사는 게 인생이라더니 별것도 아닌데 유난을 떨 필요가 없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오늘도 사람들은 작은 것에 목숨이라도 걸 듯이 법석대며 살아간다. 무언가에 미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듯 사람들은 미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다닌다. 해봤자 별것 아닌 것들, 가봤자 별것 아닌 곳들, 먹어봤자 그렇고 그런 것들인데도 정신없이 따라다닌다. 누군가의 말을 따라, 허상을 따라 이리 왔다 저리 왔다 정신이 없다. 유행 따라 사는 인생이라지만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골프가 유행이 되었다. 너도나도 골프 얘기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 아무 데에도 낄 자리가 없다. 골프 용어로 농담하고 골프 치며 생긴 일로 해 가는 줄 모르며 얘기를 한다. 그래 봤자 조그만 공 하나로 뻥뻥 치다가 그린에 올려놓고 작은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것일 뿐인데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그리 들 야단인지 모르겠다.
3주 전에 멕시코 여행을 갔다. 골프 패키지인데 가격이 그만하면 괜찮은 것 같아서 남편과 함께 가기로 했다. 남편과 동네 골프장에 2 번가서 구경하고 작년 쿠바 여행 때 4번밖에 치지 않은 골프지만 올해도 골프여행이니 가서 또 쳐야 한다. 남들은 회원권을 사 가지고 여름내 골프를 친다. 노인회 골프도 가고 여기저기 좋은 골프장을 돌아다니면서 친다. 마치 골프에 미친 사람 같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골프를 치니 골프를 치지 않으면 같이 차 한잔 할 사람도 없다. 그래도 골프로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나는 여전히 골프를 선호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별것도 아닌 골프라는 것을 치게 되었다. 골프 칠 줄도 모르는 나를 껴준다면 같이 치고 안 그러면 관두지 하는 마음으로 골프 준비를 하고 갔다.
날씨는 엄청 더운 데다 아주 습했다. 섭씨 30도인데 거기다 티타임이 오전 10시 30분이었기 때문에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필드에 나가기 전 드라이브 레인지에서 연습하고 퍼팅도 연습해 봤다. 그까짓 것으로 생전 골프를 차지 않았던 나의 실력이 좋아 질리는 만무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덩달아 몇 번 쳐봤다. 당연히 연습장부터 나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금방 빤히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홀에도 안 들어가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계산 없이 한번 쳐보겠다고 썸을 잡았는데 어찌 되었든 지금부터 열여덟 고개를 넘어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우리 부부와 두 형제분과 썸이 되었다. 작년에 쿠바에 갔을 때 골프 못 치는 사람으로 알려졌으니까 다들 아시는 상황이니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민폐나 덜 끼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1번 홀에 서서 드라이브를 한번 멋지게 휘둘러 봤다. 그까짓 거 한번 해보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하고 골프라며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귀에 못이 박히게 하는 얘기다. 그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 골프를 무엇 때문에 못 쳐서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 유튜브 골프 채널에서 하라는 대로 한번 힘껏 쳐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습도 없이 잘 치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멋지게 폼을 재고 근사하게 보내려던 볼이 나뭇가지를 맞고 길가에 떨어졌다. 한참을 헤매다가 간신히 볼을 찾았다. 이젠 앞으로 전진하여 네 번 안에 홀에 집어넣어야 한다. 가다 보니 앞에 물이 있는데 물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짧게 쳐서 물 앞에 볼을 보내야 한다. 살짝 친 볼은 멀리멀리 날아가 물 한가운데로 향한다. 멀리 치려 했던 볼은 코앞에 떨어지고 살짝 치려했던 볼은 멀리 가서 물속에 쏙 들어가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물을 건너 몇 번을 치고 가니 그린이 보인다.
그러나 그린 앞에 양쪽으로 모래가 보인다. 이제는 모래를 피해 가운데로 볼을 보내야 한다. 방향을 잘 보고 신중하게 친다고 쳤는데 그 볼은 마치 모래를 적중한 듯 모래밭으로 폭 들어간다. 그래 골인 잘한다. 정말.. 물에 퐁당, 모래에 폭... 지금 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내려고 하는 데는 왜 안 가고 가지 말아야 하는 곳으로 가는 거야? 힘이 빠진다. 이제 나는 모래에서 공을 빼내야 한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다. 남편은 옆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끊임없는 강의를 한다. 힘을 빼고 고개를 들지 말고 다리를 넓게 벌려 자세를 고정하며 목표물을 향해 던지면 된다는데 아무리 좋은 말도 내 귀에는 안 들린다. 어서 빨리 이 경기를 끝내고 싶을 뿐이다. 살살 모래로 걸어 들어가서 공을 빼내려고 골프채를 힘껏 내려쳤다. 공은 모래밭에 있고 싶은지 나오려다 말고 또르르 다시 모래로 내려온다. 다시 내려치기를 몇 번 해서 간신히 그린 옆에 볼이 놓였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이니 잘하면 홀에 넣을 것이라 생각하며 퍼팅을 했다. 볼을 간신히 그린에 올리지만 작은 홀 안에 볼을 집어넣기란 쉽지 않다. 살짝 친 볼이 내리막길로 마구 굴러가고, 조심하며 친 공은 홀 근처에도 못 가고 서 버린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잘 치는 사람들은 그린을 떠나고 나는 여전히 그린 위에서 방황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골프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못한 채 간신히 한 고개를 넘었다. 그러기를 두 고개 세 고개 넘으며 열여덟 고개를 넘고 나는 생각했다. 태양이 쏟아지는 골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 작은 볼에 목숨 걸고 골프를 왜 쳐야 하나… 숨도 몇 분 못 쉬면 숨이 넘어가는데 굽이굽이 그 먼 길을 작은 공하나 집어넣겠다고 고심하고 애태우며 뭐하는지 모르겠다. 공을 쫓아다니길 몇 시간 이제 게임은 끝나고 초주검이 다된 몸을 끌고 클럽하우스를 향한다.